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복 있는 사람 3 (마 5:1-12)

따뜻한 진리 2017. 10. 22. 22:16

마태복음 5:1-12 (3)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상수훈 중 팔복을 다루고 있는데, 앞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와 애통하는 자에 대해 살폈습니다. 이 시간에는 온유한 자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 대해 살펴볼 것인데 그 전에 잠시 팔복 전체를 이해하는 방법을 말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팔복의 내용들 중 어느 한 가지만 우리에게 있다면 복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상태로 살고, 어떤 사람은 애통하는 상태로 살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팔복의 모든 것이 거듭난 자의 인격 안에서 경험되어 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팔복에 나오는 상태들을 이전에 설명한 심리적, 상담적 의미로 해석하거나 세상 사람들의 내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상태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팔복은 세상이 추구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세상이 볼 때 팔복은 오히려 병적이고, 결핍되고, 건전하지 않은 정신건강 상태인데 주님께서는 그것을 복되다고 말하셨습니다. 오늘 다룰 온유한 자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역시 세상 관점으로는 함께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하다는 것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표정이나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입니다. 누구를 해치거나 기분 상하게 할 것 같지 않은 그런 사람을 누구나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유한 자는 단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를 안 믿어도 그런 온유한 성품을 가진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자의 의미를 좀 더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시편 37편을 보면 진실로 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자신들이 강한 줄 착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는 악인들과 달리 여호와를 의지하는 약한 자입니다.

 

    즉 성경에서 온유하다는 것은 자신이 겪는 환경이나 조건에 대해 강하고 거칠게 대응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하나님의 처분을 겸손히 기다리는, 하나님 앞에서 너무 작아서 교만해질 위험이 없는 겸손한 자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거칠지 않은 부드러운 사람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약해지는 자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이 땅, 즉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판단 앞에서 견고한 마음이 녹아 부드러워지는 자들이 천국이라는 생존의 근거지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김지하의 시나 김광석의 노래가 의미하듯 정의가 짓밟히는 것에 대한 저항,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정의실현에 대한 열망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의는 예수님과 전혀 관련 없이 추구될 수 있습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관련 없이 자신들의 종교적인 의를 추구한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거듭난 자가 자기 안에 의로운 것이 없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옳은 자만이 심판을 피할 수 있는데, 자기에게는 하나님이 진노하실 불의만 가득하기 때문에 절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의롭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간절히 찾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그 해결책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만족을 누립니다. 배부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 사람들은 불의를 인식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이 정의인지 완전하게 설명하거나 실행할 수 없습니다.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이전의 것을 뒤엎고 새로운 것을 세워도 다시 부패하는 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자기 자신을 보고, 세상에 대해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오셔서 약속하신 것들이 성취되는 것, 인간의 죄를 뚫고 자신의 나라를 이룩하실 하나님의 신실하신 행동을 기다릴 뿐입니다. 주께서 오셔서 새롭게 하시길 고대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 악을 처벌하시고, 정의를 완전하게 실현하실 것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팔복의 온유함은 내가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칭찬을 얻기 위해 애쓰는 노력이 아닙니다. 또 팔복에서 의에 주림은 정의심에 불타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팔복의 첫 번째인 심령의 가난부터 연결됩니다. 가까이 다가오는 천국 앞에서 하나님을 반역한 내가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는 심령의 가난함을 느끼고, 그 멸망의 원인인 죄 때문에 애통함을 느끼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약해져서 온유한 자가 되고, 불의한 자신을 의롭게 하실 그리스도의 의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거듭난 자는 의롭지 않은 자를 의롭게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역사가 완전히 성취되길 고대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복이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구원이 임하였다면 그런 내적 경험들이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마음의 가난한, 애통함, 그래서 약해지는 온유함, 의를 갈망하는 배고픔은 구원받은 자가 겪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는 자만이 겪는 구원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