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결국 구원하실지라도 (신 32장)

따뜻한 진리 2017. 8. 20. 23:57

신명기 32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본문은 앞의 3119절에서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만든 노래입니다. 모세가 만든 이 노래에는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담겨져 있습니다. 이제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세대뿐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까지, 시간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동일하게 마음의 새겨야 할 내용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역사의 어느 시점에 있든지 자신들이 겪는 일들이 어떤 의미인지 해석할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세는 백성을 매우 사랑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과 그에 비해 기가 막힐 정도로 배은망덕한 백성을 이야기 합니다. 이 주제는 신명기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그 주제를 마지막까지 집요하게 끌고 가면서 반복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그 주제로 노래를 만들어 반복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먼저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부릅니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을 세 가지 대상에 빗대어 묘사하는데 첫 번째는 반석입니다. 하나님은 단단한 돌처럼 변함없이 견고한 신뢰의 대상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기자도 여호와 하나님을 반석으로 묘사했고,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 짓는 것 같다고, 자신의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시겠다는 말씀하셨고, 고린도전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반석이라고 말합니다. 즉 성경은 인간이 자기 존재의 기초로써 신뢰하고, 의지해야 할 확실한 대상이신 하나님을 반석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모세가 하나님을 묘사한 두 번째 대상은 아버지입니다.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낳은 아버지처럼 이스라엘을 세상에 있게 하셨고, 자라게 하셨고, 험난한 여정에서 지키셨습니다. 모든 성장의 과정에서 함께 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분깃을, 재산을 선물로 허락해주십니다. 326절에서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을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을 묘사한 대상 세 번째는 독수리입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킬 때에 둥지 밖으로 떠밀어내서 날갯짓을 하게 만들고, 또 위험할 때 새끼 아래에서 받아내듯이 하나님께서는 때로 이스라엘이 이해할 수 없는 가혹한 고통을 주시지만 그것은 그들을 성장시키는 사랑입니다.

 

    그렇게 반석. 아버지, 독수리의 이미지가 보여주듯 여호와는 완전하시고, 정의롭고, 진실하시고, 거짓이 없으시고, 공의로우시고, 바른 사랑을 베푸시지만 그러나 이스라엘은 15절에서 29절이 말하는대로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악한 짓을 하고, 자녀답지 않고, 비뚤어지고, 뒤틀리고, 분별력이 없어 미련합니다. 결국 그들은 진정한 신이시고 아버지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로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른 나라들에 넘기십니다. 다른 나라들의 압제 아래 들어가게 하십니다. 앗수르와 바벨론 같은 나라들은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쓸어버릴 수 있는 나라이지만 이스라엘이 그 나라들에 패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상대로 승리를 얻는 나라들이 자신들의 지혜와 힘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라는 착각을 하지 않도록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킬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십니다. 36절과 43절이 말하듯 이 노래는 결국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속죄하셔서 구원하실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그 구원을 말하기 이전에 모세는 백성들의 죄인 됨을, 패역함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이 노래에는 모세가 신명기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낸 하나님과 백성에 대한 평가가 축약되어 있습니다. 그는 한 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고, 다른 한 편에서는 백성들의 배은망덕함을 경고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늘 그래왔듯이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하실 것임을 놓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냥 구원을 베푸시지 않고, 백성이 자신들의 죄를 자각하는 과정을 겪게 하시고 구원을 하십니다. 진단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위중하고, 가망 없는 상태인 줄 알아야 치료의 가치, 구원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결국 구원하실 하나님을 예고하지만 백성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입니다. 문제를 들춰내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실체를 깨닫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역사를 통해 자신들이 배부르면 교만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고통스러우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불신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감각이 있고, 지혜가 있다면 배부를 때에 그것이 자신들의 잘남 때문이 아님을 기억해야 하고, 쓰디쓴 고통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형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태이든지 자신들을 진단해야 합니다. 아무 걱정할 것이 없는 평안한 시절이나 비참한 고통에 둘러싸여 있는 시절이나 그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다루시는 증거들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좋아서 평안한 것도 아니고, 고통스런 시기에 속해 있다 해서 소망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잘 되는 것 같을 때에 그것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인생이 징계만 받는 것 같은 고생이어도 이것은 지나가는 것임을, 하나님은 분명 끝이 있는 고난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생스런 삶이지만 짧은 인생을 통해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은 거저 주어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은혜가 필요한 절망적인 상태임을 깨닫도록 우리 실체에 계속 직면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