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유월절을 기억함 (출 12:37-13:16)

따뜻한 진리 2018. 10. 7. 22:27

출애굽기 12:37-13:16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어린양의 피로 장자의 죽음을 피하게 된 유월절 사건은 출애굽 전 애굽에서 한번 일어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유월절을 계속 기억하고 재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사건이 지나고 나서 나중에 유월절을 기념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1214, 17, 24절을 보면 유월절 준비하는 방법을 모세를 통해 알려주시는 과정이었는데, 그 시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월절을 앞으로 계속 지켜야 한다고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 사건이 일어난 그 날 자체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그 날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지키게 하려고 그 유월절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게 하신 이유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 하루를 기념하고 나면 그 다음날부터 7일간 무교절을 연속해서 지켜야 했습니다. 장자의 죽음을 피한 날과 무교병을 먹는 칠일을 합쳐서 유월절 또는 무교절이라고도 말합니다. 유월절에는 누룩이 들어있지 않은 무교병, 즉 발효되지 않은 빵을 먹어야 했을 뿐 아니라, 집안에 있는 누룩을 모두 치워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장자의 죽음 이후 상황이 급변해서 이스라엘은 언제든 애굽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빵을 발효시킬 여유가 없을 만큼 급박함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또한 누룩은 악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유월절 행사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이방인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할례를 받았으면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이미 구원의 범위가 단지 혈통적 이스라엘에 한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면 먼저 왜 유월절이 무교병을 먹는 것과 함께 지켜져야 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봅시다. 유월절 사건과 무교병 먹는 기간은 구원에 있어서 은혜와 거룩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은혜와 거룩은 믿음과 행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죽음을 피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사람이 어린양을 죽이고 그 피를 발랐다고 해도 그것은 공로, 또는 행위라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고안해내거나 만들어 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으로 생명이 보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삶에서 누룩을 제거하는 무교절은 그렇게 은혜로 살게 된 자들이 죄를 멀리하고, 거룩을 추구해야 함을 말합니다. 은혜로 구원 얻는 것에 이어 구별된 삶이 따라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과 무교절은 함께 갑니다.

 

    두 번째, 유월절 사건은 단지 당시 애굽에 있었던 장자들만을 위한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은 누구든지 오직 하나님의 어린양을 통해서만 죽음에서 벗어나 구원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열 번째 재앙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이스라엘의 장자였습니다. 그런데 장자들이 그것으로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그것을 지켜본 그 가족들이 구원을 얻은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지만 그것은 아직 그들의 구원을 위한 충분한 경험과 지식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신 광야 생활 속에서 자신들의 인간적 한계를 더욱 깨달아야 하며,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도 더 풍성하게 알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출애굽 이후에 자신들의 부패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의 깊이를 깨달아도 결국 반드시 돌이켜 기억하고, 생각했어야 할 것은 어린양의 대속적 죽음만이 자신들에게 닥칠 심판을 피할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너도, 율법을 받아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 수많은 승리를 해도, 가나안 땅에서 풍족한 것을 누려도 진노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 길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광야에서 유월절을 진심으로 지켰다면, 그곳 광야의 삶이 힘들긴 하지만 하나님을 모른 채로 노예로 살다가 죽는 것보다 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는 것이 복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또 그들이 이후 가나안에 들어가 유월절을 진지하게 지켰다면 죄인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들이 가진 어떤 풍요로도 막을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구원자를 소망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광복절을 제대로 기념한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주권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 자유와 주권은 다시 잃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주듯 이스라엘의 유월절은 단순히 명절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은 과거의 어린양을 기억해야 했고, 또 미래에 진정한 어린양이 올 것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오셔서 완전한 어린양으로 죽임을 당하셨고,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모든 자들의 영원한 죽음을 막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다리라고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신 것입니다. 유월절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의 피와 살을 사용한 것처럼 예수님도 그렇게 자신의 살과 피를 주셨고 그것을 기억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기간에 그렇게 죽임 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구약의 유월절은 더 이상 지키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유월절을, 구약의 제사를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출애굽 때의 유월절을 기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믿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유월절을 계속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처럼, 예수님 역시 자신의 죽음이 있기 전에 포도주와 떡을 가지고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고 성찬식을 제정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으로 인해 완성되었고, 폐지되었습니다. 이제는 유월절이 가리킨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기독교 이단종파는 자신들이 구약의 유월절을 정확한 날짜에 유일하게 지킨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수치스럽게 하는 일일 뿐입니다. 자신들이 이단이니 뭔가 더 성경적이고, 진리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행함으로써 더 나은 종교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마침내 실체를 보여주셨기에,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살려주신 진정한 어린양이심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셨기에 더 이상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우리는 주일을 지키면서 주님을 믿고 기억하고, 거룩한 삶을 살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신앙이 제 아무리 깊어지고, 성숙하고, 자라나도 우리가 돌이켜 바라보고 의지해야 할 것은 십자가에 달린 어린양 예수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어떤 대단한 경험을 할지라도, 어떤 비참함에 빠질지라도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지는 않지만 주일 예배 때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기억하고, 바라봐야 합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이 함께 가듯 우리가 예배를 통해 주어지는 은혜를 무시하면 결코 삶에서 구별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