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1-11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사람은 율법과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같은 처지입니다. 어떤 죄를 지었든지 똑같습니다. 인간은 다 죄인이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무능한 자들이고, 그런데도 교만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것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런 무능하고 교만한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겸손한 믿음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사랑 받을 자격 없는 자가 오직 믿는 것으로 구원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렇게 믿음은 무력한 죄인을 구원할 방법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드러내어 영광을 돌리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 믿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가지고 차별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자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화평 또는 평화는 너무나 중요한 주제입니다. 세상 사람들 누구나 전쟁이나 갈등이 없는 평화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평화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화가 더욱 절실한 문제입니다. 죄인인 우리에게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진노는 어떤 전쟁과 갈등보다 가장 두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두렵고, 무섭습니까? 귀신이 무섭습니까? 또는 질병과 사고와 가난이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들 너머에 있는 종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가장 두려워해야 합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가장 두렵게 될 것이고, 그 이후의 영원한 지옥은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과 고통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평화롭게 설 수 있게 해줄 방법을 찾는 것이 인생의 가장 시급한, 어쩌면 전부에 가까운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평화롭게 설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기 때문에 가능합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진노와 지옥의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완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공로가 우리에게 거저, 값 없이, 오직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그런 은혜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에 충분하다는 것을 어떻게 우리가 확신하고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율법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완전하게 착할 수 없고, 하나님의 요구에 완벽하게 순종하지 못할지라도 구원이 보장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고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애초에 우리를 구원할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능성 없는 죄인인 줄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 은혜를 바라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도 죄를 짓고, 불완전한 삶을 살지라도, 부족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취소하지 않으신다는 것, 우리가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이유에 대해 바울은 본문에서 세 번이나 강조해서 말합니다. 6절에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10절에서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죄인일 때, 구원할 만한 어떤 근거도 우리에게 있지 않을 때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구원 받은 이후의 삶이 완전하지 않을 지라도 구원의 취소는 없다는 것입니다. 못생기고, 능력도 없고, 건강하지도 않고, 말도 안 듣고, 사랑할 이유가 전혀 없는 자를 사랑할 때에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를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위대하다고 칭송하고, 그 사랑을 신뢰할 수 있듯이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이 나타났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좀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을 때, 가능성을 드러냈을 때에 하나님이 사랑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전혀 가능성 없는 상태였을 때 하나님께 사랑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하시는 그 사랑을 끝까지 신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으로 인해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인생의 어떤 고난도 우리를 넘어지게 못 하고 오히려 우리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 끝까지 책임지심에 대한 우리의 이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속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갖는 소망의 보증은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보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아직 죄인인 자들을 위해 아들을 내어주시는 성부의 사랑입니다. 또한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시는 성자의 사랑입니다. 또한 죄인들이 그 사랑을 신뢰하고, 회개하고, 반응하도록 섬기시는 성령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이 사랑에 붙들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 사랑이 상대의 매력에 끌리는 것이 아닌 죄인을 사랑하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의 자기 맹세와 헌신으로 드러났기에, 그 사랑을 위해 고난 당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기에 우리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행하면서 고난 당하는 중에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할지라도, 오히려 우리의 문제를 여전히 발견하기 때문에 더욱 믿음으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여건 속에서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더욱 강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선을 행하면서 낙심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 속의 고통과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할수록 이런 우리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과의 관계를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큰 복인 줄을 알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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