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3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허수아비 왕 이스보셋과 실권자 아브넬이 버티고 있는 사울왕국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그런 사울왕국에 비해 다윗의 헤브론 왕국은 점점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다윗의 집안과 사울의 집안을 비교합니다. 2절에서 5절은 다윗의 아들들을 말함으로써 왕권의 기초가 되는 왕의 가문이 여유로워지고 풍성해진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6절 부터는 사울 왕국이 실권자인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다툼으로 분열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사울의 집에서도 강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6절을(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보면 그것은 바로 아브넬의 권력입니다. 이것은 불법으로 얻은 힘이었습니다. 그 힘으로 아브넬이 어떤 일을 저지르는가 하면, 사울의 전 부인을 취합니다. 이 일로 왕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화를 냈지만, 오히려 아브넬은 적반하장으로 이스보셋에게 ‘내 덕에 네가 왕 위에 앉아 있으면서 나한테 그럴 자격이 있냐’는 식으로 말하고 사울왕국을 다윗에게 넘겨버리겠다고 협박을 합니다(8-10절).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는 하나님의 뜻이 마치 자기 손에 달린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자 이스보셋은 벌벌 떨며 꼬리를 내립니다.
아브넬이 단지 자기 죄를 덮기 위해 이스보셋을 협박한 줄 알았는데, 정말 다윗에게 나라를 넘기려 합니다. 아브넬이 먼저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이스라엘을 넘기겠다고 제안하자 다윗이 그 뜻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아브넬은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찾아가 마치 그들이 원해서 자기가 다윗에게 나라를 넘기는 것처럼 말합니다. 18절에서 아브넬은 다윗이 왕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자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합니다. 그렇게 아브넬은 백성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넘기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다윗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거스를 수 없음을 느끼고 살아남기 위해서 재빨리 행동한 것입니다.
아브넬과 부하들이 이스라엘을 넘길 준비를 해서 찾아왔을 때 다윗은 잔치를 베풀었고, 다윗과 언약을 맺은 후 아브넬은 돌아갑니다. 그런데 요압이 전쟁에서 돌아와 그 사실을 알고는 다윗에게 아브넬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냐고 불만을 드러내면서 군사들을 보내 아브넬을 다시 데려온 후 죽입니다. 요압은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아브넬에 대해 복수심이 불탔겠지만 자기 멋대로 죽여서는 안 됐습니다. 아브넬은 다윗과 중요한 언약을 맺은 당사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압의 행동은 다윗의 결정을 우습게 여기고 제멋대로 반항한 것입니다. 게다가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은 다윗에게 큰 위기가 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사람들은 다윗의 부하인 요압이 사울왕국의 실권자인 아브넬을 자기 맘대로 죽였을 리 없고, 분명 다윗이 시켜서 죽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울왕국 사람들이 아브넬의 죽음을 다윗의 음모로 오해하면 다윗이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브넬의 장례를 자기가 다스리던 헤브론 백성들 전체가 참여하는 국장 수준으로 치렀습니다. 다윗은 아브넬의 상여를 따라 갔고, 사울이 죽었을 때처럼 애가를 지었고, 그의 죽음이 요압의 짓임을 알리기 위해 저주했습니다. 다윗은 신하들 앞에서 제멋대로인 요압을 자기가 감당할 수는 없다는 곤란한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다윗에게 요압은 꼭 필요한 인물이지만 자기 힘만 믿고 마음대로 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골치 아픈 요압을 하나님께서 다루시길 원한 것입니다. 그런 다윗의 반응은 백성들에게 전달돼 아브넬의 죽음이 다윗이 계획한 일이 아님이 알려졌습니다.
본문에서는 아브넬과 요압이 사건을 주도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브넬은 사울왕국을 계속 유지하면서 권력을 누리려 했지만 다윗의 나라가 점점 강해지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했습니다. 아브넬은 1인자보다 2인자가 훨씬 안전하고 누릴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동안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워놓고 자기가 권력을 누렸던 것처럼, 더 늦기 전에 다윗 아래로 들어가 통일된 다윗왕국의 실권자가 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공로를 인정받아 영향력 있는 자리를 보장받으려고 사울왕국을 다윗에게 갖다 바친 것입니다. 아브넬은 다윗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새 왕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을 그에게 주신다는 것을 전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아말렉을 전멸시키라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들은 말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라는 말을 아브넬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넬은 지금까지 그 말씀을 무시하고 있다가 이제 다급해지니 자기를 통해 그 뜻이 실행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요압을 생각해보십시오. 요압은 다윗의 충성스런 부하입니다. 다윗과 아브넬이 조약을 맺고 있는 중에도 다윗 왕국을 위해 충실하게 전쟁을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25절에서 요압이 다윗에게 어떻게 아브넬을 믿을 수 있겠냐고, 그가 속이는 것이라고 한 말은 타당한 지적입니다. 새겨들어야 충고였습니다. 아브넬은 실제로 교활한 인간이었고 요압은 일찍부터 다윗 편에 속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이 현실이 되는 과정에 헌신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압은 자신의 판단과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했습니다. 제멋대로였습니다. 다윗이 그를 통제할 수 없어서 괴로워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주시는 일에 이 두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조력하는 자들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본문에서 아브넬은 비열함과 교만 때문에 요압의 복수심으로 죽임 당했고, 요압도 좋지 않은 결말을 암시하는 말을 다윗에게 들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나라에서 자신들의 위치와 영향력을 차지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나라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그런 사람들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왕과 나라를 선물로 주시는 분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다윗도 여러 장점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고생도 했지만,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수동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왕권과 나라를 선물로 받는 것을 본문이 계속 보여줍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말해줍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 과정에는 모두가 역할을 합니다. 영리한 아브넬이 사울왕국을 잘 지켰다가 다윗에게 넘기는 역할을 한 것처럼, 열심에 사로잡힌 요압이 충성스럽게 산 것처럼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나라가 영광스럽게 임하는데 사용됩니다. 물론 그들은 그 나라를 바라지 않고, 누리지도 못하지만 자기도 모른 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합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가 속히 임하길 바라며 수고합니다. 또 다윗이 기름부음 받았지만 사울로 인해 억울한 고생을 하고, 여러 고난을 당한 것처럼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도 당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공로가 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성도는 하나님 나라 때문에 숱한 어려움을 당해도 그 백성 삼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서 헌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더 온전히 받기 위해서, 사랑받은 자의 당연한 의무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의 공로의 결과가 아닌 오직 하나님께서 백성인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격 없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은혜로운 선물이기 때문에 자기 공로를 인정받으려는 자들, 영광을 가로채려는 자들, 그 나라에서 군림하려는 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 나라가 예수님의 공로로 거저 주어진 것을 알 자들에게, 자격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십니다.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자, 종이 된 자, 세리와 창녀들처럼 자기 자랑을 전혀 못할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만 하나님 나라를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선물이기 때문에 선물을 선물답게 받고, 주시는 분을 영광스럽게 할 자들에게만 주십니다. 이 선물을 우리 모두가 얻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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