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동방박사와 헤롯의 반응 (마 2장)

따뜻한 진리 2017. 9. 10. 23:02

마태복음 2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그 소식을 알게 된 두 부류가 본문에 등장합니다. 먼저 동방박사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정체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별빛을 특별한 사람의 탄생 신호로 보고 먼 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왔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으면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신비로운 별빛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으로 가서 아기 예수를 찾게 되었고, 값비싼 선물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가 보통 인물이 아니며 경배를 받아야 하는 대상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동방박사들의 태도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준 인물은 헤롯입니다. 이 헤롯대왕은 로마의 허락을 받아 예수님이 나시기 37년 전부터 나신 후 4년까지 유대지역을 다스렸습니다. 헤롯은 왕권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인 아기가 어디에서 태어나는지를 묻고 다니자 헤롯은 그 이야기를 듣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통해 그 아기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을 불러서 그들이 찾는 곳이 베들레헴인 것을 알려주고 그곳에서 가서 자세히 조사하고 자기에게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덕분에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이 나신 동네를 알게 되었고, 아기 예수께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헤롯에게 가지 말라고 막으셨습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을 이용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왕위를 지키려는 불안감 때문에 아기 예수와 비슷한 연령대의 아기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탄생 소식에 대한 전혀 다른 두 가지의 반응을 마태는 기록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오셨지만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고 요한이 말한 것처럼 예수님을 알아보는 자와 알아보지 못하는 자는 전혀 다른 반응을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뿐 아니라 예수님의 전 생애동안 이 세상이 예수님에 대해 반응하는 것을 예고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자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자기에게 오신 것을 감격스러워 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구원을 기대했지만, 어떤 자들은 예수님이 자기에게 어떤 손해나 불편을 끼치지 않았음에도 불안과 시기와 분노를 느끼면서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특별히 마태는 1장에서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 속 이방인들의 등장을 통해 중요한 것을 말했던 것처럼 본문 2장에서도 이방인에 해당하는 동방박사들을 긍정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기다리고, 기뻐 맞이해야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습니까? 2절이 말하듯이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기대에 차서 흥분한 것이 아니라 심란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직접적인 약속을 받고 하나님의 인도와 사랑을 직접 경험한 이스라엘보다 오히려 이방인들이 합당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나 죽고 부활하신 후의 초대교회에서나 동일했습니다. 장자에 해당하는 자들은 냉담하고 불만에 가득 찼고, 버려진 자들로 여겨졌던 이방인들이 예수께 가까이 나왔습니다.

 

    마태는 아기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을 이야기하면서 중간 중간에 구약성경을 인용합니다. 6을 보면 마태는 미가서 5장에 있는 내용을 인용하면서 지리적으로 미미한 베들레헴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특별하게 여겨진다는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요셉을 시켜서 애굽으로 피신해 있다가 나오게 하신 것에 대해 마태는 15에서 호세아 11장의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를 인용해서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 헤롯에 의해 유아학살이 일어난 사건에 대해 18에서 마태는 예레미야 31장에 있는 라마에서 라헬이 슬퍼한 내용을 인용합니다. 라헬은 야곱의 아내이자 요셉과 베냐민의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라마는 라헬의 무덤이 있던 곳이고,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가면서 라마에 모였던 것을 보면서 라헬이 무덤에서 자기 자식들, 즉 후손들을 잃게 된 것을 슬퍼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마태는 라헬이 슬퍼한 것헤롯에 의해 죽임당한 자녀들의 어미들이 슬퍼한 것예수께서 사람들의 죄 때문에 버림당할 슬픔을 연결시켜서 예언의 연속된 성취로 본 것입니다. 또 헤롯이 죽은 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갈릴리 나사렛으로 가게 됩니다. 이에 대해 마태는 23에서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태가 이렇게 네 개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말하는 이유는 첫째로 예수님이 바로 약속된 그분으로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된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마태는 베들레헴, 애굽, 라마, 나사렛이라는 지역들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들에서 경험한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와 이미 함께 한 역사였음을 말합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릴 때에,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갈 때에, 모세가 바로의 유아 학살 정책 속에서 살아남았을 때에, 이스라엘이 열 가지 재앙을 목격하고 홍해를 건너 출애굽 해서 광야로 갈 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에,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이미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지나실 곳들을 이스라엘이 이미 다녔던 것입니다. 그렇게 앞으로 오실 예수님과 관련된 지역들을 이스라엘이 먼저 지나왔지만 그들이 보여 준 것은 실패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사용하신 예수님의 모형으로서 인간의 죄의 실상을 드러내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풍성하게 드러냈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는 실패했습니다.

 

    마태가 족보 이야기에 이어 예수님의 출생이야기 속에서 말하려는 것은 예수님이 오래 전부터 계획된 바로 그분이고, 약속된 분이고, 우리를 위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는 초대교회에 예수님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그 근거로써 구약을 사용하고 있고, 구약의 내용들이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예수님을 예고하는 그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단순히 하나님이 인도하신 역사를 살았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그분을 통해 얻는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풍성하게 드러내기 위한 모형들로 사용된 것입니다. 마태는 그 이스라엘의 역사가 지시해온 바로 그분이 여기 오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가 말하고 있는 그분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듯 그 사실을 즉시 깨닫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는 자들은 헤롯처럼 반응했고, 외부인이었던 족보 속 이방 여인들과 동방박사들이 믿음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까? 정말 예수님을 알고 싶다면 성경전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성경전체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살아서는 안 되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연구하면서 왜 이 본문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하고, 바라보게 만드는지 깨닫기 위해 씨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복음을 풍성하게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얼마나 광대한지를 보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약성경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일, 사이비 교주들이 성경을 가지고 자신을 약속된 자로 지칭하는 속임수에 넘어가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