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율법으로 복음을 배척함 (롬 9:30-10:21)

따뜻한 진리 2019. 6. 16. 17:32

로마서 9:30-10:21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도덕적으로는 이방인들보다 훨씬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위해 한 것이 없는 이방인들, 유대인들에 비하면 훨씬 부도덕한 삶을 살았던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여겨져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율법인데, 왜 율법대로 살려고 한 유대인들은 구원에서 멀어졌고, 율법을 모르고 살던 이방인들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보다 자신들의 공로, 율법을 어느 정도 잘 지켜온 자부심을 더 믿었습니다. 사실상 하나님을 배척하고 끝까지 자기를 신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죄인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키려면 어떤 죄도 마음속에서 부터 짓지 않아야 하고, 착한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해야 합니다. 죄인은 어느 누구도 율법 앞에서 완전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일차적으로 우리가 정직하게 자기 죄에 대해 절망하기를 바랍니다. 율법은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복음은 우리에게 높은 하늘까지 너의 착한 일을 공로로 쌓으라고, 땅 속 깊은 고통을 겪으면서 죄와 싸운 경력을 공로로 쌓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6, 7절이 말하듯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율법을 완전하게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대신 율법을 다 지키시고, 십자가에서 죗값을 치르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선하다고, 잘했다고 판단받기 위해 노력할 수가 없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든지 이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고 고백하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우리의 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 사람이 스스로 착한 일 해서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손에 의지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 복음을 유대인들이 믿지 않은 것은 그들이 이 복음을 들어 본 적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부터, 이미 자신들의 오랜 역사 속에서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 하나님이 보내시는 구원자를 믿고 의지해야만 한다는 것을 줄곧 들었습니다. 14절부터 21절의 내용이 그것을 말합니다.(14-17절을 읽어봅시다.) 특히 14절에서 16절은 흔히 전도를 열심히 하자는 동기부여를 할 때 사용되는데, 물론 그런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이 의도한 1차적인 의미는 이미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을 이스라엘에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혈통이나 행함 같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서 구원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것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실 자를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이 복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었지만 대부분 거절했습니다. 대신 이방인들이 복음에 반응했습니다.

 

    그래서 19절 이후에 바울은 신명기 32장에 나오는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라는 말씀을, 이사야 65에 나오는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복음을 먼저 들은 이스라엘은 복음을 거절하는데 오히려 원래 백성이 아니고 율법에도 무지한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고 구원받는 일이 일어날 것을 구약이 이미 예고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21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그런 무지하고, 하나님의 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해 계속 손을 내미셨다는 이사야 65절을 인용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교훈 중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사람의 책임입니다. 지난 시간 9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전 민족이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들만이 구원 얻는 것임을 말했습니다. 그렇게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주권을 말한 것에 이어서 본문 10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책임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 중 일부만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을지라도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에게 분명한 책임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인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할 뿐 아니라 교만하여 율법의 의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율법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앞의 7장에서 우리는 율법이 사람의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임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죄를 드러낸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사람의 죄를 고발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본래 선한 것입니다. 사람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과 관계할 수 있도록 율법이 길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또 죄인들이지만 서로를 인간답게 대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위할 수 있도록 율법이 가르쳐줍니다. 십계명이 그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게 합니다. 율법이 그렇게 좋은 것이지만 그 기준대로 살 수 없는, 기준에 도달할 수 없는 타락한 인간의 비참함을 깨닫게 함으로써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이 자기의 가능성에 대해 내려놓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게,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런 율법의 의도대로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023에서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 약해지고 겸손해져야 했는데, 유대인들은 오히려 잘난 줄 알고 교만해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선한 율법을 통해 구원에 가까워지기보다 멀어졌습니다. 그 어떤 민족보다 유대인들에게 먼저 구원자가 예고되었고, 실제로 예수님은 이스라엘에 오셨고, 예수님은 다른 이방인들보다 우선적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자신들이 쌓아 온 것을 하나님의 은혜보다, 그 아들보다 탁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졌던 공로주의 문제는 모든 인간들이 가진 공통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자기를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대단한 나, 가치 있는 나를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타락한 자의 본성일 뿐입니다. 세상의 시작인 창조이든, 죄인을 건져내는 구원이든, 마지막 심판이든 역사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점들은 사람의 공로를 자랑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게 합니다. 창조, 구원, 심판은 사람의 탁월함과 자랑과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탁월하심과 은혜를 만족스러워 하고, 감사하고, 자랑하도록 만듭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여전히 자기 자랑과 자기 연민에 빠져서 신앙생활 하게 됩니다. 또 그런 자들의 교회는 어떤 진리를 말하고, 영적으로 깊은 것을 드러낼지라도 결국 자신을 포장하는 자들이 모이는 집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하고, 충분한 구원자로 믿는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선한 삶을 살고, 아무리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아무리 자신의 탁월함이 드러난다 할지라도 그는 겸손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담겨진 율법의 도덕적 명령들에 순종해도, 율법을 잘 지키는 삶을 살아서 그것으로 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더 경건한 사람이 되고, 더 자랑할 만해도 그런 자신의 어떠함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나의 어떠함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비교할 수 없는 나의 만족과 공로가 되심을 항상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선행과 성품의 변화가 내가 얻은 구원,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신분에 보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얻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성도는 감사하며 겸손히 순종할 뿐입니다. 성도들은 인생의 목적이 자기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어떤 인생보다 자랑할 자격이 있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누구이신지 인정받으시려 하지 않으시고 겸손히 우리를 위해 죽으신 분이시기에 성도는 인정받는 일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예수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처럼 자기를 뿌듯하게 여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