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1-2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사무엘서는 이스라엘에 인간 왕이 세워지고, 국가로서의 형태를 갖추게 되는 시작을 보여줍니다. 그 시작은 ‘한나’라는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엘가나라는 남자에게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브닌나는 자식을 낳았는데, 한나는 낳지 못했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그런 한나이지만 더 사랑했고 그것을 아는 브닌나는 한나를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화가 나게 만들었는지 본문 6절에서는 브닌나를 한나의 ‘적수’라고 표현했습니다.
한나가 매년 그렇듯 성전에 가는 날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브닌나 때문에 아주 화가 난 상태였습니다. 한나는 그 울분을 토하면서 하나님께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사장 엘리가 그 모습을 보고 술 취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한나에게 아기를 낳게 해주셨는데 그 아기가 바로 사무엘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응답해주셨기 때문에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무엘은 젖을 떼고 나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사무엘상 1장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가 중심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한나를 사무엘의 어머니, 기도의 어머니, 자식을 하나님께 드린 헌신의 여인으로 여깁니다. 한나는 자신의 괴로움을 기회로 하나님께 기도했고, 또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셨을 때, 그 귀한 아들을 하나님의 성전에 바쳤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에서 한나가 등장한 것이 그녀가 사무엘의 어머니였고, 그렇게 위대한 기도와 위대한 헌신을 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한나의 감정과 태도와 말에서 특별한 점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나는 브닌나 때문에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브닌나에게는 한나에게 없는 자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분명히 남편 엘가나는 한나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한나가 자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 사랑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성전에 갈 때 동행(7절)했고, 제물의 분깃(4-5절)도 더 주었습니다. 엘가나는 그 애정을 말로도 표현합니다. 8절의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라고 말입니다. 한나의 분노는 남편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녀가 없는 것으로 인한 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것입니다.
또 한나는 자녀를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였는데, 그 기도의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11절을 보면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면 자신도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할 일을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조건적입니다.
다음으로 20절을 보면 사무엘이라 이름 지은 이유를 한나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라는 뜻으로 그랬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본뜻은 ‘여호와께서 들으셨다’입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지을 때 부모는 자녀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의미와 그것을 담는 단어를 고민해서 결정합니다. 한나가 ‘사무엘’이라는 단어의 뜻을 분명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 성경본문은 한나가 ‘사무엘’이라는 이름을 지은 이유가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했다고 전하지 않고, ‘내가 여호와께 아들을 달라고 구했기 때문이다’라고 전하고 있을까요?
이번에는 27절을 보겠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떼었을 때 그를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성전에서 자라며 하나님을 위한 봉사자로 사용되도록 드린 것입니다. 이때도 한나는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라고 말합니다. 한나는 자신이 구한 그 행동과 자기 기도의 간절함이 기도응답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이어서 28절에서 한나는 여호와께서 아들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린다’라고 말합니다. 앞에서 살폈던 11절의 기도내용 ‘아들을 주시면 저도 드리겠습니다’는 조건적 내용이 그대로 반복되어서 실천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그대로 지켰다는 점에서 본다면 매우 훌륭한 고백이고, 실천입니다. 그러나 조건적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한나가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의 원문 뜻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빌려드리겠나이다’라는 뜻입니다.
한나의 말들과 태도를 종합하면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충분히 여기지 않았고, 브닌나가 가진 자녀를 자신도 가짐으로서 더 우위를 점하려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 그것들을 구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간구하는 행위, 간절한 요청이 하나님의 응답을 유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그것으로 하나님께도 좋은 것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한나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나가 왜 사무엘의 어머니로 사용되었고 사무엘서의 서두에 자리 잡고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한나의 그런 상태와 행위가 이스라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사사기에서 사무엘서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명 살아계셔서 자신들을 돌보고 계신데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방나라처럼 왕을 갖기를 바라는 이스라엘이 한나가 남편의 사랑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식을 갖고자 시기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한나는 이방의 왕을 시기하는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한나의 이야기는 사무엘상 8장에서 여호와께 왕을 구하는 백성들의 태도와 행동의 복선이 되는 것입니다.
한나의 이야기가 왜 사무엘상 처음에 위치한 것인지를 아시겠습니까? 그저 마지막 사사였고, 선지자였던 사무엘의 등장을 위해 불임의 여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아이를 낳은 기적으로 신비감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남편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한나는 이미 계신 왕이신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없는 자녀를 낳아 남편의 사랑을 가져가는 브닌나를 시기하는 한나, 왕을 세워서 강성해지는 이방을 부러워하는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 부족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할 때, 또 구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세심하게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와 바람이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가운데 생겨나는 것입니까? 모든 가치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고 구하는 것입니까?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가치, 유행, 경쟁에 가치를 두고 하나님께 조르는 것입니까?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한대로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깨닫게 하기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왕을 달라고 했던 이스라엘에게 왕을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해야 하는 모든 간구의 중심에는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최고의 만족으로 여기길 원한다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시지만 하나님이 참된 만족이시고 전부시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결핍이 있고, 또 세상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지고, 화려하고, 그들의 삶에 즐거움이 있는 것 같지만 진정한 만족과 영원한 즐거움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우리는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리 목적으로 설교를 스크랩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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