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1:1-12:13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연속된 재앙들을 통해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알리셨습니다. 이 세상의 헛된 우상들은 아무것도 아니고, 사람이 진정 두려워 떨며 엎드려야 할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음을 경험적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시나 말씀만 하시는 무능한 분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나 자신을 비인격적으로 멸시하는 자에게 실없이 웃어주시는 바보 같은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피조물들에게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깨닫도록 결국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결국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열 번째 재앙으로 애굽 땅에 사는 사람과 가축 중 처음 난 것은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선 어떤 재앙보다 열 번째 재앙을 자세히 경고하셨고, 그것을 피할 방법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애굽 사람이든지, 이스라엘 사람이든 관계없이 하나님의 경고가 실제 일어날 일이라고 믿는다면 누구든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살 길을 따라 재앙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어린양을 죽여서 그 피를 문틀에 바르고 아침이 될 때까지 그 집 문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집들 중에 그 규칙에서 예외인 곳이 없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은 자들은 죽음을 보았습니다. 바로의 장자부터 감옥에 있는 자의 장자까지, 그리고 가축의 첫 새끼들이 다 죽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먼저 왜 장자가 죽어야 했냐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4장 22절을 보면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왕 바로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로의 장자와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장자를 죽이신 것은 출애굽의 목적인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13장에서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처음 것, 처음 난 생명을 드린다는 것은 모든 생명과 소유가 하나님께 속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죄인이 살 길은 다른 생명의 희생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열 번째 재앙 장자의 죽음은 출애굽 전 대속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었고, 바로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을 거절했기 때문에 첫 생명들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 장자의 죽음은 열 가지 재앙이 애굽의 우상들을 치는 심판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녀는 인간이 신성시하는 우상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합니다.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탈이 날까봐 온갖 최상의 것들로 보살피고, 마음에 상처 입고 주눅들까봐 혼내지도 않고, 어디선가 내 자식이 다른 애들보다 대접받지 못할까봐 예민하게 지켜봅니다. 교회를 다니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도 대부분 자기 자식 잘 되라고 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하나님이 신인지 자식이 신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도전을 하심으로 구원의 은혜를 갈망하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의 죽음을 요구하셔서 그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죽은 줄 알았다가 살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이 범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이의 죽음을 통해 다루시고, 은혜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하나님은 스스로 자기 아들을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기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자식을 다루심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으시는 일이 많습니다. 열 번째 재앙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었습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자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 순종한 일이 어떻게 가능했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린양의 피’라는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히 신비한 일입니다. 출애굽 시점에서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 상태는 바르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 24장 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7장과 에스겔 20장에도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우상을 숭배했음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3절에서 그들이 심한 노동으로 탄식하고 부르짖은 것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었으며, 4장 31절에서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전했을 때 이스라엘은 머리 숙여 경배를 했지만 그것은 형식적이었습니다. 그리고 6장에서 모세의 등장으로 바로가 더 심한 노동을 시켰을 때 이스라엘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들이 어떻게 마지막 재앙에서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틀에 바르고 죽음을 피할 수 있었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애굽보다 더 많이 알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적극적으로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장자를 죽이지 않고 넘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열 가지 재앙 중 계속 반복된 표현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과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 재앙 속에서 바로는 더욱 하나님을 적대시하게 놔두셨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같은 재앙이지만 바로는 여호와에 대한 불만을 더욱 품는 과정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응하게 만드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도 이스라엘이 열 번째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공로가 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 가지 재앙 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열 번째 재앙에서 죽음을 면할 수 있도록 양의 피로 순종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그런 마음을 주시고, 실행할 의지를 주셨던 것이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는 완악하게 하셨고, 자기 백성들은 유순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유월절에 어린양의 피로 죽음을 면한 것은 은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열 번째 재앙은 재앙의 끝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음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재앙부터 하나씩 겪은 자들은 그 자체가 주는 고통 뿐 아니라 이 재앙들이 과연 끝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도 컷을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 앞에서 타락한 인간에게 닥칠 재앙은 끝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현재 겪는 인생의 고통보다 심판 이후의 고통은 더 클 것입니다. 그것은 끝없이 영원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열 번째 재앙은 소망도 줍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미칠 재앙의 한계를 정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죄로 인한 재앙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어린양의 피로 끝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주의 백성일지라도 이 애굽 같은 세상에서 고생하고, 비참한 일을 당하며, 세상의 환란을 목격하며 두려워하지만 결국 그것들은 언젠가 그칠 것입니다. 우리에게 미치는 재앙과 고통이 결국 그치는 순간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제시하신 유일한 방법 어린양의 보혈을 의지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만이 우리가 겪는 고통에서 유익을 얻고, 영원히 당할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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