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3-14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사울이 왕이 된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그의 아들 요나단이 군사들을 이끌고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사울의 군사력과 비교가 안 되는 블레셋 군사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어떤 사람들은 여기저기 숨을 곳을 찾아 피했고, 어떤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가 길르앗 땅으로 피신하기도 했습니다.
사울은 전쟁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통해 물어야 하는데 사무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칠일 안에 도착하기로 한 사무엘이 오지 않자 병사들은 두려워서 탈영하기 시작했고, 불안한 사울은 직접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나니 그때 사무엘이 도착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이냐고 묻자 사울은 백성들은 떠나가고 블레셋은 공격하러 올 것 같은데 사무엘 당신이 오지 않아서 그랬다고 말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왕의 행동은 어리석은 것이며 이제 사울의 왕권이 약해지고 하나님께서는 다른 왕을 세우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믹마스라는 곳까지 와서 이스라엘의 마을들을 공격하고 노략질을 했지만 사울과 요나단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블레셋을 건드려 사태를 일으킨 요나단은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아버지 사울에게 말하지 않고 몰래 블레셋 부대가 있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요나단은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하러 가면서 자신의 무기를 든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겠다고 무기든 자에게 설명합니다. ‘우리들이 일부러 적들에게 노출했을 때 적들이 우리한테 오겠다고 말하면 올라가지 않고, 반대로 우리 보고 오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공격하라는 뜻으로 알자’라고 말합니다. 이 방법이 요나단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한 방법인지, 아니면 나름대로 하나님을 빙자해서 동전을 던지듯 점을 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요나단은 자신들을 적들 앞에 보였고, 블레셋 군사들이 이리 오라고 말하자 여호와의 뜻인 줄 알고 가서 공격합니다. 그래서 블레셋 군사를 이십 명 정도를 쓰러뜨리게 됩니다. 그런데 3절을 보면 사울은 아히햐 라는 제사장과 함께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히야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엘리 제사장 가문의 사람임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은 버림받은 자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요나단의 이 1차 공격이 이스라엘 진영에서 목격 되자 사울은 그제서야 아들 요나단이 행한 일인 줄을 알게 됩니다. 이상하게도 사울은 아들에게 지원부대를 보내지 않고, 언약궤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의 뜻을 묻게 합니다. 그런데 잠시 후 사울은 제사장에게 손을 거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신기하게도 블레셋 군대가 몰리는 보고 그런 것입니다. 즉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라고 했다가 이스라엘의 상황이 유리한 것 같으니까 안 물어도 된다고 중지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뒤쫓는 추격전으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24절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피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울이 블레셋을 전멸시키기 까지 백성들에게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먹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사울의 명령을 잘 지켰기 때문에 힘들고 피곤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명령을 듣지 못한 아들 요나단이 꿀을 발견하고 먹었습니다. 백성 중 한 사람이 사울의 명령을 요나단에게 설명해주자 요나단은 자신이 꿀을 좀 먹었는데도 이렇게 기력이 회복되는데, 백성들이 다들 잘 먹었으면 전투력에 훨씬 도움이 되지 않았겠냐고 아버지를 비난하는 말을 합니다.
결국 백성들은 아얄론까지 블레셋을 추격해서 공격했고, 빼앗은 동물을 피가 있는 채로 잡아 먹었습니다. 제사법상 이스라엘은 동물들을 피가 있는 채로 먹으면 안 되었습니다. 사울은 백성들이 피가 있는 채로 고기를 먹은 사실 때문에 ‘믿음이 없다’고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고 꾸짖습니다. 그리고는 피를 제거할 수 있는 제단을 만들어서 거기서 잡아먹으라고 합니다. 배고픔을 달랜 후 다시 전투를 지속하려고 사울이 하나님께 물었는데 하나님이 대답하지 않으셨다고 37절에서 말합니다.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는 이유가 자기들 중 누군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 죄가 누구에게 있는지 알아보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찾아냈는데 바로 자기 아들 요나단이 뽑혔습니다. 사울은 감정적으로 요나단을 죽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침착하고 합리적으로 요나단의 죽음을 막습니다.
본문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무모하게 사고를 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대로 사울은 종교적인 것들을 내세우면서 조심스럽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결국 자신의 체면과 권위를 위한 정치적인 술수였음을 알게 합니다. 앞의 11장에서 사울이 암몬과의 전쟁으로 리더십을 공고히 하고 진짜 왕으로 인정받는 일이 있었는데, 오늘 13-14장에서 사울은 여러 잘못을 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습니다. 사울이 왕의 자리에 계속 있긴 했지만 하나님께 인정받는, 좋은 왕으로서의 기간이 얼마 안 됐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자기 마음대로 제사를 드리고, 사무엘을 통해 경고를 듣고도 반성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기회가 있었지만 또 자기 판단대로 했습니다. 중요하고 위급한 순간에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할 기회가 있었지만 다급하면 하나님을 찾는 것 같다가 상황이 달라져 자기 힘으로 해볼 만하면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죄책감을 느꼈는지,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불성실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종교적인 의무를 부과하고, 그걸 위반하면 믿음 없이 행했다고, 죄 짓는 거라면서 다른 사람들을 통제했습니다. 그렇게 사울은 자신이 실수한 것을 어색한 종교적 형식과 금식과 제단 쌓기로 만회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무모한 맹세와 저주를 해놓고는 권위와 왕의 명예를 지키려 했습니다. 신앙의 실패를 종교적 조작과 성취로 땜질하려했습니다.
사울이 보여준 문제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있지 않으면서 왕의 직무를 잘 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맡겨진 일을 성취하는 것,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바에 부응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버리고 백성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며 그 속에서 자신이 신이 되려고 했습니다. 사울왕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그러기 쉽습니다.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존귀한 가치와 정당한 권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충실할 때 생겨나는 것인데, 죄인인 인간은 다른 것으로 존경받고, 권위를 인정받으려 합니다. 사울은 그런 점에서 자신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망각하고, 자신과 백성들에게로 중심이 이동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헛된 것에 목숨을 걸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은 마침내 오신 참 왕이셨지만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의존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환호를 가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나타내는 아들로서, 종으로서 행하셨습니다.
사울은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처음 왕으로 세워질 때 숨어 있었던 것은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평가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그의 상태가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서 있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세상의 시선에 의해 위축과 교만 사이를 왔다갔다 합니다. (그런 사울을 세우신 이유는 그것이 이스라엘의 상태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기 위해 다른 것으로 만회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잘 하는 것, 맡겨진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이 무시된다면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일,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일, 하나님이 허락하신 방법대로 가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야만 겉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들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를 주장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과 사람들에 의해 내가 존재하는 줄, 헛된 것들에서 삶의 이유를 얻는 줄 착각하지 않고, 날 만드시고 날 세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의미와 목적과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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