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전도서 (7) (전 8:1-17)

따뜻한 진리 2019. 9. 22. 10:00

전도서 8:1-17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전도자는 본문 8장을 말하기에 앞서 610절에서 세상에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강한 것들, 사람이 다투어 이길 수 없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거나 그것과 싸우려는 것은 어리석고 헛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강한 것 중에서 전도자는 첫 번째로 죽음을 말했습니다. 누구도 죽음을 무시하거나 피할 수 없다는 이 사실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시간에 나눈 대로 출생보다 죽음을 통해 지혜를 얻어 사람들과 바르고 의미 있는 관계를 가질 수 있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어서 본문 8장에서 전도자는 사람이 다툴 수 없는 강한 것 들 중 두 번째로 왕 같은 권세자들에 대해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왕과 나라가 필요합니다. 6절에서 9절이 말하는 대로 각 개인은 장래 일을 다 대비할 수 없고, 전쟁과 죽음과 범죄의 위협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백성들은 나라와 왕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각자가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을 수 있고, 여러 가지 사회보장들을 누릴 수 있는 것도 나라와 통치권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라에 대한 의무를 다 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고 교만한 것입니다. 인간의 나라와 정부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죄인들의 죄를 통제하면서 안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임시적으로 허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부나 통치자가 노골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라면, 백성에게 감당할 만한 의무를 부과하고 불가피한 사회적 희생이 있더라도 복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도자가 왕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어리석고 무능하고 부패한 왕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기본적인 통치를 하는 보통의 왕을 가정하고 말한 것입니다.

 

    왕이 자비롭고 인격적일 때 신하 중 나름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사회의 도덕 수준을 높이고, 범죄를 막기 위해 공포심을 조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산국가들처럼 범죄자들을 과감히 사형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죄를 엄격하게 다루는 왕이나 정부를 경험해 봤습니다. 엄격하면 좋을 줄 알았지만 자유와 인권을 요구하면서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또 전도자가 앞에서 말한대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부조리에 대한 해결책이 자기에게 있다고 확신하면서 통치자를 거스르고 새로운 세상을 시도하지만 이전에 했던 것을 또 하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전의 것을 그리워할, 그런 어리석은 시도를 반복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 헛된 반복을 하려고 왕을 거역하고, 반란을 꿈꾸는 일이 항상 있습니다. 전도자는 3절에서 왕 앞에서 급하게 물러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왕에 대한 불만으로 성급하게 자리를 뜨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악한 통치자에게 무조건 순종해서는 안 되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에게는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인식과 사고 범위로는 부모의 판단과 결정이 이해가지 않는 것이 있어도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듯, 큰 책임과 고려해야할 많은 것들 속에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높은 자들에 대해 우리가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물며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세상 경영방식과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다루시는 방법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어리석은 신하나 백성이 왕의 결정과 통치에 불만을 품고 왕 앞에서 인내하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 인간들은 하나님의 통치 방식에도 성급하게 불만을 품습니다. 11절 이후에서 말하는 대로 백 번이나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신뢰할 수 없다고 의심합니다. 악인들이 즉시 심판 받지 않고, 악한 자들에 의해 선한 자들이 피해를 입거나 선한 자들의 성실함이 악인들의 먹잇감이 되는 일이 있다 해서 차라리 악인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대해 불만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자기가 손가락질하는 극악한 죄인과 자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죄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공정하고 지혜롭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보다 나쁜 사람을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공의를 즉시 실행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불만을 품지만 그것은 어리석고 교만한 생각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하나님은 무능하신 것 같지만 하나님은 최고의 지혜를 사용하셔서 모든 죄인들을 다루시고 계십니다. 심판 받을 자들은 심판 받을 근거를 위해, 구원받을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인생 동안 얼마나 많이 베풀어졌는지 깨닫고 그리스도를 찬양하도록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악인들 때문에 고통 받는 의인들이 있고, 의인들 덕분에 혜택을 보는 악인들이 있는 것입니다. 누가 봐도 사악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살려 두시기에 나 같은 자도 살려두셔서 구원 얻을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세상 왕에게 충성해도 어느 정도는 복이 보장됩니다. 하물며 세상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세상 경영 방식, 심판과 구원을 위해 죄인을 다루시는 방법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에게 궁극적인, 영원한 복을 보장합니다. 완전한 심판의 때 까지 악인들에 의해서 우리의 선이 가려지고, 오히려 우리가 고통을 받는 것이 부조리한 현실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잠시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단련하시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선한 삶이 악에 의해 무의미해 질 수 있고, 남는 것이 없고, 공로로 쌓이지 않고, 악인에 의해 사라져도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시기에 그분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그런 앎과 믿음이 없으면 즉각적인 징계나 공로에 따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익을 위한 삶을 사는 존재로 길들여질 뿐입니다.

 

    어리석고 교만한 신하가 왕에게 불만을 품듯,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무지로 불만을 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순종하신 것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14절에서 전도자가 말한대로 악인들의 악행 때문에 억울하게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공로와 희생 덕에 거저 이익을 보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은 정말 선한 삶을 무의미하게 하는, 거룩하게 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사실이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 부당해 보이는 일을 위해 허무한 인생 속에 들어오셔서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악인들의 행위 때문에 억울하게 벌을 받는 의인이셨고, 의를 위해 죽으셨는데 나 같은 악인이 그 혜택을 입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악인들에 대하여 분노하는 불공평하고 부당함이 우리를 살리는 원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사람이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완전한 지혜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지혜는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호흡 같은 인생에서 필요한 지혜입니다. 그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인생과 허무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면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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