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바르게 적용해야 할 법 (신 19장)

따뜻한 진리 2017. 6. 11. 22:47

신명기 19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의 범죄 가능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원래 살던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 좋고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지만 거기서 살게 될 자신들 역시 죄인이기 때문에 그 땅은 피로, 죄로 물들게 될 것임을 모세가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를 배우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죄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배워야 했습니다. 본문에는 살인, 도둑질, 거짓 증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십계명의 6, 8, 9번째 계명과 관계됩니다.

 

    먼저 1절에서 13절은 도피성에 관해 말합니다. 도피성은 우리가 여호수아서나 신명기 4장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본문 11-13절에 나오는 대로 계획적으로 고의적으로 살인한 자는 도피성에 숨어도 사형에 처하게 됩니다. 도피성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피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부지중에 살인했다는 것은 현대 법률용어로 과실치사라고 합니다. 고의적, 계획적으로 상대를 해칠 의도는 없었는데, 객관적인 위험요소에 주의하지 않아서 상대방이 다치거나 죽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실례가 나오는데 나무를 얻으려고 도끼질을 하다가 도끼날이 빠져서 근처에 있던 사람이 죽는 경우가 해당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활동범위, 책임범위에 있는 것들을 잘 관리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위험요소를 사전에 예방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잘못 때문에 살인의 누명을 쓰고 죗값으로써 죽임을 당한다면 그 사람은 억울할 것입니다.

    이어서 14절에는 땅의 경계를 옮기는 것을 금지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지파별로 각 집안에 땅을 주셨는데, 누구든지 남의 땅에 대한 욕심으로 땅의 경계를 속이거나 힘과 권력으로 땅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열왕기상 21장을 보면 아합 왕이 자기 정원을 위해 나봇의 포도원을 사려고 했지만 나봇이 팔지 않겠다고 하자 아내 이세벨의 위증으로 나봇을 죽입니다.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모두에게 주신 생존의 근거인데 남의 땅을 침범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빼앗는 범죄였습니다. 율법이 보장하는 땅의 소유권을 무시하고 권력을 가진 자가 땅을 빼앗을 때 빼앗긴 자는 억울할 것입니다.

 

    15절에서 21절은 거짓 증언에 대해 말합니다. 누군가의 죄를 처벌하기 위해 고소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이익을 위해 또는 상대방에 대한 미움 때문에 있지도 않은 죄를 거짓으로 고발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죄 없이 처벌을 받는 자는 억울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증인은 두 명 이상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재판관은 만약 위증이 드러나면 죄 없는 사람이 당할 뻔한 형벌을 위증한 자가 받게 해야 했습니다. 거짓 증언한 자는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동일하게 당하도록 하라고 모세는 말했습니다. 거짓증언을 그렇게 무겁게 다루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들을 음해하고자 거짓말을 만들어낼 것이고 억울한 자들이 생길 것입니다.

 

    본문은 법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법을 준수하기 위해서 서로를 단속하고, 죄를 가볍게 넘어가지 않고 지적하고 처벌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죄인은 법 역시도 이용해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특별히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약자에게 법을 들이대고 처벌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법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생명과 그 생명을 유지하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소유들을 보호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생명과 권리를 서로 침해하지 않도록 법이 지켜줍니다. 그러나 그런 법에 의해 피해자가 생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이 됩니다. 법을 주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배우고, 율법에 근거해서 잘못을 지적하고, 처벌하는 것은 죄인을 끝까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한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죄인지 깨닫게 하는 것, 잘못을 드러내고 처벌하는 것은 사람이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닫는 것이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처벌부터 사형이라는 무거운 처벌까지 범법자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자신을 알도록 하는 의도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법은 잘못 이용되거나, 무시되면서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어 냅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처벌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지 법대로 마땅한 처벌을 받는 사람도 있지만 피해자도 생깁니다. 그런 피해가 없도록 노력해야 할 자는 변호사나 판사나 헌법재판관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적인 삶에 있어서나, 세상의 도덕과 법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어떤 기준을 어긴 자들을 혼내주고, 처벌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하나님 앞에서 지키기 위해, 구원하기 위해 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여러 신앙의 도리, 십계명, 성경 말씀, 세상의 윤리와 도덕은 그것을 우리가 지켰다고 우쭐하고 그것을 지키지 못한 자들은 처벌하기만 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한 것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이용해서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거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법위에 군림하면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법과 도덕이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나아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려고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발하실 수 있으나 오히려 죄 없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어린양으로 죽으신 것을 기억합시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히 지키셨지만 우리를 위해 죽임을 당하신 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십계명과 하나님의 말씀을 나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적용할 지를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