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7장 28-40절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입니다. 골리앗이 속한 블레셋은 사울이 이끈 이스라엘 군대에게 크게 패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블레셋은 장수 골리앗을 대표로 보냈습니다. 골리앗은 신체조건이 엄청났습니다. 키는 3미터 가까이 되었고, 무게가 50kg이 넘는 청동으로 만든 갑옷을 입었습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싸울 대표를 보내라고 싸움을 걸었습니다. 사울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겁에 질렸습니다. 그 때 다윗이 나타납니다. 본문은 다윗의 가족사항을 소개하는데 그 이유는 오늘 장면이 다윗이 기름부음 받은 이후 공식적인 첫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아직 왕은 아니었지만 이스라엘을 구하는 왕의 역할을 시작했다는 것을 본문이 말하려고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이 부를 때만 가고 평소에는 아버지의 양을 돌봤습니다. 골리앗이 싸움을 걸기 시작한지 40일이 되었을 때, 아버지 이새는 이스라엘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을 알고 전쟁터에 나가 있는 아들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음식을 챙겨서 다윗 편으로 보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대치중인 곳에 왔을 때 골리앗이 또 협박하고 시비를 거는 것을 들었고 이스라엘은 벌벌 떨었습니다. 다윗이 사람들 앞에서 골리앗의 모욕에 크게 분노하자 그 소리를 들은 다윗의 큰 형 엘리압이 와서 다윗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꾸짖었습니다. “양들을 어디다 맡겨두고 왔냐! 나는 너의 교만과 무례함을 안다. 너 전쟁 구경하러 왔지?”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내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제가 여기 오면 안 되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큰 형 엘리압이 왜 그런 화를 쏟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너무 황당한 반응입니다. 다윗이 거기 있었던 것은 다윗이 임의로 온 것도 아니고, 오히려 화를 내고 있는 형 자신을 위해 아버지가 보냈기 때문입니다. 또 거기 있던 사람들 앞에서 골리앗에 대한 분노를 쏟으며 사람들에게 질문한 것은 큰 잘못이 아닙니다.
그 대화를 들은 사울의 신하가 사울에게 알렸고, 사울이 다윗을 불렀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말렸지만 다윗은 오히려 사울을 안심시키고, 자신이 나가서 골리앗과 상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양들을 맹수들로부터 지킬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을 말하면서 골리앗도 그러한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고, 자신이 넘어뜨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울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옷과 칼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다윗은 그것들을 착용하고 시험해 보았지만 익숙하지 못해서 다 내려놓고, 그 대신 돌 다섯 개를 주머니에 담고 막대기와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에게 나갔습니다.
골리앗 보기에도 다윗은 신체조건이 업신여길 만하게 생겼습니다. 용모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이것은 젊고 이쁘장하다는 것입니다. 골리앗이 또 저주를 하자 다윗은 45-47절 사이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전쟁이 달려있다는 표현을 여러 번 반복하고는 빨리 달리면서 물매에 돌을 걸어 골리앗에게 날렸고, 돌에 머리를 맞은 골리앗은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황당하게 골리앗이 죽자 블레셋 군사들은 달아났고, 이스라엘은 쫓아가 승리를 얻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당연히 물매를 잘 던질 줄 아는 실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물매라는 공격수단이 골리앗이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공격수단이라서 그랬을까요? 사사기 20:16을 보면 베냐민지파 사람들은 물맷돌 던지는 실력이 상당했습니다. 또 당시에는 이 물맷돌이 조직적인 전쟁에서 전술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골리앗이 그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즉 상대가 예상치 못한 공격방법이라서 다윗이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다윗의 신체조건은 골리앗에 비하면 열등했고, 전투 경험도 없습니다. 다윗 말고도 물매를 던질 수 있는 자는 많이 있었습니다. 또 다윗이 승리한 원인은 거대한 골리앗의 민첩하지 못함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승리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분명한 의지에 사용된 요소들일 뿐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승리의 원인은 다윗이 말한 것에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께서 다윗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건져내신 것입니다. 45-47절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골리앗과 블레셋을 이스라엘에 넘기셔서 이스라엘을 지키실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원하시는 일이라면 사람이 어떤 상태인가, 전쟁수행능력이 어떤가에 얽매이지 않으시고 승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전쟁이 여호와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 명예, 자기 영광을 위하여 일하시는 분임을 다윗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수치스럽게 되는 것에 대해 그렇게 강조하고 분노를 표현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일상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신 것처럼 이스라엘도 그렇게 건져내실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차별성입니다. 