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죄의 도미노를 막는 조치 (신 21장)

따뜻한 진리 2017. 6. 25. 22:29

신명기 21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죄인들이 사는 이 세상에는 비극이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의 히브리인들 역시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에 모세는 고통스런 사건들 속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가해자를 알 수 없는 피살자,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이스라엘의 포로가 된 이방 여인, 권리를 잃게 된 아들, 패역한 아들, 사형당한 범죄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 번째 비극은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살인 사건입니다. 사건이 난 장소에서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어린 암송아지를 죽여서 일종의 제사를 행해야 했습니다. 그런 행위로 이스라엘은 자기들 가운데 억울하게 죽은 자의 원한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왜 아간을 찾아낼 때처럼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만약 그런 식으로 하나님이 일하신다면 살인 뿐 아니라 우리가 숨기는 모든 범죄를 다 천하에 드러내실 것입니다. 또 이런 질문도 할 수 있습니다. 살인자가 버젓이 이스라엘 중에 살아있는데, 그 범인대신 그저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진짜 죄문제가 해결된다면 모든 범죄자를 찾아서 처벌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범죄가 발생하면 반드시 범인을 찾아 처벌해야 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는 본문처럼 행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중요한 전제는 이것입니다. 범죄를 일으킨 자를 처벌할 수 없어도 죗값을 다른 생명이 치른다면 해결될 수 있다는 원리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은 모든 죄는 본문의 들키지 않은 살인자의 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가해자를 찾지 못하는 살인사건과 같은 죄의 영향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육체적 영적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모르고, 또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일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모든 죄를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대신 용서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드러나서 붙잡힌 죄인을 처벌하면서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지만, 반대로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영구미제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의 죄를 어떻게 덮어주시고 죄를 용서하시는지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공동체에 일어난 일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비극 전쟁 중에 포로된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가 버리는 경우입니다. 이스라엘 남자는 포로인 여인과 결혼하고자 할 때 함부로 대하지 않고, 정식 부인이 가질 권리를 다 보호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남자는 그 여인과 동침하기 전 한 달 동안 죽은 가족들을 위해 슬퍼할 시간을 주라고 말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이스라엘 남자는 그 여자를 취할 수 없습니다. 또 한 번 결혼하기로 결정했으면 나중에 감정이 식었을 때 책임지기 싫어서 저 여자는 원래 포로였으니 아무렇게나 처리해도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규정을 둔 이유는 책임감 없는 단순한 충동과 욕구에 의해 상대를 대하고, 나중에 무책임할 위험성 때문입니다.

 

    세 번째 비극은 일부다처제 가정에서 남편이 상대적으로 덜 사랑하는 여자의 아들에게 경제적인 불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마치 라헬과 레아의 경쟁관계 속에서 자녀들이 피해를 입은 것을 말합니다. 모세는 미움받는 여자의 아들이라도 정해진 권리를 얻을 수 있도록, 재산을 공평하게 나눠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네 번째 비극은 부모를 무시하고 패역한 일을 저지르는 아들이 죽게 될 일입니다. 모세는 부모는 그런 자식의 죄를 직접 처벌하려 하지 말고 장로들에게 고발하라고 말합니다. 즉 부모는 그런 악한 자식의 죄를 감싸고돌아서도 안 되고, 부모가 직접 감정적으로 해결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식이 그렇게 된 것에는 부모의 책임도 일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자녀를 해결하는 문제에 있어 부모들은 공동체의 객관적인 도움과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다섯 번째 비극은 범인이 처형당하고 그 시신이 함부로 다뤄지는 일입니다. 누군가가 심각한 죄 때문에 처형당했을 때 사형틀인 나무에 매단채로 하루를 넘겨서는 안 됩니다. 만약 밤까지 그냥 두면 동물들에 의해 시신이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범죄자에 대한 분노 때문에 형집행이 끝난 후에도 시신을 비인도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들의 죄를 돌아볼 줄 모르는 수치이고, 죄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을 악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본문의 다섯 가지 비극들은 사실 연쇄적인 문제들입니다. 변심한 남자가 이혼할 때는 책임지기 싫으니까 그 여자는 함부로 다뤄도 되는 포로였다고, 죄인이었다고 합리화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책임감 없이 충동적으로 여인을 취할 때 그 가정은 불화가 생겨날 수밖에 없고, 결국 덜 사랑받는 여자의 자녀들은 차별대우를 받게 됩니다. 그런 가정에서 부모에 대한 증오심을 갖는 자녀가 생겨날 수밖에 없고, 그런 문제로 악하게 된 자녀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죄의 확장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 단계에서 죄로 인한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말한 것입니다. 특별히 그런 불행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힘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들의 부패한 감정을 보지 못해서 악이 증폭되는 것입니다. 자기 역시 죄인이라는 것을 보지 못할 때, 자신도 원인제공을 했음을 생각하지 못할 때 죄는 연쇄적으로 일어납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이 부패해서 변덕스럽다는 것, 다른 사람의 범죄에 내가 완전히 무관한 자가 아니라는 것, 타인의 죄를 다루는 과정에서 또 다른 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에게는 조목조목 조사 받고 들춰내야 할 범죄가 무수히 많지만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고, 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덮어주시기 때문에 숨어 있는 살인자처럼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