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정말 깨닫고 지켜야 할 것은 (마 12:1-50)

따뜻한 진리 2018. 2. 4. 23:09

마태복음 12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제자들과 다니시다가 밀 이삭을 뜯어서 드셨습니다. 당연히 손으로 비벼 껍질을 어느 정도 날린 다음 드셨을 것인데, 그것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 중에 하나였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기준들을 지킵니다. 이스라엘 호텔들에는 안식일에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모든 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습니다. 그 정도로 그들은 무엇인가를 안 하는 것이 안식일에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또 안식일에 한 쪽 손이 마비된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동들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어겼다고 지적하자 예수님은 다윗이 성막에 있는 떡을 먹은 것,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가장 바쁜 것, 유대인들이 구덩이에 빠진 양을 구해내는 것은 안식일에 해도 되는 일로 여기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무지와 모순이 드러나는 예수님의 설명에 반박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수록 그들은 예수님을 더욱 죽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이 눈 멀고 말도 못하는 자를 고쳐주시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힘을 빌어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는(참고9:34) 망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사탄, 귀신의 힘을 빌어서 능력을 행하는 것이라면 사탄의 나라가 스스로 무너지는 꼴이지 않겠냐고, 바리새인 너희들도 귀신 쫓는 일을 하는데 그러면 그것은 누구의 힘을 빌어서 하는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는 일이 최소한 사탄의 일일 수 없고, 분명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인데 바리새인들이 그런 식으로 욕되게 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아무 일도 안하고 제사를 멋지게 드리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 주셨으니 다른 생명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돌봐야 참된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켜서 자기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것으로 자기들의 사회가 바르게 작동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하시듯 다른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그런 인식, 이해에는 하나님, 이웃, 자기 자신이 인격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정곡을 찌르는 반론에 대답을 할 수 없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보이신 이적에 대해 뒤틀린 시선을 갖고 있으면서도 표적을 더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호기심의 대상으로 여긴 것이고, 예수님이 어떤 일을 많이 하실수록 문제 삼을 것들을 더 많이 잡아내기 위해서 그런 요청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사흘 동안 있다가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도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 수 있는 분명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고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많은 증거가 없이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엎드린 니느웨 사람들과 솔로몬 시대의 남방여왕이 너희를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으로 인해 무엇이 죄인 줄 알게 되고, 율법을 지키면서 자신들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깨끗해진 상태에 귀신들이 더욱 많이 찾아와 오히려 더 심각한 상태가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 진정 예수님을 알아보고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피를 나누고 함께 살아온 어머니와 형제들 같은 가족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가 예수님의 가족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처럼 겉으로는 매우 종교적이면서도, 실상 하나님이 보내신 분을 반대할 수 있고, 육체적으로 예수님과 가까우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배척과 반대를 당한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반대한 것은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 자들인데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죄로 인한 무지 때문입니다. 그 무지를 근거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께 고의적으로 적대행위를 했습니다. 정말 자신들을 위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인데, 그들은 예수님을 밀어냈습니다. 예수님이 선한 일을 하셨음에도 그것을 보지 못했고,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 수 없었습니다.

 

    안식일은 죄로 인해 쉼이 없는 이 세상에 오직 하나님께서 소망이 되신다는 것을 고백하고 경험하는 하루여야 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참된 안식을 주시는 좋은 분이심을 안식일에 서로 고백해야 했습니다. 죄로 타락한 피조물들을 하나님께서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안식일에서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을 그런 것을 깨닫지 못하고, 안식일이라는 은혜를 깨닫는 날을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오늘 날에도 우리에게 영적 무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과 고정관념이 그리스도 위에 있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아닌데, 우리끼리 목숨을 걸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집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오랜 기간 지켜왔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죄인 취급하고, 정죄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정말 집중해야 할 복음의 핵심, 거듭남, 바른 성경의 해석 이런 것을 바르게 알고, 믿고, 행하는 것에는 어설프면서 교회 행사, 회의 순서, 서열, 직분 얻는 것, 이런 것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싸우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일에 장애가 되는 것은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풍성히 드러낼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고난이 있더라고 감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