그가 가진 전투기술, 신체조건,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다른 사람에 비해 다윗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했지만 그것을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일들로 인식하고 기억했습니다. 또 그것을 골리앗이라는 위기에 적용했습니다. 다윗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만군의 하나님, 모든 일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나의 일상과 공적인 사건 모두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을 믿는 일관성입니다. 개인적으로 자신을 도우신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한 일, 자기 백성 전체를 위한 이 일에서는 마땅히, 분명하게 역사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한 가지 더 살필 것은 다윗의 대적자입니다. 누가 다윗의 대적자입니까? 골리앗입니다. 그렇습니다. 골리앗은 노골적으로 드러난 다윗의 대적자입니다. 골리앗은 다윗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이스라엘의 대적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대적자는 골리앗뿐 만이 아닙니다. 누가 또 다윗의 대적자이겠습니까? 맏형 엘리압입니다. 엘리압은 다윗을 판단하고 멸시하였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읽다가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엘리압이 그런 식으로 갑작스럽고도 단정적인 말을 쏟아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엘리압이 평소에 다윗에 대한 불만이 많았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장자인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아야 하는데, 막내 다윗에게 그것이 가서 미움이 쌓였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엘리압의 성격에 문제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윗이 가족 안에서 희생양으로서 무시당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지금 말한 가능성들은 오늘 본문 앞과 뒤에서 있었던 사건들과 또 시편에서 다윗이 고백한 내용들을 토대로 예상해 본 것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타당성이 있는 추측일 뿐입니다. 어쨌든 그런 가능성들이 다윗을 멸시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다윗은 부당하게 멸시를 받은 것입니다.
다윗의 대적자가 한 명 더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본문에서 등장한 사람이 몇 명 없으니까 이제 남은 사람인, 사울입니다. 사울이 대적자인 것은 사무엘상 후반부에서 나타나지, 오늘 본문에서는 아직 드러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다윗을 대적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에게 자신이 입은 왕의 군복과 갑옷을 입힌 것입니다. 다윗을 무장시킬 수 있는 옷이 사울의 옷밖에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에서나 혹은 영화에서나 높은 위치에 있는 자가 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인물과 옷을 서로 바꿔 입는 장면을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옷을 바꿔 입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왕의 옷을 입혀 아랫사람을 보호해주기 위해서입니까? 그런 의미로 왕이나 공주의 옷을 입히는 일은 역사상에나 영화와 소설에서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전장에서 수장의 옷을 입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왕이 전장에서 노출되거나 패할 때의 위험을 그 옷을 입은 사람이 대신 지고, 승리할 경우에는 그 승리의 영광과 명예를 왕이 가져간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지혜롭게 사울의 군복과 무장을 벗어 내려놓았고 결과적으로 승리해서 좋게 끝났지만, 앞에서 확인한대로 기회주의적인 사울은 다윗을 이용하려 한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대적하였습니다. 얼마나 사악합니까! 이것이 세상 왕의 생존방식입니다.
이렇게 다윗의 대적자들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여러 성경해석자들이 골리앗을 사탄을 상징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사십일 동안 괴롭힌 것과 다윗이 업신여김 당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대우를 당하신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 가장 가까운 가족인 형 엘리압이 다윗을 멸시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당하시고 죽임 당하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사울이 다윗을 이용하려 했던 것을 보면 왕을 달라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경고하신 대로 인간 왕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어둠이 빛을 대조시키듯 인간 왕의 그런 악함이 예수님께서 어떤 왕이신지를 말해줍니다. 사울을 비롯한 세상의 왕, 세상 지도자는 백성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왕들은 자신이 당할 위험과 책임을 백성에게 넘기고 영광과 명예는 자기 것으로 돌립니다. 이것이 인간 왕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울처럼 백성을 이용하는 왕이 아닙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백성의 책임과 죽음을 대신 지고 생명과 영광스러운 것을 백성에게 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자기 백성을 위하시는 참 왕이십니다. 그런 왕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정치와 나라가 무엇인지 알수록 자기 백성을 이렇게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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