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한계시록 ⑧ (계 15:5-16:21)

따뜻한 진리 2019. 12. 15. 21:46

요한계시록 15:5-16:21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본문에 등장하는 일곱 대접 심판은 앞의 일곱 나팔 심판처럼 애굽의 재앙을 모델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런데 나팔 심판이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에 비해 대접 심판은 직설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일곱 대접 각 심판의 방식들은 사탄적인 세상 나라의 정체를 점진적으로 드러냅니다. 심판에서 등장하는 대접은 성도들의 기도가 담긴 대접(5:8, 8:3-5/6:10)과 연계되어 이 심판이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임을 암시합니다. 8절을 보면 이 심판은 매우 두려운 것이어서 하나님께서 진노를 표현하실 때 천상의 존재들도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 가운데 들어가지 못합니다.

 

    요한은 첫째 천사가 첫째 대접을 땅에 쏟자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 즉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심한 종기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닌 짐승 같은 악한 존재들과 우상을 따르는 자들이 극한 통증 속에서 시달리며 울부짖는 짐승으로 전락하는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둘째 천사가 둘째 대접을 바다에 쏟자 바다가 피 같이 되고 바다 생물들이 죽습니다. 흔히 이것이 적조 현상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데, 물론 종말의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일어나는 것도 심판의 요소이기는 하지만 본문이 그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바다는 악한 대상입니다. 또 모세가 나일 강물을 피가 되게 해서 물고기들을 죽게 한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애굽이 나일강에 경제적 풍요를 의존했던 것처럼 세상 나라들이 해상교역을 통해 번창했고 그런 도시들의 상징으로써 바벨론이 망하는 것을 둘째 대접 심판이 의미합니다. 그래서 첫째 대접 심판이 몸을 직접 치는 것이라면, 둘째 대접은 사람들이 우상으로 여기는 물질과 경제적 풍요를 몰락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게 되는 이유는 17-18장에 가면 드러남)

 

