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마태는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대답하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하면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이 기다렸어야 하는 진정한 왕, 그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이 족보에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 그리고 이스라엘의 최고 왕인 다윗이 하나의 혈통임을 소개하고 있고, 그 족보 끝에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이 등장합니다.
17절에서 밝히듯 마태는 아브라함에서 요셉까지의 세대를 열네 대씩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총 42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서 요셉까지 실제로 42대가 넘는데 마태는 일부러 몇 명을 생략하고 42명만 이 족보에 사용한 것입니다.
세 개의 각 시기 중 첫 번째는 아브라함에서 6절 다윗 왕까지 이스라엘 역사의 태동기이고, 두 번째는 다윗부터 11절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이고, 세 번째는 바벨론에서 16절 요셉까지로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거의 모든 것을 잃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시기입니다. 마태가 이렇게 14대씩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한 이유는 마치 14일마다 달이 커졌다가 작아지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역사가 흥망성쇠를 겪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다윗이라는 히브리어 글자가 14를 뜻하기 때문에 다윗의 왕권을 이은 진정한 왕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의미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분을 통해 마태가 말하려는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이 세상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의도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려고 모든 것을 준비시키시고, 과정을 인도해오시며, 가장 적절한 때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족보는 예수님의 인간적 혈통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 족보에는 위대한 왕들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3절 이후를 보면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가 밧세바가 등장합니다. 이 이름들이 무엇을 말합니까?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닌 부도덕한 관계와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이방 여인들을 말합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그런 불명예스런 자들이 이 족보에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유대인들만 구원하려는, 유대인들만을 위한 폐쇄된 혈통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이방인들을 예수님의 족보에 포함시키셨음을 알게 됩니다.
18절부터는 이 족보의 끝에 있는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셉이 마리아와 약혼을 했는데,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가 아기를 갖게 된 것을 요셉이 알게 됩니다. 요셉은 의로운 동시에 마리아를 사랑했기 때문에 조용하게 파혼을 하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요셉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 말고 마리아와 결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처녀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 예수님이 육신을 입으셨지만 죄가 없으시다는 뜻임을 알고 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오는 원죄와 무관하게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앞에서 말한 아브라함으로부터 진행되어온 족보가 요셉까지는 혈연적으로 연결되었지만 요셉과 예수님은 혈연적으로 이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하고 동침한 후에 예수님을 나은 것이 아니라 약혼만 한 상태에서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기 때문입니다. 즉 아브라함으로부터 요셉까지는 혈연적으로 직계이지만 요셉과 예수님은 직계가 아닙니다. 즉 요셉은 예수님의 법적, 사회적인 아버지가 될 뿐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마태는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뱀에게 저주하신 대로 역사는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부수고 구원을 가져다 줄 날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래서 낳고 낳는 역사 속에서 그분이 오시길 기다렸습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그분은 결국 마침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 족보는 예수님이 아담,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다윗의 삶과 고백을 통해 예고되었던 바로 그분임을 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예수님께서 그들의 혈통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족보를 주관해오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과 혈연적으로 이어져 있는 요셉을 선택하셨고, 그 요셉이 예수님의 혈연적 아버지가 아니지만 법적 아버지로 두시고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입니다. 아버지 요셉은 하나님의 계시 속에서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예수님을 낳는 일에 순종했습니다. 요셉의 순종으로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에 속하게 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가문에 속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 족보의 인물들이 예수님께 속하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3:9을 보면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8:58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면 이 족보는 혈연적 족보가 아닌 하나님께서 구속사 속으로 부르신 자들의 계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에 예수님이 들어가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위대한 구속주가 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의 조상들로 선택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위대하게 사용된 것입니다. 주께서는 인간적인 혈연을 뛰어넘어 구원 역사를 이루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혈연적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 그 족보에는 이미 다양한 죄인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희망적입니다. 우리 역시 가문이나, 배경이나 혈연으로 구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적 혈연을 뛰어넘어 예수님과 관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혈통으로 자신들만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넓은 범위에서 자기 백성을 불러 모으시려고 아브라함의 족보 속에서 이미 일하셨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족보를 통해 설명하면서 그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혈연, 민족 집단이었지만 예수님의 오심으로 생겨난 교회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이 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영리 목적으로 설교를 스크랩, 캡처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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