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9-30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모세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출애굽, 광야생활, 전쟁 속에서 큰 이적들을 보여주셨지만 백성들의 눈은 깨닫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생하게 하셨지만 믿음이 견고해지지는 않았습니다(3-6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시고,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통해 자신이 참 신이시고,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보호자가 되시겠다는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그런 열심은 이스라엘 중 한 두 사람에게만 임했던 것이 아니라 과거 조상들에 임했었고, 현재 그 자신들에게 임하고 있었고, 앞으로 미래의 후손들까지 계속되었습니다(10-15절).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이 그런 하나님을 버리고 은밀히 우상을 섬길 것을 예상합니다(16절~).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예고된 재앙을 겪게 될 것이고, 망하게 됩니다. 30장 1절을 보면 모세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나거든”이라고 말하면서 이스라엘이 죄로 인해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을 기정사실로 말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이 다 빼앗기고 포로가 된 그 때에도 여전히 희망이 있음을 말합니다. 3절을 보면 그 희망은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모으셔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후손들은 조상들 때보다 더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6절에서 8절은 이스라엘이 그 후에 여호와를 사랑하게 되어 생명을 얻고, 모든 명령을 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난 시간 27, 28장에서 모세는 복과 저주를 선포했는데, 그 이유는 단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해서 저주를 피하고 복을 얻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저주를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죄를 이기지 못해 재앙을 자초하는 이스라엘의 앞날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그 저주대로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복을 잃고 앗수르와 바벨론에 끌려가 이곳 저곳으로 흩어질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포로시대가 끝나고 이스라엘로 돌아올 것까지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결국 불순종해서 고통을 겪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도 다시 구원해 내실 것임을 말합니다.
이 모세의 예언적 설교를 통해 드러나는 주제는 무엇입니까? 인간은 죄를 지어 고난을 자초하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구원해 내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약 역사가 무엇입니까?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출애굽하고, 광야에서 범죄로 고난당하다가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 땅에서는 우상숭배 때문에 고통과 구원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포로로 끌려가 흩어진 여러 나라에서 비참하게 살다가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불순종과 구원을 반복해서 경험했습니다.
죄와 구원의 패턴이 반복되면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철들어서 순종하는 것이 당연히 기대되지만 인간은 그런 긍정적 변화를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오히려 자신의 불순종이 하나님의 은혜로 만회될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합니다.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 불순종의 대가로 징벌을 당해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고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면서 하나님의 눈치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을 보면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되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라고 모세가 경고합니다. 쉬운성경에는 “그런 사람은 이 저주의 말을 들으면서도 스스로 복을 빌면서 ‘나는 괜찮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마음을 굳힐 것이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모두가 망할 것이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율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죄를 어떻게 다루셨는지 역사를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보다 죄를 사랑했습니다. 이스라엘뿐 입니까? 우리 역시 죄를 지으려고 할 때 생기는 죄책감과 두려움에서 안심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이용하기 쉽습니다. 20절에서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런 자들을 용서하시지 않고 반드시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나간 시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이신지 알리셨습니다. 또 자신의 말이 믿고 따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신뢰하도록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성실한 사랑 앞에서 사람이 할 일, 의무는 순종입니다. 모세는 그것을 깨닫도록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순종보다 앞날을 예상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어떻게 순종할지에 대한 고민과 논의보다, 예수님이 언제 오셔서 종말의 때가 될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것도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만을 바라는 진정한 의미의 종말론적 신앙이 아니라 기회주의적인 종말론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순종하기 싫으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끝에 달했을 때, 기회가 더 이상 없을 때까지 버티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살다가 마지막에 바짝 잘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고, 하나님을 예측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입니다. 적절하게 자기 죄를 즐기면서 징계를 피할 수 있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용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비 종말론에 관한 이단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증인이 되는 일, 순종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죄인인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최선으로 여기면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서 단순하게 순종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모든 것들을 다 알지 못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과 이미 보여주신 증거를 가지고 확신하면서 갈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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