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이용당하실 수 없는 하나님 (사무엘하 4장)

따뜻한 진리 2020. 10. 25. 22:54

사무엘하 4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사울 왕국의 실권자 아브넬이 요압에 의해 죽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꼭두각시 왕 이스보셋은 충격을 받고 벌벌 떨었습니다. 그리고 낮잠을 자던 이스보셋은 바아나와 레갑이라는 군 지휘관들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바아나와 레갑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다윗에게 가져갔습니다. 그들은 이스보셋이 있던 마하나임에서 다윗이 있는 헤브론까지 약 100km 정도 되는 아라바길로 쉬지 않고 밤새도록 갔습니다. 그들은 다윗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갔던 것입니다. 그들이 다윗 앞에 도착해서 이스보셋의 머리를 꺼내 보이며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윗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대단한 일을 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한 것처럼 말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이전에 등장했던 누군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바로 사울의 죽음을 알린 아말렉 용병과 똑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9절을 보면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라고 말을 시작합니다. 바아나와 레갑이 마치 다윗을 위해 일 한 것처럼 포장했지만 다윗은 오히려 지금까지 자신의 생명을 지키시고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이기심에 근거한 어리석은 일을 한 것임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이 무슨 말을 했냐면 바아나와 레갑의 행동을 통해 우리가 떠올렸던 그 아말렉 용병 이야기를 합니다. 다윗은 ‘너희들이 지금 노리고 있는 것을 똑같이 하려던 자가 전에도 있었는데, 너희들도 똑같은 착각을 하는구나. 내가 그를 죽였었는데, 너희들은 더 악하게 무죄한 자를 죽였으니 죽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다윗은 그 두 사람을 죽였고, 무고하게 죽임당한 이스보셋 왕은 아브넬의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사울왕의 죽음을 전한 아말렉 용병, 이스보셋을 버리고 나라를 넘긴 아브넬, 그리고 두려워 떨었던 그 왕 이스보셋을 죽인 두 지휘관 바아나와 레갑을 생각해보십시오. 사울의 나라가 어떤 나라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까? 사울이 어떻게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자기 목숨, 자기 권력을 위해 왕을 이용했던 자들이 사울의 왕권을 가능케 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왕을 이용하는 자들이 사울 주변에 진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살아있을 때에 그러했으니 그 아들 이스보셋의 때에도 그런 자들이 왕의 주변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모시는 왕이 더 이상 자기에게 도움이 안 되면 버렸던 것입니다. 더 이상 쓸모없는 왕이니 죽여서 상대편에게 인정받는 용도로써 이용한 것입니다. 얼마나 잔인하고 사악합니까? 세상에는 바아나와 레갑 같은 자들이 늘 있습니다. 도대체 이 세상 백성들, 국민에게 왕이나 대통령 같은 지도자는 어떤 의미입니까?

 

    이 세상 역사가 진행되어 오면서 각 부족과 나라들은 족장이나 왕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혼자 왕이 되고 싶다고 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왕을 세울 백성들의 뜻이 필요합니다. 한 집단의 구성원, 백성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관철시키기 위한 일치와 힘을 집중시키려고 왕을 세웁니다. 인간들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각 개인들을 자발적으로 잘 하도록 그냥 두어서는 집단 간의 생존경쟁과 개발과 전쟁수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절대 권력을 가진 자 아래에서 강제성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왕 아래 있는 사람들은 절대 복종을 위해 왕을 신성시하거나 탄생설화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은 중국이나 북한이 자기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일에서 나타나듯 현대에도 일어납니다. 지도자를 정말 존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왕을 더 잘 이용하려고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왕이 맘에 안 들면 없애기도 합니다. 나라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족장이나 왕, 지도자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웁니다. 그래서 부족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부족원들이 족장을 죽이는 일들이 늘 있었습니다. 역사 속 민중들은 다양한 혁명들로 자기네 왕 한명 죽이고 바꾸면 나라가 달라질 줄 알았지만 다음 지도자가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인간 세상이 보여주는 왕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 본문도 말하듯 인간들에게 있어서 왕은 어떤 존재입니까? 타락한 이 세상에 있어서 왕은 죄인인 인간 집단의 대리자이고, 꼭두각시이고, 집단과 권력자들의 욕망의 결정체이고, 분풀이 희생양이고, 생존의 수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주변 나라들의 공격 속에서 느낀 필요에 의해 인간 왕을 세워달라는 요청을 했고 그 이야기로 사무엘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그토록 왕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것이나 이 세상이 왕을 원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다스려줄 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단 이스라엘은 왕을 원하되 오직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 되시는 것을 원하고 하나님께 충성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원해서 하나님께 얻은 왕을 잔인하게 이용합니다. 상황이 바뀌자 더 이상 쓸모없는 왕을 결국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의 죽음을 기점으로 왕의 죽음을 이용하는 자들이 줄줄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렇게 사무엘상에서 사무엘하로 넘어오는 동안 사울 가문에서 일어난 일들이 이 세상과 이스라엘에게 있어 왕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줍니다.

 

    왜 왕에 대한 그런 비참한 반역과 배신이 일어납니까? 물론 왕의 무능함과 부도덕함이 그가 제거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타락한 인간들이 왕을 제멋대로 하려는 것도 원인입니다. 왕을 달라고 했다가도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왕을 죽이기도 하고, 그 죽음을 이용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두시지 않고, 다윗을 통해 벌하셨습니다. 다윗은 바아나와 레갑이 단지 비열하고 잔인한 자들이기 때문에 죽인 것이 아니라, 왕을 달라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셔서 인간 왕을 허락하신 그 마음, 인간 왕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게 하신 뜻에 어긋난 일을 그 두 사림이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세상 나라들이 왕을 대하는 태도와 달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나 가인이 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께 책임을 떠넘겼듯, 라멕을 비롯한 수많은 악인들이 하나님을 조롱했듯 이스라엘과 세상은 자신들이 세운 왕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조롱합니다. 하나님께 해왔듯 인간 왕에게 하고, 인간 왕에게 해왔듯 하나님께도 그러합니다.

 

    세상이 자신들의 지도자를 왕으로 부르듯, 우리도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 왕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 왕들과 다르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참 왕이신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 요구로 세워지는 분이 아니고, 사람들의 이익에 따라 이용되는 분도 아니고, 싫다고 해서 그의 통치를 거절하고 다른 왕을 바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배척해왔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없애고 자신들 마음대로 세상을 움직이려 해왔습니다. 하나님 대신 자신들이 세운 왕과 우상을 신으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하듯 반하나님적인 도시와 나라들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 자신을 대리하는 자들을 끊임없이 보내셨고, 마침내 아들도 보내셨지만 인간들은 그 아들마저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지 않으십니다. 그 아들의 부활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왕을 함부로 다루듯 하나님은 그렇게 다뤄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바아나와 레갑이 자신들의 왕을 섬기다가 막판에 다윗에게 붙기 위해 비열한 행동을 한 것처럼, 우리는 이 세상을 실컷 섬기다가 막판에 하나님 편인 척 위장할 수 없습니다. 그 두 사람과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이용했다가 이제는 다윗도 이용하려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왕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용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유용하기 때문에 그의 편에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그런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과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근원이 되시지만 그분을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있게 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으로서 진심으로 존중하고, 경외하고, 사랑하고, 순종해야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살아계시는 온 세상의 영원한 왕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