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1-53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마태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반대하고 비난했던 것에 대해 말하다가 이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메시지에 관해 몇 가지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하나님 나라 메시지에 대한 비유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메시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그로 인해 교회 공동체나 세상에서 경험하게 되는 긴장상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즉 본문 앞 11, 12장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외적 반대를 말했다면 이어진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공동체 안에 일어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반응과 현상을 다룹니다.
먼저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렸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이 먹었고,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져서 싹이 나왔지만 곧 말라 죽었고,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져서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친절히 해석해주셨습니다. 씨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주님의 말씀이고 땅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로 인해 굳어진 길가 같은 마음이라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해 기회를 잃게 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말씀에 변화가 있는 듯 하지만 돌밭에 뿌리가 내리지 못해 약하듯 믿음으로 인한 고난이 생기면 신앙을 버리게 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왕성하게 자라나는 것 같지만 세상 염려와 욕심도 왕성해서 그것이 가시가 되어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는 말씀을 깨닫고, 제자도를 가지고 순종하는 가운데 열매, 결실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은 흔히 신자가 누리는 복으로 설명되곤 하는데,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정말 거듭난 성도라면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열매를 맺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는 가라지 비유도 말씀하셨습니다. 앞의 비유에서는 씨가 주님의 말씀이었다면 여기서는 씨가 사람을 의미합니다. 밭의 주인이 좋은 씨를 땅에 뿌리지만 사탄이 뿌린 가라지들도 함께 자라납니다. 그것들이 함께 자라나다가 눈에 띄었을 때 종들이 주인에게 와서 가라지들을 뽑을지를 묻자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다치기 때문에 추수 때까지 두었다가 가라지는 불태우고 곡식만 곳간에 들인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 까지 사탄의 방해가 계속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교회 안에 누가 가라지에 해당하는 거짓 신자일까 찾아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믿는 자들의 무리 안에도 사탄의 방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모델처럼 사용하시지만 완벽한 공동체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물로 물고기를 잡을 때 좋은 물고기와 버릴 물고기를 다 모아서 잡고 나중에 좋은 것만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종말 때까지 세상과 교회 속에서 모두가 함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임하기까지 교회에는 거짓 신자가 있을 수 있고,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그렇게 이끌어 가시는 이유는 구원받을 자들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구원은 시간 속에서 완성되기에 분명 구원 받을 신자도 현재의 시점에서는 구원받지 못한 자처럼 미숙한 상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알곡과 가라지를 분류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는 천사들에게 명령하셔서 악인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따로 골라내 영원한 심판 가운데로 보내실 것이고 자신의 자녀들은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 가운데 있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들어올 것을 초대하는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복음으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하는 자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위기를 겪게 될 것 같지만 하나님 나라는 끊임없이 성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겨자씨와 누룩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겨자씨가 자라면 새들이 깃들 수 있는 나무가 되는 것처럼, 또 반죽에 들어가는 누룩이 아주 적은 양이지만 빵을 크게 부풀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분명 확장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심판이 임할 것을 알고, 겨자씨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천국을 믿음으로 보는 자는 그 나라를 위해 헌신할 것입니다.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자가 그 밭을 사기 위해 자신의 소유를 다 파는 것처럼, 극상품 진주를 발견한 장사꾼이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사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고귀함과 영광스러움과 행복을 보는 자는 그 나라를 위해 헌신할 것입니다. 그렇게 헌신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52절이 말하는 대로 곳간에서 옛것과 새것 즉 구약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인 신약의 말씀을 어느 누구보다 풍성하고, 분명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이 구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자들은 성경의 뜻을 제대로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나 종교지도자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의도적으로 반대했다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자들도 신앙을 버릴 수 있고, 교회 안에도 가라지와 같은 악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자기 백성들이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환란 속에서 인내하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고, 보호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가실 것입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말 씻어야 할 것은 (마 15:1-20) (0) | 2018.02.25 |
---|---|
세례요한의 죽음 (마 14:1-36) (0) | 2018.02.18 |
정말 깨닫고 지켜야 할 것은 (마 12:1-50) (0) | 2018.02.04 |
인간적 기대를 버리고 주님을 알기를 (마 11:2-30) (0) | 2018.01.28 |
복음 전하는 자세를 가르치신 주님 (마 9:35-11:1) (0) | 2018.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