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는 방법 (신 20장)

따뜻한 진리 2017. 6. 18. 22:49

신명기 20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이 지구 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지진, 화산폭발,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도 무섭지만 정말 두려운 것은 전쟁입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타락한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재해가 무섭긴 하지만 자연 자체는 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는 악한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잔인함과 무자비함이 드러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세상 나라들처럼 집단적인 광기에 사로잡혀 전쟁을 사악한 만행으로 만들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전쟁을 수행하는 자세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은 앞의 17장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갖춰야 할 조건과 연결됩니다. 왕은 말을 많이 두지 말고, 혼인으로 동맹을 맺어 평화를 유지해서도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생존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사람들, 세상 나라들처럼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호자이신 것을 신뢰하고 경험하고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주제와 연관해서 본문 1-4절은 전쟁 때에 적들의 수와 무기를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부터는 이스라엘이 전쟁을 치르는 방법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어떤 전쟁기술이나 무기제조 방법 같은 것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특이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첫째로 전쟁에 참여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새로 지은 집에서 충분한 시간을 누리지 못한 사람, 포도원 농사를 시작하고 아직 수확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사람, 약혼을 했거나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사람,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은 전쟁에 참여하지 말고 집으로 가야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전쟁에 나오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마음이 콩밭에 있어서 전쟁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일까요? 8절을 보면 그런 이유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인데 남겨두고 온 행복의 요소들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남을 생각만 한다면 전쟁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고 다른 병사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전쟁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즐거움과 풍요를 충분히 누린 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전쟁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결혼과 새로운 집과 첫 수확을 통해 인생에 몇 번 안 되는 하나님이 주시는 큰 은혜를 경험할 기회를 빼앗지 말라는 것입니다. 백성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분이심을 경험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그런 자들까지도 전쟁에 동원할 때, 즉 하나님보다 세력을 의지할 때 이스라엘은 전쟁의 광기에 빨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런 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도 전력이 약해진다고 불안해 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했습니다.

 

    계속해서 10절 이후를 보면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시려는 땅에 거하는 가나안인들은 전멸시켜야 합니다. 그들을 남겨두면 우상숭배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이 아닌 곳의 족속들과 전쟁을 해야 할 경우에는 공격하려는 성에 먼저 항복할 기회를 주어야 하고, 항복하지 않을 경우에는 남자들만을 죽이고, 여자와 어린 아이는 살려두라고 말합니다. 19절을 보면 어떤 성읍을 포위하고 있을 때 그 주변의 나무들을 찍어 없애거나 작물들을 잘라내지 말라고 합니다. 당시 포위한 자들은 포위당한 성읍에 두려움을 주기 위해 주변의 식물들과 가축들을 모두 죽이는 전쟁관습이 있었습니다. 19절을 보면 밭의 수목들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어찌 그것을 애워싸겠느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동식물들에게 괜한 짓을 하지 말고 살려두어 정복당한 자들과 정복하는 자신들을 위한 자원으로 사용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려는 족속들 외에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전쟁을 일삼아서는 안 됩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 원수를 갚고자 하는 복수심, 자기들을 두려워하게 만들려는 잔인함을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전쟁 중의 두려움과 불안감, 분노 때문에 적과 포로들과 민간인들에게 만행을 저질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빼앗기 위해,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에 만족하고,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을 신뢰하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 아직 하나님의 은혜를 더 경험해야 할 자들까지 동원해서 전쟁을 하고, 세상 나라들처럼 파괴적인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런 전쟁이 가능하려면 승패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초기에 그런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자신들은 군대라고 할 수 없는 오합지졸인데 하나님께서 싸우시고 승리를 선물로 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결코 자신들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나 싸움꾼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죄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지만 살인마는 아니십니다. 이슬람교처럼 하나님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종교들처럼 하나님을 살인과 전쟁에 이용하면서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에서 계속 반복되는 주제 중 하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생명을 귀히 여기시며 그 생명들이 함부로 다뤄지지 않도록, 억압되거나 억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고 모세를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전쟁이 일어날 상황인데도 살아남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맛봐야 할 자들을 배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이 꼭 국가 간의 전쟁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 자체가 전쟁 아닙니까? 모든 인생이 생존의 전쟁터에 내몰려 있지 않습니까? 이런 각박한 세상 속에서 그런 여유, 존중, 배려는 어떻게 생겨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 생겨납니다. 우리에게 지금 닥친 상황이 어떻게 되든지, 우리가 혹 죽더라도 육체와 영혼을 영원토록 책임지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럴 때 다른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알도록, 구원 얻을 기회를 얻도록 배려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