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9-20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잘 되는 것, 좋아지는 것, 육신적 복을 얻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성경은 그런 세상 사람들과 세상 종교들도 추구하는 복에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부담스러워 하는, 기대하지 않는 고난이 유익하고, 거기에 감추어진 비밀이 있다고 말합니다. 요한은 그것을 알았고 성도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려 합니다.
요한은 9절에서 자신이 성도들과 같은 형제로서 예수의 환난과 예수의 나라와 예수의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우리가 알 듯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나라이시며, 완전한 대제사장이십니다. 또 앞의 6절을 보면 예수님은 교회의 성도인 우리를 하나님 나라와 제사장들로 삼으십니다. 그래서 9절에서 요한은 한 형제로서 자신도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고 있음을 말했습니다. 이 환난과 나라와 참음은 각각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일한 한 가지 대상의 부분들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주어지는, 예수 그리스도 자체이신 하나님 나라는 환난과 참음이 없으면 참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 일에 동참하고 있었고, 예수 믿는 성도가 동일하게 그런 고난을 겪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다스릴 권리를 자신의 고난으로, 십자가로 얻으신 것처럼 그 나라가 될 자들, 그 나라 백성인 자들도 고난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대로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고난을 복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것처럼 대부분의 유대교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종의 희생을 통해 온다는 것을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려면 세상의 악을 정복하고 승리해야 하는데, 고난은 그런 승리와 성취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 달리 하나님의 나라는 고난으로 얻는 것임을 십자가가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에 순종하셨습니다.
이어서 요한은 에스겔 2:2절에서 에스겔이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라고 말한 것처럼 10절에서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환상들이 구약 선지서들이 말한 내용에서 확인되는 것이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주는 내용임을 말합니다. 요한은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라는 주님의 명령을 듣는데, 일곱이라는 수가 성경에서 완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일곱 교회라는 것은 당시 모든 교회들과 현재의 모든 교회 전체를 의미합니다.
12절을 보면 요한은 일곱 금촛대 사이에 예수님께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금촛대는 성전에 있던 등잔대입니다. 등잔대는 출애굽기의 성막 장면에서 등장하는 대로 세 개의 U자 모양 가지가 붙어 있는 나무모양에 일곱 개의 등잔이 붙어 있는 성전 기물로써, 타오르는 불빛은 성령의 능력을, 등잔대 몸체는 하나님의 진리로 세상을 비추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왕성했던 시대의 왕인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는 등잔대가 열 개가 세워졌습니다. 또 스가랴 4장 2절에는 등잔대가 한 개만 등장하는데, 요한은 환상 중에 등잔대 일곱 개를 봅니다. 등잔대가 일곱이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대로 일곱이라는 상징을 통해 당시의 일곱 교회와 전체 교회, 그리고 모든 시대의 교회들을 의미합니다. 즉 이 장면은 본문 20절에서 확인해주듯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교회들 가운데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13절부터 18절은 교회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합니다. 긴 옷과 금띠는 그분이 고귀한 신분이심을 나타내며, 머리와 털이 희다는 것은 다니엘 7장 9절에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는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에서 인유한 것인데, 오랜 경험이 쌓인 노년의 지혜에 대한 존경을 의미합니다. 불꽃 같은 눈은 다니엘 10장 6절의 “그의 눈은 횃불 같고”에서 나온 것으로 인간의 정곡을 꿰뚫어 보시는 주님의 통찰력과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주석 같은 발은 다니엘 10장 6절의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에서 나온 것으로 절대적 힘과 안정성과 그것을 기초로 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은 에스겔 1장 24절에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의 두려운 음성에 담긴 권능을 상징합니다. 그분의 오른 손에는 일곱 별이 있는데, 별은 기본적으로 구약에서 천사와 연관됩니다. 그래서 20절에서도 별이 사자 즉, 천사를 의미함을 확인시켜줍니다. 또한 별은 고대로부터 운명을 예고하는 현상들, 점성술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손에 별이 들려 있다는 것은 모든 천사와 운명에 대한 통제권을 그분이 가지고 계신 것을 의미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검은 이사야 11장 4절의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와 49장 2절의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에서 나온 것으로 교회와 세상의 불순종을 심판하실 것을 말합니다.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은 얼굴은 사사기 5장 31절의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의 인유로써 승리로 인한 영광을 의미합니다.
요한이 본대로 촛대 사이에 계신 세상의 주관자이신 크고 두려우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인 교회와 함께 하시고, 교회의 형편과 상태를 다 알고 계시고, 주관하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약속된 하나님 나라가 자기 민족인 이스라엘의 번영과 웅장하고 성스러운 성전을 통해 이 땅에 임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성전은 사람들의 손으로 멋지게 세워졌고,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졌지만 역설적이게도 부패한 장소가 되었고, 결국 성전의 파괴를 통해 성전의 참 의미가 드러났습니다. 건물 성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 아니라, 참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것으로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이스라엘 성전은 계속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성령의 오심으로 인해 이제는 건물 성전이 아닌 성도들이 살아있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했는데, 이제 신약시대에는 성전이 아닌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은 교회를 예수님의 몸으로 이해합니다.
요한은 그런 이해 속에서 성도가 예수의 환난과 예수의 나라와 예수의 참음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해하게 한 것입니다. 밧모섬에 갇혀 있던 사도요한 뿐 아니라 편지를 받은 일곱 교회들도 당시 많은 유혹과 환난 속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런 고난이 억울하고 비참한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것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다스림을 드러내는 방법은 권력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을 신실하게 참고, 인내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다스리는 방법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을 신실하게 감수함으로써 승리하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성도들의 인내와 죽음이 싸움에서 이기는 과정입니다. 성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연합은 그런 고난을 통해 이뤄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교회의 고난을 자신의 고난으로 여겨주시면서 동행하십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불 속에 던져졌을 때 인자 같은 이가 그 가운데 서 계셨던 것처럼, 일곱 촛대 가운데 서 계신 주님으로 요한에게 나타나셨던 것처럼, 주님은 항상 교회들 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사람의 눈에, 세상의 눈에 교회가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자기처럼 여기십니다. 영리 목적으로 설교를 스크랩, 캡처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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