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7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앞의 6장은 다윗이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오는 내용이었는데, 오늘 7장에서는 다윗이 그 언약궤를 위한 성전을 짓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고, 국력이 강해지면서 평안히 왕궁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지 언약궤를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선지자 나단에게 그 뜻을 드러냅니다. 나단도 다윗의 뜻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언약궤를 위한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는 생각을 왜 했을까요? 한 가지는 세상 나라들이 자신들의 신을 위해 건물을 만들어서 모셔두는 것과 같은 동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 나라와 지역에 신당, 신사, 신전 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같은 동기에서 다윗이 성전을 세우려고 했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자신들의 신을 모시는 건축물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힘과 경제력을 과시하고, 왕이 가진 권력을 신성시하고 정당화하는 상징으로 사용하는데, 다윗 역시 그런 차원에서 성전 건축을 모색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사는 궁전보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으로 생각되는 성전이 볼품없는 것에 대해 다윗이 불편한 마음,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성전을 지으면 거기서 하나님이 편안히 사시면서 자신의 나라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 한 또 다른 동기는 자신의 가문과 나라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을 원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 왕권과 나라의 융성함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성전을 지으려 한 것입니다. 다윗은 장래의 일이 걱정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선조들과 사울의 죄를 생각해보면 그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이렇게 왕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지만, 후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지금 다윗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은혜와 영화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누리고 있는 평안함과 굳건함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가를 기억하고,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통치자이심을 분명하게 나타내기 위해, 견고한 신앙적 상징과 교훈을 위해 성전을 지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거하시고 다스리시는 장소가 견고하면 자기 후손들과 백성들이 신앙을 지키고 대대로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리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다윗의 그런 진심어린 마음에도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잘못된 생각들을 바로 잡아주시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6절을 보면 하나님은 출애굽 과정을 떠올리게 하시면서 자신이 집에 살지 않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언제 나를 위한 집을 지으라고 한 적이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지치시거나, 쉬셔야 하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장소와 건물을 통해 보호받고 대접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만들게 하신 성막은 실제로 하나님이 들어가 사시는 장소가 아니라 임시적인 거처로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견고하고 번듯하게 집을 짓고, 여호와의 궤를 그곳에 잘 모셔둔 들 하나님께서 거기서 편안하게 쉬시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하나님은 이름 없는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을 왕으로 세우고, 이스라엘을 부강하게 한 것이 하나님 자신임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하나님께 뭔가를 잘하고, 만족시켜드렸기 때문에 그 대가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주신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성전을 멋지게 짓는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을 더 잘 대해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11절을 보면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라고 말씀합니다. 13절,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왕국이 영원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단을 통해 그런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다윗은 감사 기도를 합니다. 다윗은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이 자리까지 오게 하신 것과 앞으로의 일을 넘어 영원한 것을 약속, 보장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가문을 통해 왕권이 지속될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구약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이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백성은 포로로 끌려가고 나라는 없어지다시피 됩니다. 다윗의 나라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왕권과 영화와 영토를 모두 잃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시 바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 왕국 이스라엘을 잃게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14절과 15절을 보면 다윗의 후손, 아들에 해당하는 ‘그’가 나옵니다. ‘그’는 일차적으로 솔로몬을 가리키지만 이후의 이스라엘 왕들도 포함됩니다. 다윗이 걱정하는 일들, 바로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떠나는 문제가 여전히 있을 것이고, 그런 일들 때문에 비록 하나님께서 징계하시지만 그것으로 다윗의 후손, 다윗의 왕국을 끝내지는 않으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들이 여호와 앞에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방을 통해 징계하시고, 포로로 끌려가게 하시고, 성전도 무너지게 하셨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여기는 참 이스라엘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와 그의 백성들을 넘어서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나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이 집은 예수 그리스도인 동시에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우리가 안전히 거할 처소, 영원한 안식의 근거가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은 다윗이 자기 후손들과 나라를 염려한 것보다 더 길고도 영원한 시각에서 해결책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며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님나라를 집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으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교정되었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왕국을 하나님이 은혜로 세워주셨어도 그것 역시 사라질 수 있음을 알아야 했습니다.
주신 분도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모든 일 속에서 우리가 두려워 할 이유가 없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지시고 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세상과 에덴동산을 만드셨고, 출산할 수 없는 아브람과 사래를 통해 민족을 만드셨고, 양치기 다윗을 통해 왕국을 세우셨듯 우리를 위한 최종적이고 영원한 거처를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집을 마련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진정으로 위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항상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자기 아들을 주시는 것으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사탄과 우리의 죄성과 그로 인해 어그러진 세상사들은 하나님을 의심하도록 만들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자신만이 우리를 위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것, 하나님이 언약을 주시고 성취하시는 것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공경심을 인정하시면서도 다윗이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께 뭔가를 잘해서, 성전을 잘 지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미래를 보장받으려는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아주셨습니다. 다윗이 지키고 싶었던 이스라엘 왕국처럼 우리가 이루고 싶고,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사람의 죄 때문에 또 징계의 과정에서 얼마든지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집으로 인도하시는 과정에서 성숙을 위해 주어지는 잠깐의 징계이고 잠깐의 상실일 뿐입니다. 다윗이 왕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하고, 전쟁도 열심히 치르고, 나라를 잘 다스리면서 그런 것들을 잃어버릴까봐 나라의 장래, 후손을 위한 온갖 고민을 해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이스라엘을 다루실 것에 맡겨야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은 망해도 약속된 자를 통해 세우시는 참 이스라엘은 영원할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가 살게 하시는 이 인생과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고, 후대에게 좋은 것들을 물려줘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다윗이 성전을 바쳐서 이스라엘의 번영을 붙잡아둘 수 없었고, 하나님의 복을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밥 사주고, 돈 챙겨줘서 내 편으로 만들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정성과 공로로 내편으로 만들 수 있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 죄인들을 어떻게든지 다루시면서 자기 백성 만드시는 그 구원사역을 우리는 신뢰하면서 기도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은 무너지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련하신 처소는 영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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