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2:14-36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출애굽기 11장과 12장에는 열 번째 재앙에 관한 내용이 네 차례 반복됩니다. 첫 번째는 11장 1절에서 10절까지로 하나님 말씀대로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열 번째 재앙 장자의 죽음이 임할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12장 1절에서 14절까지로 그날 밤 어떻게 해야만 각 가정이 죽음을 보지 않고, 그 재앙을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하나님이 알려주신 내용입니다. 세 번째는 12장 21절에서 28절까지로 앞의 내용을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전달한 내용이고, 네 번째인 29절에서 36절까지는 실제 열 번째 재앙이 일어난 그날 밤의 시점에서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네 번의 진술이 동일하게 열 번째 재앙을 언급하지만 기계적으로 반복되지 않고, 조금씩 다릅니다. 이 시간에는 이 내용들을 종합해서 핵심 주제인 그 어린양의 죽음과 넘어감에 대해 살피고자 합니다.
이 어린 양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 의미는 출애굽 이후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주신 제사 방식에 드러나 있고, 이사야 선지자가 고난 받는 어린양으로 예고하고 있고,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가리킨 것에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그 어린양을 구원 받은 백성들이 영원토록 찬양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로 말합니다. 우리는 유월절의 의미를 그렇게 예수님과 연관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린양은 죽이는 날 4일 전에 선택되었습니다. 어린 양, 이 희생양은 양이냐 염소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병들거나 다친 곳이 없는, 흠이 없는 것 중에서 태어난 지 1년 정도 된 수컷이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어린양은 성급하게 골라져서 희생되지 않고, 충분한 시간 전에 주의 깊게 선정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린양에 의존하기로 한 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선택된 희생될 어린양을 며칠 동안 지켜봐야 했을 것입니다.
어린양은 한 가정에서 식구 1명당 1마리씩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를 위해 한 마리만 준비하면 되는데, 어떤 가정이 어린 양 한 마리를 다 먹을 만큼의 식구 수가 안 되면 식구 수가 적은 다른 가정과 함께 해서 한 마리를 준비하면 되었습니다. 열 번째 재앙이 임하는 그 날 해가 지고 어두워질 때에 각 가정별로 집에 모여 그 어린양을 죽이고, 그 피를 큰 대야에 담아 정결을 의미하는 우슬초 다발을 붓처럼 사용해서 자기 집 문틀에 발라야 했습니다. 이제 식구들은 그 고기를 불에 구워서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어야 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는 식사 후 여유롭게 저녁시간을 보내다가 잠들 사람들처럼 복장을 한 것이 아니라, 당장 어디론가 멀리 떠나야 할 사람들처럼 허리띠를 매고,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잡고, 신속하게 먹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양을 택할 때 식구들이 먹을 양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고기를 남기면 안 되고, 혹 남았다면 아침까지 불태워야 했습니다. 집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온 애굽에서 처음 난 생명들을 죽이시는 동안, 아침이 될 때까지 문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날 밤 사이에 애굽의 가정에서는 장자들이 죽었고, 이스라엘의 가정들에서는 어린양이 죽었습니다.
11장 7절을 보면 그날 밤에 이스라엘에서는 개 한 마리도 짖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 일 없이 조용하게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양의 피를 발라 죽음을 피했다는 것인데, 어떻게 한 가정도 예외 없이 어린양을 잡는 규례를 실행했을까요?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는 완악하게 하시고 자기 백성들은 유순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이스라엘 전체가 재앙을 두려워하고 어린양을 잡는 일에 동참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는 확신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 가정도 죽음을 보지 않은 것입니까? 애굽 땅 이곳저곳에서 곡소리가 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 때문에 마음 놓고 편하게 잠을 잤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애굽 땅에 정말 죽음이 임할지 확신하지 못한 채 그저 전체 분위기에 휩쓸려 어린양을 규례대로 잡았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정말 양의 피가 자기 집 장자의 죽음을 막아줄 수 있을지 의심하면서 불안해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의 내면이 어떠하든지 오직 약속대로 어린양의 피를 보시고 넘어가셨습니다.
믿음은 그런 것입니다. 양의 피를 보시고 하나님이 넘어가셨다는 것은 피를 바르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고, 양의 피를 바르라는 말씀에 순종한 사람의 믿음이 완벽해서도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구원의 효력, 능력은 믿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인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어린양의 피는 죽음을 내쫓는, 무속신앙에서처럼 부정함을 몰아내는 역할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쫓아내야할 악한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그 집안에 있는 자들이 악하고 더러운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슬초와 함께 어린양의 피는 그 집안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해야 함, 죄 문제를 처리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만족을 드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유일하게 그 일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자신의 몸으로 고난을 당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가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열 번째 재앙에서 이스라엘에게 다른 선택이 없었듯이 우리에게도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씻어주시고, 가려주시는 유일한 어린양이십니다.
모든 인간은 죽임 당해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죄를 씻어주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려줄 방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이라는 방법을 제시하셨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길에 순종하는 것이 살 길임을 말해줍니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이 제시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유일한 구원 방법이 하나님의 독단적이고 편협한 구원방법이라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원칙적으로 우리 같은 죄인을 지옥에 보내시는 것이 창조주요 심판자인 하나님이 하셔야 할 정당한 일입니다. 사람은 구원의 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지혜에 감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같은 자들을 구원해 주시는 일은 이상하고 신비한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예수 믿는 자를 구원해 주시는 일이 신기하고 이해할 수 없는 감사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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