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19-34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우선시하며, 하나님이 삶의 기준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지켜야할 도덕과 양심의 수준을 세상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을 기준으로 따르는 자가 됩니다. 또 자신의 종교 행위와 선행을 자기만족과 자기포장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과 하나님이 관계가 있음을 고백하기 위해서 합니다.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를 더 풍성히 하기 위해서 기도와 금식을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믿음과 감사로 인해 구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없이 형식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 위선적인 종교행위, 자기 자랑을 위한 선행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본문에서 예수님은 소유에 대한 집착과 염려 역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통의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을 쌓아 놓아야 안심을 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욕심대로 만나를 쌓아두었다가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썩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썩지 않고 도둑맞을 일 없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어야 진짜 우리의 것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둘 수 있습니까? 하늘에 물건을 쌓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하늘에 쌓을 수 있는 보물은 무엇입니까? 이 하늘은 눈에 보이는 하늘이 아닙니다. 육신의 눈으로만 보는 자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을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은 어두운 상태입니다. 그러나 눈이 밝은 자는 육신의 눈이 볼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보는 자로서 그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는 것은 24절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또 33절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 나라에 우선순위를 두라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많이 쌓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만족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사는 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만 바라는 삶을 살기보다 돈이나 물질을 섬기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염려 때문입니다. 25절부터는 예수님께서 그 염려의 문제를 다루신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의 새는 애써 농사를 짓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들의 꽃은 애써 옷을 만들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입히시는데 하물며 사람들을 먹이지 않으시고, 입히지 않으시겠냐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염려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의 아버지로서 책임지시고 보살피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빙자해서 게으르게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수고해야 합니다. 땀 흘려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노력으로 무엇인가 얻은 것처럼 착각하지 않고, 하루하루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로 살아야 합니다. 하루하루 의존하는 것이 하나님의 우리에게 의도하신 것입니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일용한 양식을 구하기보다 평생 먹고 살 것을 한 번에 하나님께 얻는 믿음을 추구합니다. 탐욕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일확천금을 노립니다. 부자들을 부러워하고, 대박을 꿈꿉니다. 인생 전체를 편하게 보장해줄 직업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쌓아 둘 곳이 없을 만큼 복을 얻는 것이 좋은 믿음의 결과라고 착각들을 합니다. 그것은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쌓아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손에 쥐고, 쌓는 만큼 하나님께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한 번에 주실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와의 긴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가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단번에 모든 것을 주지 않으시기에 세상살이는 불안할 수 있습니다. 고생스러울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어떤 염려와 고생도 안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염려 자체가 불신앙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34절을 보면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이 고생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의 것이고, 내일 염려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욕심을 가지고 인생의 모든 문제와 역경을 다 대비하고, 다 해결하기 위해 염려하지 말고 하루하루 그날 것만 생각하고 수고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루하루 하나님을 의존하면서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있는 것을 보장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보장받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잊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린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단 번에 받아서 챙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너무 많은 재물을 주시지 않고 적절한 염려와 불안을 주셔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하시는 것이 복입니다. 매일 만나를 거두게 하셨던 것, 일용할 양식을 구하게 하시는 것은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최소한의 애착을 어떻게든지 끌고 가시려는 하나님의 애정 어린 방법입니다.
우리는 헛된 욕심을 가지고 근심하지 말고 오늘 하루에 대해 하나님께 충분히 감사합시다. 또 자신의 욕심으로 위한 염려와 근심 때문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그 여력으로 하나님 나라와 다른 영혼들을 위해 근심하고 기도합시다. 고린도후서 7장에 나오는 대로 우리와 다른 사람의 참된 구원과 회심을 위한 근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근심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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