설교

좋은 왕의 기준 (신 17:14-20)

따뜻한 진리 2017. 5. 28. 22:38

신명기 17:14-20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난 문제를 공정하게 다뤄야 할 재판관에 대해 살폈고 이 시간에는 왕에 대해 살피겠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인간 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인간 왕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생활 초기에는 그런 이해와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인간 왕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본문 14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언젠가는 왕을 요구할 때가 올 것임을 모세는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8장을 보면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고,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자기를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삼상 8:7).

 

    모세가 제시한 왕의 조건은 첫째,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어야 합니다. 재판관은 사람들이 뽑아야 하지만 왕은 하나님이 지명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왕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그 특별함 때문에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르심은 자만의 이유가 아니라 순종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왕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기 위해 두려움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왕의 두 번째 조건은 이스라엘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방 사람 중에 왕이 될 만한 탁월한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 외국인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이스라엘에 노출시키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은 오직 이스라엘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 번째 조건으로써 왕은 말을 많이 가져서는 안 됩니다. 당시에 말은 군대의 핵심전력이었습니다. 16절을 보면 말을 얻기 위해 애굽으로 백성을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는 당시 이집트에 좋은 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이 탔던 말이 이집트산 말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셨는데, 말이라는 군사력을 얻기 위해 이집트와 교류하는 것은 출애굽 의도에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조건으로 왕은 많은 아내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왕이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것은 단순히 일부일처의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다른 나라와 정치적 동맹을 위해 정략적 결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기보다 나라간의 인간적인 약속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로 맞이하는 여인들과 함께 우상숭배가 들어올 것입니다. 왕은 인간적인 평화와 연합을 유지하기 위해 신앙을 뒷전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조건으로 왕은 많은 재산을 축적해서는 안 됩니다. 왕은 자기 위치와 권력을 이용해서 자기 재산을 늘려서는 안 됩니다. 왕이 물질을 추구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하고 백성을 착취하여 고생하게 만듭니다.

 

    여섯 번째 조건으로 왕은 율법에 무지해서는 안 됩니다. 왕은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부지런히 익혀야 했습니다. 세상 다른 지식과 경험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분이 원하시는 법도를 아는 것이 가장 큰 지식이고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손하게 바른 길을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말한 기준들에 의하면 왕은 자기 욕망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자가 아니라 겸손하게 섬기는 자, 누구보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신앙적 모범이 되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런 왕이라면 다른 나라들은 힘을 기르고 연합세력을 이루는데 이스라엘은 약한 채로 고립되기 쉽습니다. 모세가 말한 그런 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을 지는 의문입니다. 그들은 모세가 말한 조건보다는 다른 나라의 왕들처럼 강력한 왕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인간 왕을 원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자신들이 세상의 다른 나라들과 같지 않다는 것 때문에 자신들을 이끄시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사는 것에 불안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백성들이 왕을 세우려는 불신앙적 요구에 부응하는 왕, 하나님의 역할을 대체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하는, 인간적으로는 약한 왕을 의도한 것입니다. 그것은 백성이 자부심을 갖게 하는 세상 왕과 달리 하나님을 여전히 의존하게 하는,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왕입니다.

 

    모세의 그런 기준에 완전히 부합하는 유일한 왕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왕처럼 군림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종으로서 겸손하게 왕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왕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백성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바랐던 대로 인간의 욕망과 힘에 근거한 왕이 아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대한 왕 같지 않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왕으로 인정받지 못하셨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가 겪는 일들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일은 우리의 행복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수준이 성숙해질수록, 백성들이 깨어날수록 좋은 지도자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지도자도 예수님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과 동등해지고, 백성을 위해 죽고, 백성을 영원한 멸망에서 건져내고, 백성을 영원한 행복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는 예수님이 유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자신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정말 원해야 할 것을 요청하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고, 지지하지 않을지라도 백성에게 정말 필요한 일을 감당하시고 실행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지도자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행복보다 예수님이 왕이시라는 사실, 그분이 우리에게 보장하시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왕을 하나님이 주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