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함께 종이 되자고 손짓함 (롬 15:14-33)

따뜻한 진리 2019. 7. 28. 20:45

로마서 15:14-33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유대인 신자들에게는 혈통 상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이 구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말했고, 이방인들에게는 무율법주의적 방종을 멀리하고 성숙한 섬김의 자세를 요구했을 때 그들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음을 바울은 예상했을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문제를 지적받을 때 그것이 옳은 이야기인 줄 알아도 기분 나쁜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4-15절에서 여러분 마음에 선함이 가득하고, 온갖 지식이 넘쳐서, 서로 권면할 능력이 있음을 나도 잘 압니다. 그런데 내가 앞에서 몇 가지를 지나칠 정도로 강조해서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로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기억을 새롭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을 칭찬하면서 세우고, 자신의 권면이 지나치게 느껴질 수 있음을 말하면서 조심스런 태도를 보인 것은 자신을 좋게 여겨주도록 아첨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한 것입니다. 로마 성도들이 복음의 훈계를 진실하게 잘 받아들이도록 자신의 진실한 의도를 설명한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문제를 이미 잘 알아도 지속적으로 권면을 받아야 조금이나마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역시 진리를 깨달았어도, 문제를 알아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늘 있음을 알고 경고와 권면을 필요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권면, 잔소리를 해주는 일이 환영받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잘 안하려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이 주신 사명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임을 말합니다. 그는 16절에서 로마 교회의 성도들을 비롯한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바른 성도가 되길 바란다는 뜻으로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으로 로마 성도들을 제물로 표현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지적과 권면들이 내가 당신들 잘 되라고 거친 말을 하는 것이다라는 자기 칭찬이 되지 않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과 칭찬과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기 위한 종의 역할, 고난 받는 일, 오해 받을 위험한 일을 하는 것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 외에 다른 말들로 자신을 꾸며서 사람들이 바울 자신에 대해 환심을 갖도록 하지 않았고(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의 환심을 얻으려고 하는 종교지도자들/목사들이 넘쳐납니다), 성도들이 진정 복음을 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정직하고 진실하게 가르쳤습니다. 또한 그는 전도할 지역을 계획할 때에도 20절에서 말하듯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즉 교회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지역에 가려 했습니다. 바울이 그런 말을 한 것은 교회가 이미 있는 곳에는 선교를 가지 말아야 한다거나, 사역자가 있는 교회에는 다른 사역자가 필요 없다거나, 복음이 한 번 전해진 곳에 더 이상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미 복음을 들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고, 또한 복음에 충실한 일꾼들을 세워서 교회들을 섬기게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말하면서 다양한 사역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것을 말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의미하는 것은 자신이 그런 복음의 불모지에 교회 개척하는 것을 소명으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첫 시작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남들보다 큰 고통을 겪는 일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남들이 겪지 않는 고난을 겪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주를 위한 고난에 계속 참여하고자 스페인으로 가려 했습니다. 로마 성도들에게 연보, 즉 물질적 후원과 협력을 부탁한 이유도 새로운 곳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그것이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독려하고자 26절에서 바울은 마게도냐아가야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기쁘게 자발적으로 연보한 것을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에도 드러났지만 당시 예루살렘이 있는 유대지방은 가난한 곳이었고, 특별히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유대지방은 극심한 흉년이 들어 어려움이 가중된 데다가 복음 때문에 박해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도 복음의 빚진 심정으로 다른 성도들을 돕는 것을 기쁘게 여기면서 자신의 고난, 스페인 사역에 동참해달라는 뜻을 표현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가 스페인 전도를 위한 병참기지, 든든한 지원교회가 되어주길 바랐습니다.

 

    또 30절에서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기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첫 번째는 예루살렘에 방문할 때 유대인 불신자들의 핍박에서 안전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도바울을 종교적 배신자로 여기고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예루살렘 성도들이 이방인 성도들의 후원, 연보를 감사히 받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염려한 이유는 이방인에게서 온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게 여기는 유대인의 관습과 바울이 이전에 예수 믿는 자들을 죽였던 자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의심과 그가 가져온 연보에 대해서도 순수하게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 때문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앞의 기도가 응답되어서 예루살렘 방문이 순조롭게 되어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을 가지고 로마 성도들을 방문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될 것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변화된 자는 더 이상 자신의 권리 주장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기쁨으로, 영광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자기에게로 회복시키시는 그 복음 사역이 성취되도록 자신을 종으로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종으로 오셔서 종으로 죽으셨기에, 그 은혜를 입은 자는 마땅히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그것을 설명하고 가르치기 전에 몸소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가 로마서에서 복음을 설명하고, 복음이 주는 자유와 그 자유를 다른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포기하는 섬김에 대해 말한 후 본문에서 자신의 사역을 설명한 이유는 이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종의 삶을 살고 있으니 함께 하자고 성도들을 부른 것입니다.

 

    현대 교회들이 가진 종 됨 대한 흔한 오류는 주님의 종이 되는 것을 명예와 권위에 치우쳐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흔히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일컬으면서 치켜세우는 것에서 드러나곤 합니다. 무슨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비서관 같은 뉘앙스로 종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물론 주님의 종이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사람들에게 받는 영광이 아니라 주님께서 알아주시고, 주님을 위해 쓰임 받는 것에 대한 기쁨이지 사람들 가운데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종은 분명 자기를 부인하고 주인이신 주님의 명령, 주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예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신대로 종은 주인보다 편하고 인정받기를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선지자와 같은 주의 종들은 조롱과 죽음의 위협 속에 있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한 것은 내가 주의 종이니까 내말 잘 들으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주님이 바라시는 일을 위해 모든 것들을 하고자 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자신이 고난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가 아니라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고난을 겪는 것임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종은 노예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어느 누구보다 위험하고, 미움 받고, 오해 받기 쉬운 일을 자처했습니다. 그는 성도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바로 잡는 일, 후원을 하는 자나 받는 자나 부담이 되는 연보(헌금)의 문제들을 기꺼이 담당했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전하도록 섬겼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 양쪽으로부터 비난과 공격, 살해 위협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종이 되는 것보다 신앙을 이용해서 잘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분명 섬기는 자, 종이 되라고 말씀하셨고, 바울도 그것을 복음 안에서 확인하면서 몸소 본을 보였고 성도들을 참여 시키고 있습니다. 죄인을 자녀 삼아주시는 은혜의 복음을 받은 자답게 우리도 자신의 주장과 권리를 내려놓고 주님의 종, 복음의 종으로 살아갑시다. 바울처럼, 또 바울이 가리킨 참 주인이신 예수님처럼 자기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순종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