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누구에게 보이려 하는가? (마 6:1-18)

따뜻한 진리 2017. 11. 19. 22:09

마태복음 6:1-1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칭찬과 자랑은 사회의 미덕입니다. 자기가 잘 한 것을 적극적으로 자랑해야 손해 보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자기가 잘한 선행을 기록으로 남겨서 좋은 대학을 갑니다. 연말연시가 되면 사람들의 선행을 돈의 액수로 측정하고 발표합니다. 착한 일 하면 서로 사진 찍어서 sns에 올려서 감동을 퍼뜨립니다. 교회 역시 신앙적 행위들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시상하고 치켜세웁니다. 그렇게 모범적인 행동을 모두들 보라고 드러내는 것은 긍정적인 자극과 효과를 퍼뜨립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선한 일을 하도록 동기부여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칭찬받기 위해 의로운 행위를 드러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구제할 때에 사람들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은밀하게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행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사람들 들으라고 마음에도 없는 멋진 말로 꾸미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들으시는 하나님, 사람이 말하기 전에 알고 계신 하나님께 고백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금식 역시 사람들이 알게 티내는 일은 하지 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구제, 기도, 금식이라는 대표적인 종교행위를 말씀하신 내용의 공통점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 특별히 기도를 언급하실 때는 우리가 주기도문이라고 부르는 기도를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주기도문은 단지 모범적인 기도문일 뿐 아니라 본문에서 말하는 구제, 금식, 기도를 포함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하루치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구제하고, 자기 소원을 관철시키기 위한 금식이 아니라 시험에 들지 않고 죄와 싸우기 위해 금식하,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이 땅에 있는 자신의 순종을 통해 이뤄지기를 바라는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하듯 실천되어야 함을 기억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여기는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얼마나 아는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가 기도를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 바른 기도가 바른 실천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앙적 요소들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예수님께서는 기본적 태도를 주기도문을 통해 알려주신 것입니다.

 

    구제를 왜 합니까? 우리에게 있는 것이 전부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내 먹을 것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구제와 용서는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물질적인 구제 뿐 아니라 영적인 구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금식은 왜 합니까? 금식은 먹을 것이 있지만 일부러 굶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양식을 부족함 없이 주셨지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기에 그것을 방해하는 죄와 씨름하면서 하나님 앞에 바른 태도를 회복하려고 육신의 만족을 포기하는 것이 금식입니다. 기도는 왜 합니까?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우선순위에 두고 순종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이 세상을 자기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도 살아지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종의 삶, 하나님을 왕이라고 부르는 백성의 삶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제와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실상을 아는 자가 고백적으로 하는 일입니다.

 

    앞에서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복수, 원수사랑이라는 요소들 속에서 사람이 자기가 이정도면 괜찮은 줄 알고 도덕적 자만과 위선에 빠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신앙의 요소들을 가지고도 종교적 자만과 위선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구제와 기도와 금식의 동기가 되시는 하나님의 시선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를 움직이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외식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외식은 연기한다는 것입니다. 속은 아닌데 그런 것처럼 속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짜 이미지로 나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고백적 행위가 아닌 자기를 높이는 행위입니다. 사람들 머릿속에 새겨진 나의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흡족해 하는 것입니다. 자기 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자신의 삶 속에서 하는 신앙적 행위들과 선행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일을 우리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반대로 남이 지켜보지 않고, 잔소리 하면서 의무를 부과하지 않으면 자기 신앙을 관리하는 일에 무관심하고 게으른 채로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이 인정하실 일들을 자발적으로 단순하게 행할 것입니다. 누가 평가를 하든지 안 하든지, 지적을 하든지 안 하든지, 칭찬과 인정을 하든지 안하든지 기쁨으로 지속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묵묵히 자기 일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은 피조물들이 배반하고 은혜를 알지 못하면서 자신의 영광을 가리지만 계속해서 묵묵히 일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누가 알아주든 모르든, 나의 선행과 신앙적 열심이 효과가 있든 없든 묵묵히 자발적으로 지속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묵묵하게 가신 것처럼 성도들은 그 길을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실 것과 위로하실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