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6:1-27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이제 로마서의 마지막장에서 마무리를 하기 위해 우리가 그동안 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정리해봅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모른 척 외면하고, 하나님을 떠나 독립하려합니다. 죄인들이 하나님 없이 인생의 의미를 찾고, 스스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보려 하지만 결코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죄를 더하기만 할 뿐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그런 비참함과 절망이 계속 커지지 않도록 죄를 통제하고, 죄를 깨닫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런 율법의 의도대로 선한 삶을 살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했는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외형적으로 율법을 좀 지키는 것을 가지고 공로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의 어리석음과 실패가 충분히 드러난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어떤 조건이나 행위 즉, 공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얻습니다. 구원의 여부는 혈통과 인종, 남보다 좀 덜 심한 죄를 짓는 것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 구원 얻는 것에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그리고 구원하실 자들이 누군인가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하신 것이기에,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자기 아들을 통해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것이기에, 우리의 어떠함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기에 확실하고 안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구원해 주시는 복음이라 해서 우리를 방종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은혜를 이용해서 더 많은 잘못을 저지르려 하거나, 불순종하는 것이야 말로 사탄이 불어넣는 죄인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알기 전의 패역한 삶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즉시 심판하지 않으신 것은 구원을 위해 참으신 것인데 도리어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기거나 자신의 죄가 중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기면서 살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용하려는 악한 마음을 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의 종, 죄의 종은 하나님의 은혜를 비웃고,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용해서 죄를 즐기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감히 은혜를 배반할 수 없는 빚진 심정을 가지고 순종하기를 애쓸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모범적으로 살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구원 이후에도 율법과 무관해지지 않습니다. 율법은 구원받은 자를 계속 돕습니다. 그 도움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나의 구원에 대한 안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우리를 도덕적으로 살게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전보다 더욱 민감하게 죄를 보고 절망하게 하면서, 이전 보다 더욱 예수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가도록 돕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이실 수밖에 없음을, 하나님의 일방적 선택 외에는 무능한 죄인을 구속할 방법이 없음을 더욱 인정하게 되고 감사하게 됩니다. 성도는 자기 죄와 세상의 죄 속에서 순종하려 할 때 겪는 고난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고난을 함께 당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고난도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끊을 수 없고, 오히려 믿음을 견고하게 만듭니다.
사람 안에서 그런 이해와 믿음과 순종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성령께서 죄에 대해 종노릇하던 우리 옛사람을 죽이고 하나님에 대해 종이 되게 합니다. 모세의 율법이 사람의 죄를 정죄했다면 생명의 성령의 법은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창조의 영인 성령께서 창조 때 의도하신 사람답게 우리를 이끄셔서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움직여 가십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랑은 소극적으로는 우리가 죄와 싸우며 사랑의 빛 외에 죄의 빚을 지지 않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희생하면서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사람들을 바르게 사랑하는 삶을 살 때, 모여서 드리는 공예배 역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됩니다. 복음은 우리가 자기를 위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게 합니다. 그분의 영광을 위해 종이 되게 합니다. 복음은 살아있는 제물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 드려지도록 섬기게 합니다.
바울은 그런 이해 속에서 주의 사역을 감당했고, 로마 성도들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함께 사역에 동참하기를 바란 것입니다. 바울이 16장에서 언급한 명단들은 바울이 생각하기에 앞에서 정리한 복음을 이해하고 믿고 순종하는 동역하는 자들을 소개한 것입니다. 그 명단들은 기독교 공동체의 따뜻한 관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 서신이 바울이 작성한 것이 맞다는 것과 그 내용들이 신뢰할 만한 것임을 보증해 줄 수 있는 로마교회 성도들도 알만한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스페인 사역에 로마교회 성도들이 동참하기를 바랐지만 도움을 주는 그들이 먼저 자신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일치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좋은 일 하는 것이니까 진리 문제는 대충 덮어두는 것을 바울은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예수를 믿으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생각하면서 후원자를 모집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의 헌신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것입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같은 선동적인 말로 그들의 헌신이 얼마나 고귀한지를 생각하게 하면서 헌신에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선단체들이 ‘당신이 후원하는 월 만원으로 이 나라의 한 가정이 한 달치 식량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가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헌신을 가치 있고,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도록 아첨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이용하려는 그런 자들을 바울은 18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자들’이라고 말하면서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로마서 내용을 통해 로마서 성도들을 흔들어 깨우고, 지적했습니다. 15장에서 바울 스스로가 ‘내가 당신들에게 좀 심하게 말했을 수도 있다’고 말해야 했을 만큼, 그는 후원자들의 마음을 인간적으로 사로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아는 그 복음을 아는 성도들, 자기를 변화시킨 예수의 복음으로 진정 변화와 성숙을 이루는 교회가 아니라면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본이 되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에 은혜 주시길 바란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실천적인 공통점이 있고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무엇을 어떻게 믿느냐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복음에 대해 매우 다른 이해를 가진 교회들이 연합을 하고, 교인들이 복음과 거의 무관한 내용을 가르치는 교회들로 쉽게 옮기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런 교회의 사역이 아무리 대단하고, 선교를 많이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르게 드러내는 것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되 하나님께 자동적으로 순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즉 성도가 자신에게 있는 고결하고 성숙한 덕성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십자가 복음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은 우리가 결코 자기 본성으로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경험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빚진 것을 기억하고, 순종 때문에 고난 당해도 책임져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종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내가 주님을 위해 대단한 것을 하는구나’를 생각하게 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사람을 그렇게 다루는 이유는 우리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을 띄워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종이 되라고 말했습니다. 종으로서 함께 섬기자고 말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하고, 진정 복음을 믿는다면 그 영광을 위해 기쁘게 자신을 부인하고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에 이렇게 마칩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 나타나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지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영리 목적으로 설교를 스크랩, 캡처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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