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헤롯이 이복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취한 일을 비판한 것 때문에 세례요한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헤롯은 세례요한을 죽이려 했지만 백성들이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죽이지 못하고 있다가 자신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의 소원을 이용해서 세례요한을 죽입니다. 헤롯은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예수님을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마태가 여기서 세례요한의 죽음을 말한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당시 유대지역의 왕이었던 헤롯에게 까지 알려졌음을 말하는 것이고, 또 죄 없는 세례요한의 비참한 죽음이 예수님의 죽음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문맥상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죽음을 슬퍼하셔서 홀로 계시면서 기도하고 싶으셨던 순간이었음을 설명하려는 의도가 가장 큽니다. 그래서 13절, 22-23절, 34-35절의 내용들은 예수님께서 가능한 군중들로부터 떨어져서 기도하시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거기까지 몰려들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의 죽음과 장례에 대한 소식을 들으신 후 배를 타고 빈들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까지 따라왔고, 예수님은 그들 중에 있는 병자들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저녁끼니를 자신들이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각자 해결하도록 보내자고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라면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예수님께 확인시켜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오라고 하셔서 적어도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먹고 남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먼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신 후 홀로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캄캄한 밤바다를 배를 타고 가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찾아가셨는데, 예수님은 물위를 걸어서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멀리서 본 제자들은 반가워하기는커녕 어둠 때문에 유령인 줄 알고 두려워했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기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성격 급한 베드로는 예수님이 맞다면 자기가 물위로 걸어서 예수님께 가게 해달라고 말하면서 물속으로 발을 내딛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물에 빠지게 되고 결국 예수님이 건져주시면서 왜 의심했냐고 한 마디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믿음이 없다고 하신 이유는 그에게 물 위를 걸을 기회를 주었는데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물에 빠졌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애초에 멀리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셨지만,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서 자기에게로 오실 수 있는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그런 믿음도 없는데, 그저 예수님이 자기를 물위를 걷게 하실 때 믿겠다는 것은 자기의 경험을 근거로 믿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체험을 근거로 자기를 믿기 원하셨다면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해도 물에 빠지지 않게 하셔서 예수님 자신을 신뢰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베드로의 의심은 바람에 영향을 받아 ‘예수님께서 내가 물 위를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였다기보다는 앞서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에 대한 의심, 물 위를 걸어 오실 수 있는 예수님 자체에 대한 믿음 없음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큰 관심이 없었던 무리 뿐 아니라 제자들 역시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사람들은 막상 예수님이 눈에 보이게 가까이 계실 때는 예수님을 잘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먹을 것, 자신의 몸의 고통을 해결 받는 것에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시험할 때 자신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돌로 떡을 만드시지 않았지만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서는 엄청난 기적을 통해 먹고도 남을 만큼 음식을 제공해주셨습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지 않으셨던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서는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믿음 없는 제자가 호기를 부리다가 물에 빠질 때 예수님은 신속히 건져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다루실 수 있으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셨고, 자연의 어떤 것에도 제한을 받지 않고 일하실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해 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능력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을 먹이셨던 그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게 하신 분이심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자신이 하나님으로서 그런 능력이 있음을 자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부터 백성을 사랑하신 그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고생하시고, 악한 자들의 반대를 겪으시면서, 또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고 자신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의 죽음이라는 극심한 슬픔을 겪는 순간에도 예수님은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제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여전히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자들을 오래 참으시면서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고통 중에도 사랑을 표현하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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