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전도서 (4) (전 4:1-16)

따뜻한 진리 2019. 9. 1. 09:09

전도서 4:1-16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앞에서 전도자는 말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스스로 자기 생의 의미를 만들 수도, 찾을 수도 없습니다. 죽음이 인생을 그렇게 만들고, 뒤에 오는 어리석은 자들이 그렇게 만들고, 통제할 수 없는 시기와 사건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 평생 성실하게 살았는데, 그 재산을 가지고 자식들은 방탕하게 사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죽어가는 한 인간을 열심히 치료해 줬더니 그 인간이 살아나서 전쟁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일들이 세상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피조물로서 이 땅에 잠시 존재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누리고, 같은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생명들에게 책임을 다하면서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사라질 순간들이지만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 삶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이 땅에서의 목적입니다. 구원도 그것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생의 의미를 찾으려 할 때 고통을 일으킵니다. 전도자는 그것을 학대라고 말합니다. 권력과 지위를 가진 악한 자에 의해 학대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선한 동기로 열심을 내려는 자를 통해서도 학대가 일어납니다. 상대방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거나 재능과 열정이 없는데 억지로 요구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자기는 남다른 열정과 사명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런 것이 없는 사람을 어느 순간 학대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학대는 그것을 저지르는 자가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겠다고 의도해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고통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남다른 특출한 재능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게 됩니다. 어떤 운동선수나 예술가가 죽어라 고생해서 최고가 되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천재에게 명성을 뺏기면 그는 좌절 속에서 학대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이 말하는 대로 그 천재적인 능력자가 의도하지 않아도, 선한동기로 좋은 결과를 내어도 시기를 받으니 참으로 인간의 열심과 재능도 헛될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에게 있는 재능을 썩히고, 무력하게 살아야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잘 하면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깊은 것 같지만 어리석은 것이라고 5절에서 말합니다. 팔짱만 끼고 있는 그런 자는 자기 몸만 축내는 것, 자기를 학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게으름이 지혜인 것처럼 찬양하는 것들은 자기 의무를 떠넘기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성취하는 것, 얻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앞지르고, 경쟁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생존하고자 하는 불안이 사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세계를 앞서가고, 뛰어 넘으려는 어리석음입니다. 죽음의 불안을 이겨보려고 하는 것이고, 죽음 이후에 뭔가를 남기려고 하는 헛된 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 우리를 만드신 이유는 우리 주변을 둘러싼 것들 속에서 우리의 의무를 발견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주변을 섬기다가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소명을 발견하지 못하면 무슨 일을 해도 섬김의 차원에서 일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게 됩니다. 열심이 있어도 고된 일로 다른 사람과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고, 반대로 사람들을 방치하고 내버려둬도 학대하는 것이고, 이도저도 싫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많은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것이기에 학대하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결국 외롭게 혼자 남는 성공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기는 복을 말합니다. 성경은 짧은 인생, 잊히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나 자신의 주인이 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종이 될 수 있냐고 묻습니다. 결국 사라질 학위나 명성이나 재물이나 인기를 잡으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섬길 때 우리는 두 가지 극단인 안일한 게으름병적인 분주함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학대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악착같이 살고, 다른 사람을 밟고 높은 데 올라서면 미래에 더 행복해 질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정당한 경쟁을 하고. 정당한 대가를 위해 수고해야합니다.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 중에서나 그 결과로 얻은 것으로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사람의 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도자가 2, 3절에서 말한 대로 누군가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것이고, 아예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얻는 과정에서도 서로를 학대하고, 이루고 얻어도 서로를 괴롭히다가 허망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를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만족이 되심을 알 때 우리는 사람에게 지나친 것을 기대하거나 요구함으로써 서로를 학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보다 연약한 자를 무리하게 나의 기준으로 밀어부처 학대하지 않을 수 있고, 나보다 능력 있는 사람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면서 자신을 학대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이 세상, 짧은 인생 속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 하지만 그러나 인간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오래 가는 것을 줄 수 없고,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영원한 것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선물로 받아 순간순간 서로를 위로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인생을 살다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우리가 신적인 영원함과 절대성이 없고 순간적 가벼움과 짧은 호흡이 겨우겨우 연장되는 연약한 존재일지라도 그런 생명 주신 것을 가지고 사람들과 나누고,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것을 잘 감당하기 위해 사람들의 반응에 연연하지 말고 변덕스러움에 당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본문 마지막 13절부터 말합니다. 주변의 말을 듣지 않는 나이 든 왕과 왕이 될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다윗과 사울의 관계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지만 이에 맞는 성경의 어떤 인물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인물은 어느 시대에나 있습니다. 전도자가 묘사한대로 권력을 가졌지만 신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 지도자는 항상 있었고, 그런 지도자에 대항하는 백성을 대변하는 젊은이는 붙잡혀 감옥에 갇히곤 합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그 젊은이가 수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새로운 왕이 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그 새로운 왕 역시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왕이 변하든, 백성들이 변하든 학대를 극복한 자들이 또 학대를 일으키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처음에 예수님을 좋아했고,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들이 기대했던 사람이 아님이 드러나자 학대했습니다. 제자 중에 하나는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나머지 제자들도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예수님께 잘못된 것, 어리석은 것을 기대했기에 실망하고, 경쟁대상으로 여기고, 증오하고, 학대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죄인들에 대해 놀라시거나 좌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좋아할 때나 예수님을 죽이려 할 때나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의존하지 않으시고 하나님만 신뢰하시고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 속에서 불안에 사로잡혀 헛된 것을 얻고자 자신과 타인을 학대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감사하게 누리고 나누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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