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장 1-12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예수님의 족보와 출생이야기는 예수님을 구약성경이 그림 그려온, 또 이스라엘 역사가 예고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본문에 세례요한이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예수님을 예비했기 때문입니다. 중간을 보면 세례요한은 이사야의 말을 인용해서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라고 말합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을 기다리고, 준비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2장이 말하듯 이스라엘조차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이사야의 말을 선포한대로 먼저 자신이 주의 길을 예비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 길을 예비하도록 활동했습니다. 4절에서 마태는 세례요한이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야생 꿀을 먹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소박함과 가난을 상징합니다.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자신이 선포한대로 그 자신이 세상의 헛된 것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삶을 실천했습니다.
그러면서 세례요한은 2절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타내시고, 되찾으시고, 완성시키십니다. 예수님은 그 나라를 자기 백성들과 이루시고, 다스리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그 나라를 세우실 뿐 아니라 그 나라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나라 자체이신 분이 가까이 오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회개하라고 요청했습니다. 회개는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반역자들에게 내려질 재앙을 피하고 그 나라 백성이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나라를 나타내는 일에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그 나라를 완전히 실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기준에 미달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 믿음은 진실한 회개로 드러납니다.
세례요한의 그런 가르침에 많은 사람들이 반응해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왔고, 그중에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들을 비판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 종교지도자들이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안심하지만 사실은 독사의 자식이라고, 또 참된 회개에 따라오는 합당한 변화의 열매 없이 임박한 심판만 피하려는 자기중심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자들이라고 신랄하게 평가했습니다. 나중에 열매 없는 나무로, 열매 없는 쭉정이로 드러날 때 불태워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이런 표현들은 나중에 예수님께서도 그대로 반복하십니다. 4장 17절에서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말했던 것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라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7장 19절에서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마태는 예수님이 하나님에 의해 예비된 분임을 족보와 탄생 사건을 통해 보여줄 뿐 아니라 세례요한이라는 인물에 의해서도 예비와 소개를 받으신 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삶을 살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준비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준비 방법은 바로 회개입니다. 그는 그 회개를 위해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11절에 나오는대로 세례요한은 회개하게 하려고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그가 준 물세례는 회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물세례는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세례 받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달았고, 하나님께로 계속 돌이키는 삶을 살 것임을 확인시키는 작업입니다. 물세례 자체로는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구원하실 일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성령께서 각 사람을 거듭나게 하셔야만 진정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1절에서 요한은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주께서는 불로 세례를 준다고 말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참된 회개를 요청한 것은 회개가 구원을 위한 조건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받기 위해 억지로 회개를 노력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자는 회개를 합니다. 인생동안 지속적인 죄의 인식을 하고, 씨름하고 성화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믿게 될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자신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실 자에게 죄에 대한 분명한 인식, 찔림을 주십니다. 성령께서 그런 일을 양심 가운데 하십니다. 요한은 그런 자들을 부른 것입니다. 주님께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실 때 구원을 얻는 일이 있도록 죄를 깨닫는 자들을 부른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지만 세례와 같은 외적인 형식이 구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리킨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주체이심을 알렸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착각처럼 단회적인, 한 순간의 죄에 대한 슬픈 감정과 구원에 대한 열망이 구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한 멸망을 자초하는 죄에서 구원받기 위해 예수를 의존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의존하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면 성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것 때문에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안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예수가 자기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일평생 더욱 확인하게 되고, 그 때문에 성도는 죄와 씨름하면서 예수를 더욱 의지하게 되고, 예수를 통해서만 위로와 확신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도에게 열매는 목적이 아닙니다. 그런 죄와 씨름하는 인생을 사는 동안 예수를 더욱 의지하면서 열매를 자연스럽게 맺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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