    셋째 대접은 강과 물의 근원들이 피가 되게 합니다. 이것은 둘째 대접과 같은 현상을 다루지만 그들이 심판을 당하는 또 다른 이유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즉 둘째 대접 심판은 악한 세상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의 소유와 풍요를 신으로 섬긴 것이 심판의 이유라는 것을 깨닫게 하지만, 셋째 대접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한 것이 심판의 이유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6절에서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라고 말한대로 세상이 성도들을 핍박한 대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넷째 대접은 해에 의해 불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흔히 지구 온난화, 고온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물론 그런 자연 재해가 일부 포함될 수 있겠지만, 영적인 처벌이 가장 중요한 심판의 결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8절에서 불로 사람을 태운다고 하니 악인들을 진짜 불태우는 일이 심판의 과정에서 있을 것이라고 오해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 역시 상징으로써 악한 나라들이 처벌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인 줄 모르고 하나님을 계속 부인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불이 의미합니다. 악인들은 물리적으로 뜨거운 불꽃의 열기보다 하나님의 진노가 더욱 고통스러운 것임을 마지막 때에 알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 대접은 사탄의 권위를 상징하는 짐승의 왕좌에 쏟아지고 그로 인해 그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0장에서 애굽에 내려졌던 흑암재앙은 그들이 섬기던 태양신의 무력함을 드러내고, 이스라엘을 핍박한 죄를 깨닫게 하려는 의도를 가졌었고, 어둠 때문에 눈으로 서로를 볼 수 없게 되어 두려움과 분리를 경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짐승을 섬기는 자들의 우상숭배가 헛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이 어리석음 것임을 깨닫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적으로 보지 못하고 결국 분리되어 영원한 어둠 가운데 처해질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속 예수님의 말씀에서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최후의 심판을 예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을 따르는 자들은 그런 고통으로 회개하기보다 하나님에 대한 반감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여섯째 대접은 유브라데 강에 부어져서 강물을 마르게 합니다. 이것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공격하기 위해 그 도시에 물을 공급하던 유프라테스강 상류로 올라가 물길을 돌려 강물을 마르게 한 후에 성 안으로 침투한 것을 생각나게 한 것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을 반대하여 힘을 모은 악한 세상의 대표 격입니다. 그런 바벨론이 의존했던 강물을 마르게 해서 멸망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의 교만한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을 상징합니다. 또 개구리 같은 거짓 영들이 나와 천하의 왕들을 모으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마지막 전쟁 즉 17절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을 상대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섯째 대접 심판 끝 부분에는 특별하게 두 개의 구절이 나오는데 첫 번째는 주께서 아무도 예견 할 수 없도록 도둑같이 오시기 때문에 깨어서 벌거벗고 있지 않을 것을 권면하신 내용입니다. 주님은 분명 오시기 때문에 우리가 고난 속에서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인내는 핍박과 고통을 견디는 것 뿐 아니라 유혹에 타협하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할 것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악한 세상과 우상숭배자들과 타협하는 것을 간음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벌거벗은 죄로 비유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아마겟돈 전쟁에 관한 것입니다. 아마겟돈은 히브리어로 하르-마게돈입니다. 하르는 산이고, 마게돈은 므깃도라는 지역이름으로써 즉 므깃도 산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므깃도라는 지역은 등장 하지만 므깃도 산으로 불려진 곳은 없습니다. 이 므깃도 산은 하나님께서 성경의 인물들에게 개인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시거나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실 때 그 배경이 되었던 산들에서 일어난 일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 홍수가 나서 높은 산들과 함께 심판받은 땅 위에 방주가 떠올랐다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던 것처럼,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시내산 아래에서 우상숭배 하다가 심판을 당한 것처럼,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심판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전 시간에 언급한대로 시온산을 비롯한 산 하르 마게돈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절하면서 자신들의 나라, 자신들의 산을 쌓으려는 악행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자신의 나라를 이루실 순간을 예고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을 완전하게 드러내시고, 결정적인 심판을 하실 최종 순간이 하르-마게돈, 아마겟돈입니다.

 

    일곱째 대접은 공중에 쏟아집니다. 여기서의 공중은 에베소서 2:2에서 사탄을 공중 권세 잡은 자라고 가리키는 것과 연관됩니다. 보좌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의 음성에 따라 천둥 번개와 큰 지진과 우박이 있게 되고 그로 인해 바벨론적 세상이 무너집니다. 이 심판은 보편적인 이 땅의 결정적인 파괴를 의미합니다.

 

    이 두려운 일곱 대접 심판을 통해 우리는 기도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우리의 조건과 상황이 당장 달라지지 않을 수 있고, 때로는 더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고통을 덜어주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더디 이루시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에 대해 전혀 아쉬울 것이 없을 만큼 탁월한 응답을 결국 주십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담겨진 대접이 악한 세상을 심판하는 도구가 된 것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계속 구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결코 이 세상에 소망이 없음을 알고 주님이 오셔서 완전한 통치를 이루시길 소망할 것입니다. 주님이 속히 오시길 기도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그런 기도의 응답인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진노, 두려운 종말을 타당하게 여기냐는 것입니다. 165-11절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합당하고 옳다고 찬양하는 내용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들마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불편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이 멸망시키실 것이라 생각하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름답고 신비한 여러 나라의 자연경관들, 멋진 역사를 간직한 유럽의 도시들과 최첨단의 과학과 문명이 집약된 현대 도시들을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실 것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것은 사탄의 유혹에 미혹되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세상이 주는 것에 깊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가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고, 특별히 계시록이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고 찬양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우리는 악인들이 심판 받고 지옥에 가는 것을 쌤통이라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아름다운 이 세상의 종말과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들이 당할 지옥은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성경과 십자가 복음이 옳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결정적으로 증명해주시기를 바라는 태도에서 심판과 종말을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있는 이 세상은 결코 이대로 계속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