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16-4:11 김영제 목사(하늘기쁨교회)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는데 그 내용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분인지를 말하며 “기뻐하는 자”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들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기쁨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에 담겨진 기본적인 의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은 예수님이 얼마나 존귀하신 분이신지, 또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예수님이 순종하실 분임을 신비스럽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곧 이어 어떤 사건이 발생합니까? 예수님이 광야로 가십니다. 예수님의 세례와 광야시험, 이 두 가지 사건을 연결해서 다루는 이유는 우리가 읽은대로 성경본문이 그렇게 진술하기 때문입니다. 두 사건이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4:1에 보면 “그때에”라는 말로 세례 받으신 것과 광야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여 관련된 사건임을 본문을 읽는 우리에게 확인시켜줍니다. 같은 사건을 진술하고 있는 마가복음 1장에는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모셨다고 말합니다. 광야로 가신 예수님은 거기서 금식하시고 굶주린 상태로 계셨습니다. 며칠 동안 그러셨습니까?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그 때 시험하는 자, 즉 마귀가 나타나서 세 가지 시험을 합니다.
첫 번째 시험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로 떡이 되게 하라’입니다. 예수님은 40일간 주려서 배고플 때 음식으로 시험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돌로 떡을 만들라고 마귀가 시험하기 이전에 자신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돌로 떡을 만드실 수 있는 분입니다. 아니 떡을 만들기 위해 돌도 필요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귀의 요구를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험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십니다. 4절을 보면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인간이 살 길은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극한의 굶주림 속에서 자신을 위해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결핍된 상태를 받아들이고 가셨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마귀가 예수님께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서 너를 지키시는지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험에서 마귀가 사용한 방법은 첫 번째 시험에서 예수님이 이겨내신 방법을 응용한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첫 시험에서 예수님이 “기록되었으되”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겨내시자, 마귀는 ‘좋다 기록된 말씀인 시편에서 너를 부딪치지 않게 지켜주신다고 했으니 말씀을 근거로 뛰어내려봐라’라고 시험한 것입니다. 이 시험은 자신을 위해 하나님이 개입하시도록 강요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하나님이 너를 위해 그 정도 특별 보호를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 세례 받을 때 하늘에서 들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이 진짜인지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이 창조될 때 있게 된 질서와 법칙들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편에서 하나님을 신뢰할 증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확인시켜주신 그 말씀을 충분한 것을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라고 하시면서 이겨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시험은 마귀가 자기에게 경배하면 온 세상을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사탄 자신이 물러서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마귀, 사단에게 경배했다면 이 세상을 편하게 얻으시고 자신의 주권을 회복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문제를 십자가를 통해 해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편에서 이 길은 쉬운 길입니다. 예수님 자신에게 가장 현실적인 편한 길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돌로 떡을 만드는 능력만 있으실 뿐 아니라 돌로도 아브라함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위한 그럴듯한 방법을 취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원래 뜻과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계획을 자신보다 우선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시험을 이길 때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 가지 시험에서 마귀가 예수님께 의도한 본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엄청난 위치의 능력을 보여봐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관계 속에서 특별한 배려를 해주시는지 시험해봐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원하는 대로 쉬운 길로 가도 되지 않느냐 그렇게 해라.
신앙의 증거, 신앙의 확신을 갖는 것은 능력을 보는 것과 특별한 배려를 받는 것, 특별한 길로 가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이기신 방법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현실을 돌파해야 합니다. “기록되었으되”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하게 여기고 그것에서 은혜를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현재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들도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음을 알고 감사히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나의 감정과 경험, 상황이 개선되기 때문에 그 순간 달아오르는 확신을 증거삼지 않고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믿고 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자원과 능력을 원하는 대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떻게든지 자신과 피조세계에 있는 자원과 가능성을 다 사용하려고 합니다. ‘술을 만들 수 있는 발효의 원리, 그 재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아닌가?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물질과 과학원리, 다 하나님이 이 세상과 인간에게 부여하신 것 아닌가? 그러면 해도 되겠네, 하나님이 원인을 제공하셨네!’하고 저지릅니다. 그것이 사단이 원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거기에 두시고 못하게 하시는가?’하는 반항심, ‘왜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고 못 먹게 하시는가?’하는 불만을 품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와와 아담을 유혹한 본질입니다.
할 수 있다고 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왜 세상 가운데 두셨습니까?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는 능력을 왜 사람에게 부여하셨습니까? 그런 가능성들, 세상의 물질, 사람의 능력이 무한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우상이 될 만한 그런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해서 함부로 그것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세상 과학 기술을 사용하는 영역에서나 신앙적 체험을 추구하는 일에서 있어서나 내재된 가능성을 다 끌어내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능력과 자격과 권리를 가지셨지만 그것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체험이 필요 없으니 무미건조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체험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을 통해서 이뤄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뢰할만한 증거와 사랑의 표시를 요구하는 우리의 본성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체험을 하면 믿음이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자신이 믿음의 주체가 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진짜 사랑하시는지 확인하라는 사단의 유혹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루시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책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것을 자기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증명하셨습니다.
우리는 돌로 떡을 만드는 기적을 원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우리를 위한 영생의 떡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지 시험하기 위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과분할 정도로 증명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쉬운 길을 가기 위해 사단 마귀와 이 세상 정신에 굴복할 이유가 없습니다. 인생 중에 속히 해결해야 할 일,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이루는 가장 쉬운 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보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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