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 이유 (롬 3:27-4:25)

따뜻한 진리 2019. 4. 14. 22:27

로마서 3:27-4:25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바울은 구원이 사람의 공로, 사람의 행위, 사람의 자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있음을 말했습니다. 그렇기에 죄인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죄인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방법이 자신이 만들어 낸 주장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이었음을 말합니다. 그 증거로써 바울은 아브라함을 제시합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이 필요하다고, 할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이 위대한 조상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시작이 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에 관해 잠깐 살펴보면, 그의 이름은 원래 아브람이었습니다. 그는 75세에 고향 하란을 떠났고, 아내 사래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자기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브람의 몸에서 난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고, 그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이 그 약속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습니다. 이 내용이 창세기 156에 나옵니다. 그런데 여전히 사래는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여종 하갈을 통해서 86세 때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아브람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오셔서 아들을 낳게 하실 것이라고,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꿔주시면서 할례를 명령하셨습니다. 10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말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이삭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이삭을 재물로 바치라고 시험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여겨주신 때는 이스마엘을 낳기 전, 86세 전입니다. 그리고 할례를 요구하신 것은 99입니다.

 

    그런데 유대 랍비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에 그 순종을 통해 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그가 순종을 표현하기 위한 이삭을 낳지도 못했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무력한 자임이 드러났을 때에 믿음에 의해서임을 주목하게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나 율법으로, 위대한 순종으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행함 이전에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의로운 자로 여김 받게 한 그 믿음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행위가 공로가 아니라고 이해했어도 믿음이 공로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몸의 행실, 착한 행동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하니 그러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 속의 사모함,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의리를 지키는 태도가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실수를 합니다.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것, 기회를 드리는 것이 공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람 사이에서도 누군가가 나를 응원해주고, 나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신용을 높게 평가해주면 기분이 좋고, 그렇게 여겨주는 사람에게 나도 걸맞은 반응과 보상을 해주고 싶은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가 믿어드리면 우리에게 잘 해주실 것이라고,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구원 얻는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행위가 구원의 근거가 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도 의의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믿음도 공로가 아닙니다. 믿음은 단지 은혜를 받는 손이고, 그릇일 뿐입니다. 통로일 뿐입니다. 믿음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믿음을 가치 있게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능력이고 근거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존한다고 해서 그것이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방법과 능력이 탁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되는 자랑할 만한 의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믿음마저도 하나님이 생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여기시기 전에 이미 오래 전부터 아브라함이 믿도록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갑자기 나타나셔서 덜컥 나를 믿으라고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데라를 통해, 애굽에서 비겁하게 아내를 팔아 자신의 안전을 지키려 했던 사건 중에, 조카 롯과의 관계를 통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아내 사라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분인지 나타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죄인인 자신에게 걸맞지 않는 은혜를, 성실하신 사랑을, 악으로부터 보호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과정 중에 하나님은 아브라함 자신의 생애와 아주 먼 장래에 대한 약속을 하시고, 자신을 믿도록 도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그런 믿음이 처음에는 온전하지 않아서, 이삭을 기다리지 못하다가 이스마엘을 낳기도 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모습도 보였지만 결국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자신을 믿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굴복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과 같은 아들을 바치고자 순종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입니까? 아브라함이 가장 믿음이 좋아서 믿음의 조상입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는 자는 결국 그런 믿음을 갖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 다루십니다. 우리는 그런 믿음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 더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어떻게 일하시는지,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시는지, 죄인을 낳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낳을 수 있는지를 그의 삶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으로서는 믿음에 대해 그렇게 풍성하게 교훈하신 사례가 아브라함이 처음이기에 그가 믿음의 조상입니다. 자신을 믿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에 그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 믿음은 인간적인 어떤 것에도 근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나 아브라함을 따라서 믿음을 갖고 의롭다고 여김을 받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람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하시니, 그런 믿음을 갖도록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시고, 죄를 회개하도록 그 사람의 안과 밖에서 일하신다면 누구든 용서 받지 못할 자가 없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심어주신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두는 동일한 믿음의 자녀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