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연약한 자들의 고백을 사용하심 (마 16:13-28)

따뜻한 진리 2018. 3. 11. 18:57

마태복음 16:13-2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기적을 베푸는 예수님을 귀신의 왕이라고, 또 안식일과 정결예법을 무시하는 망령된 자로 여겼고, 헤롯은 예수님을 죽은 세례요한이 살아난 것으로 여겼습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확신하지 못해서 죽기 전 제자를 통해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시면서 좀 더 바르게 자기를 알게 하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 자신을 누구라 하는지 물으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세례요한, 어떤 이들은 엘리야,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라고 합니다라고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인데,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았던 직분은 왕, 선지자,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세 가지 직분을 완전하게 수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갖고 계신 분임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놀라운 사실을 말한 베드로가 복되다고 칭찬하셨지만 그 고백이 베드로의 이해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결코 스스로 알 수 없었던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에 고백할 수 있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 이름이 베드로인데,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베드로가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카톨릭은 이 반석을 베드로 자신으로 해석해서 교회의 첫 지도자인 베드로에게서 후대로 이어지는 교황권의 권위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개신교는 이에 대응해서 본문의 반석은 베드로 개인이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 불변하는 진리라고 해석해 왔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반석이 가리키는 대상은 분명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고백한 베드로 자신이 교회의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제도나 어떤 외형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고 순종하는 베드로와 같은 성도들로 구성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통해서 교회를 이루십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바르게 전달해서 다른 영혼들이 천국백성이 될 수 있게도, 되지 못하게도 만드는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됩니다. 구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나 사람들의 죄가 해결 받느냐 못 받느냐가 성도들의 복음전파를 통해서 이뤄지도록 하시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 열쇠를 제자들에게 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이 세울 교회의 지도자들이 다른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매우 중요한 권한을 갖게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카톨릭에서 말하는 교황무오설 교리처럼 교황 같은 한 인간이 절대적 기준이 되고, 흠이 없고, 죄를 용서할 권한이 있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교회의 기초로 삼으시고, 제자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지만 그들은 여전히 연약한 죄인이고, 실수를 합니다. 베드로는 17절에서 칭찬을 받지만 얼마 있지 않아 22절에 가면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그러시면 안 된다고 붙잡고 막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사탄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을 의심했었고, 베드로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했지만 예수님을 여전히 몰랐습니다. 또 그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고, 초대교회를 이끌면서도 사도 바울에게 꾸짖음을 받기도(2) 했습니다.

 

    주께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한 반석은 견고하고 믿을 만한 토대가 아니라 깨어지기 쉬운 인간 베드로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연약한 자들로 교회를 이루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십니다.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사용하신 것처럼 주께서는 우리를 자기 몸의 지체로 사용하십니다. 너무나 귀한 소명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살기 위해서가 아닌 죽음을 향해서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꾸짖음을 당한 베드로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좋은 도구가 되기보다 예수님을 어리석게 방해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죽겠다고 하면서도 어느 순간에 예수님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성취를 즐기고 있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쓰임 받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쓰임 받는 일이 카톨릭이 실수하고 있듯 절대적 권위, 특권이라고 자랑할 일이 아니라 막중한 책임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섬겨야 할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자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고, 자기 백성들에게만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먼저 믿은 자들을 통해 또 다른 영혼들을 생명으로 불러내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알기 위해 힘써야 하고, 또 진실하게 전해야 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 되지 않고, 자기를 위해 복음을 전하지 않고, 주님을 위해 그리고 다른 영혼을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교회는 주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에게 오신 구원자이시고,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분명하게 전해야 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그것입니다. 먼저 모인 자들이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믿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확인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 밖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교회의 할 일입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이고 은혜이나 신비롭게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우리 같은 연약한 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