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19-26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바울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이 모든 인간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존하기보다 어리석고, 모순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고발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외면하는 인간이 갈 길은 멸망뿐입니다. 인간은 온갖 눈에 보이는 재료들과 기술로 자신의 몸과 생활을 꾸미고, 문학과 예술로 감동적인 의미를 부여하지만 속이는 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인해 상실된 것들은 인간이 어떤 노력으로도 회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인간은 하나님 없이도 행복한 것처럼 취해서 살아갑니다. 어린 아이 때는 어른이 되면 엄청난 것이 펼쳐질 줄 알지만 막상 어른이 되면 생의 절망을 느끼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인간은 인생을 허무 속에서 헤매다 마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두려운 허무함을 떨치기 위해 인간들은 자기를 자랑할 만한 것들을 찾습니다. 그래서 일중독, 자기 몸에 대한 중독, 소유에 대한 중독에 빠지거나 그것을 자랑할 관계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인간이 어떤 행복감을 누리고, 아무리 성실하게 살고, 아무리 착하게 살고, 아무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아무리 일상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소소한 감사가 많더라도 하나님이 그 중심에 계시지 않는다면 모든 일은 죄일 뿐입니다. 악을 행하지 않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르지 않아도 하나님을 만족의 대상, 삶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 것은 인간의 자기만족, 자기사랑, 자기자랑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불필요하게 여기면서 사는 인간의 최후는 비참한 지옥 밖에 없습니다.
선악을 판단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핑계할 어떤 요소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과 사는 동안의 모든 행위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너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우리를 정죄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히 입을 벌리지 못하고 지옥으로 내던져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인간에게는 절망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21절에서 말합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19절의 ‘이제는’이라는 말은 절망적인 죄인이 살 수 있는 해결책이 드디어 이 땅에 밝히 드러났음을 말합니다. 드디어 드러난 그 해결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제는’ 이라는 말은 인간이 타락하자 하나님께서 사후처리 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야겠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또 사람들을 율법으로 구원하시려고 했는데, 이스라엘이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이제는, 이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만드시려고 계획하셨습니다. 구약 성경과 선지자들이 그것을 이미 오래 전에 예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을 통해, 피 흘림을 통해, 어린양을 통해, 영원한 대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고난 받는 종을 통해 죄인들을 의롭게 하셔서 자기 백성 삼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계획된, 약속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이제는’이라는 말은 오래 전에 계획된, 약속된 그 분이 절망적인 우리에게 드디어 오셨음을 말합니다. 세상이 애타게 기다려 온 그 사건이 드디어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는’은 또한 우리가 죄에 대한 절망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감격스럽게 영접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바울이 앞에서 의도한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줄을 시인하고 절망할 때에, 입을 다물고 슬퍼할 때에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은 죄인인 내가 어떻게 두려운 정죄를 피하고 용서를 받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 전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인생 속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무거움과 허무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드디어 ‘이제는’ 만난 것입니다. 더러운 죄인을 깨끗하고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사람이 지울 수 없는 죄의 본성과 삶의 부끄러운 흔적과 상처와 비참함과 절망을 하나님은 소망으로 바꾸어 주시고, 씻어주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결코 용서하실 수 없는 분이신데, 죗값을 혹독히 치르게 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는데, 그 불가능해 보이는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드디어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더 이상 자기 죄를 숨기려고 무례하고 뻔뻔하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비겁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달아날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 죄를 가리고, 스스로 자랑할 만한 헛된 것들을 찾아 헤맬 이유가 없습니다. 누구나 차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원의 방법은 모든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 없이 겸손하도록 만듭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만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신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위대한 전환, ‘이제는’의 복음을 말하면서 21절부터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이 아들을 화목제물로 세우심, 하나님의 참으심, 하나님이 예수 믿는 자를 의롭게 하심이라는 말을 통해 죄인이 하나님께 관심을 두도록 만듭니다. 죄가 주는 가장 큰 비참함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우러러보지 않고, 관심도 없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안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비참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관심을 두지 않는 구원은 있을 수 없습니다. 복음은 죄인을 하나님께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이런 일을 하시는가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해 이 죄인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압도되고,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와 사랑에 매료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왜 창조하셨는지, 왜 죄 아래에서 두셨다가 구원하시는지에 대한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밝혀지기에 복음이 복음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의 영광스러운 가치와 존재 목적이 밝혀지기에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무것도 아닌 피조물이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맛보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로 이끌림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기에 복음입니다. 복음은 인생의 헛된 자랑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랑하도록 만듭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자랑하는 것으로 존재의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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