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5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지난 주 본문에 있었던 요나단에 의해 일어난 블레셋과의 전쟁 이후 사울은 많은 승리를 이루며 이스라엘 왕의 위치를 견고히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블레셋이 여전히 위험한 나라였기 때문에 사울은 기회가 되는대로 힘센 사람들을 모아 큰 군대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언뜻 보면 사울의 잘 된 면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 15장 1절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나타나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당신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셨으니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세상의 기준으로는 사울이 좋은 왕처럼 보이고 국력도 강해지는 것 같았지만 사무엘이 사울에게 제발 좀 하나님 말씀을 들으라고 말할 만큼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내용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군대로 이번에는 아말렉을 크게 무찌르게 하실 것인데, 승리 후에 아말렉 사람들과 모든 가축을 전멸시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말렉을 무섭게 징계하시는 이유는 출애굽기 17장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지 얼마 안 되어 아주 약하고 불안한 시기에 한 족속이 공격했는데, 모세가 손을 들고 있을 때만 이스라엘이 이기게 되는 일이 일어나자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계속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때의 적이 바로 아말렉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오늘 본문에서 지키신 것입니다. 그 일에 사울이 참여케 하셔서 순종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사무엘의 말대로 하나님이 도우셔서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과 가장 좋은 가축들을 없애지 않고 살려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다” 여기서 후회하셨다는 것은 사람처럼 슬픔을 표현하신 것이지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이 실수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다는 말씀을 듣고 기도로 밤을 새우다가 사울을 만나러 갈멜로 갔습니다. 그 때 사무엘이 양과 소의 울음소리를 듣고 어찌 된 것이냐고 묻자 사울은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좋은 것들로 남겨 둔 것이라 말했습니다. 사무엘은 지난 밤 여호와께 들은 말씀을 사울에게 전했고, 사울이 자신을 작고 약하게 여겼을 때 하나님이 왕으로 삼으셨는데, 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도 그대로 순종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포로와 짐승들을 다 죽이지 않은 것을 ‘탈취’라고, 훔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이 분명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고 행했으며 단지 가장 좋은 것으로 제사하려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무엘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사무엘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 형식은 쓸모없고 순종이라는 실제적인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사울이 제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25절에서 사울은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라고, 30절에서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라고 반복해서 사무엘에게 경배를 요청합니다. 사울이 경배하겠다는 것은 제사를 말하는 것인데, 사울은 사무엘 앞에서 자기 잘못이 드러날 것 같은 분위기를 빨리 모면하고, 경배하러 가자고 집착을 보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울의 인생에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 순종해야 할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전쟁에서 얻은 것을 진멸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생각에 좋은 것들을 살려두었습니다. 사울이 좋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죽이지 않았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해도 그것은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제사는 그것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것이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순종한 결과를 가지고 제사를 해야지 불순종한 것을 가지고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울과 백성들이 좋은 것으로 골라 제사 드린다 해도 그것은 인간의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일 뿐입니다. 나아가 좋은 동물을 살려 둔 이유가 제사 때문이 아니라 살려두어서 이용할 속셈이었다면 사울은 진짜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죽이면 아까우니까 짐승들을 살려서 자원으로 사용하고 아말렉 왕 아각도 살려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승리를 보았지만 하나님의 명령대로 포로들과 가축을 막상 모두 죽이려니 아깝게 여겨지고, 사람과 가축을 다 죽이는 것은 생명을 경시하는 것이라는 나름 합리화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다 죽이는 것보다 살려서 이용하는 것이 통치를 위한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은 진멸이라는 순종을 요구하신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자기가 정치를 더 잘 할 수 있고, 더 멋진 예배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서 백성들의 마음을 이번 기회에 더 사로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울은 그런 자신의 숨겨진 의도를 가리기 위해 흥분하며 말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16절에서 사무엘이 ‘가만히 계시옵소서’라는 말까지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반성하지 않고, 계속 경배, 예배에 집착합니다. 30절을 보면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라고 말하면서 사무엘이 지적한 문제를 그냥 덮고 백성들 앞에서 종교행위를 통해 자기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결국 그 예배가 자신을 높이기 위한 것임을 자백한 것입니다. 지난 시간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 중 자기 군사들을 통제하기 위해 하나님을 운운하고, 종교적인 규례들을 이용한 것처럼, 오늘 본문에서 아말렉을 진멸하는 과정에서는 자기를 높이기 위해 예배를 이용하려 했습니다.
예배는 무엇입니까? 피조물인 나보다 하나님이 더 높으시고, 선하시고, 지혜로우시고, 마땅히 존경을 받으셔야 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 없이 사울이 집착한 예배처럼 행해지기 쉽습니다. 사울이 자신의 불순종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빨리 덮어 버리고 예배를 드리자고 재촉한 것처럼 우리도 예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예배 속에서는 자기가 하나님께 받았다는 말씀과 깨달음과 은혜도 참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뜨거운 것이 경험되어도 예배자 자신이 자기연민과 욕망으로 가짜 은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또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같지만 사울처럼 승리의 공로를 자기에게 돌리려고, 예배드리는 자신을 숭고하게 치장하려고, 또 자기가 계획하는 바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종교적 정당성을 덧씌우려고 그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자기 사랑, 자기 공로, 자기 정당화를 위해 예배가 오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간절함은 사울이 제사를 이용해 승리를 축하하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왕권이 강해지길 기대한 욕심에서 나온 집착과는 달라야 합니다. 그 간절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함이어야 합니다. 당연히 그런 예배는 사울이 기대한대로 사람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높으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내가 낮아지는 순간이 됩니다. 바른 예배는 사울처럼 내가 옳다고,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고치고 새로워져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죄인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사울은 아말렉 사람들과 소와 양을 전멸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사울 자신도 함께 죽어야 하는 죄인임을 깨닫는 예배를 드렸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예배를 드려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죽음과 저주를 면한 것으로 감사와 영광 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우러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 예배자는 사울처럼 자기 지혜와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는 것이 복임을 예배를 통해 알게 됩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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