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9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는 사무엘하가 시작되면서 다윗이 헤브론 유다 왕을 거쳐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번영하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다윗 왕국이 모든 면에서 왕국으로서의 기틀을 잡았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미래, 다윗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통해 하나님은 다윗을 넘어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사무엘상에서는 고달픈 삶을 살다가 사무엘하에 와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고 할 만한 태평함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사무엘하에서 그런 이야기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습니다. 사무엘서는 다윗이 평탄했던 시기는 매우 압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윗이 겪게 되는 혼란과 고난을 이야기 하는데, 오늘 본문은 그 분기점이 됩니다. 그 이야기는 사울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에 관한 일로 시작됩니다.
본문 9장에서 다윗은 개인적인 일을 챙길만한 여유가 생겼는지 요나단과의 약속을 떠올린 것 같습니다. 그 약속은 사무엘상 20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하자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활을 쏘는 것으로 암호를 삼아 다윗을 피신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실 것을 알고 있었고, 다윗이 나중에 왕이 되거든 자신의 가문에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또 23장에서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어 다니는 중에 요나단을 만나는 일이 있었는데 그 때도 그 약속을 다시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다윗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하에게 사울의 가문 중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를 알아보게 했는데, 사울의 종 시바를 찾게 됩니다. 시바를 통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생존해있다는 것을 안 다윗은 그를 궁으로 불러 만나게 됩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재산을 보전해 주었고, 종 시바가 그 재산을 관리하면서 므비보셋을 섬기도록 했습니다. 또 다윗은 자기 식탁에서 므비보셋이 함께 먹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왕 가문으로서의 권위를 보장해주겠다는 뜻입니다.
그 과정에서 다윗이 므비보셋을 찾을 때, 사울의 종 시바가 다윗 앞에서 므비보셋의 존재를 알리면서 그에 대해 한 말이 무엇입니까? ‘다리 저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왜 했을까요? 시바는 다윗이 사울의 남은 세력을 숙청하기 위해 므비보셋을 찾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므비보셋이 장애가 있어서 다윗의 반란세력,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다윗 앞에 온 므비보셋 역시 그런 정치적인 차원에서 다윗이 자기를 찾은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은 잔뜩 두려움을 안고 다윗 앞에서 섰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 앞에서 엎드려 자신을 다윗의 종이라고 말했고, 다윗이 은혜를 베푼다는 말을 하자, 그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해서인지 ‘죽은 개 같은 저를 어찌 돌보시나이까’라고 말을 했습니다. 다윗이 보기에도 므비보셋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7절을 보면 다윗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므비보셋을 보며 ‘무서워하지 말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윗의 은혜를 입은 므비보셋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울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사울과 요나단이 블레셋에 의해 죽었을 때, 사무엘하 4:4절에 따르면 그 때에 므비보셋은 다섯 살이었고, 그 유모가 므비보셋을 안고 도망치다가 어떻게 떨어뜨렸는지 절뚝발이가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사울의 총사령관 격이었던 아브넬이 사울의 넷째 아들 이스보셋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워서 죽은 사울의 왕국의 대를 이어갑니다. 그러나 대세가 다윗의 유다왕국으로 기울자, 아브넬은 자기가 왕으로 세운 이스보셋을 암살하고 다윗에게 나라를 넘겼습니다.
므비보셋은 그런 환경에서 왕세손으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삶이 어떠했겠습니까? 성장하면서 자신의 가문에서 일어난 일들과, 사울과 다윗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보고 들었을 것입니다. 또 사울 가문을 지지하는 세력이 여전히 있었기 때문에 이스보셋처럼 자신도 그 속에서 어떻게 여겨지고, 이용될지 몰라 불안했을 것입니다. 몸이라도 건강했으면 그런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살길을 마련했을 것인데 사고로 몸이 불구가 되어 비참함과 슬픔에 빠진 삶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므비보셋은 이전부터 다윗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 삼촌 이스보셋의 죽음을 비롯한 자기 가문의 몰락의 원인은 다윗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없었다면 자신이 평생 불구자가 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아무리 선군으로 백성들에게 알려져 있을지라도 개인사에 있어서 전혀 다른 경험을 했던 므비보셋에게 그런 평판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자기 아버지 요나단과 다윗이 맺은 언약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는 그저 다윗이 점점 강해질수록 언젠가는 자기 왕국에 위협이 될 만한 자들을 제거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그렇게 드러나지 않고 숨어 살던 중에 드디어 다윗이 그의 존재와 위치를 알게 되었고, 다윗이 보낸 사람에 의해 불려가게 된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고, 이제는 죽겠구나 하고 다윗 앞에 섰을 것입니다. 6절을 보면 다윗이 ‘므비보셋이여’라고 이름을 불렀을 때 므비보셋은 선고가 내려지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의 모든 감각은 온통 다윗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무서워하지 말라”라고 말했고, 이어서 아버지 요나단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사울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찾아주고, 왕의 후손으로서의 권위도 회복시켜준다는 말을 했을 때 므비보셋은 상상도 못한 다윗의 말에 자기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시바에게 명령하여 므비보셋을 잘 섬기라고 명령했고, 시바는 다윗의 명령대로 준행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므비보셋은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삶, 비참한 삶을 살아오다가 이제 그 비참함의 최고조인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순식간에 들이닥친 것입니다. 자기가 알던 다윗이 아니었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므비보셋에게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은혜란 그런 것입니다. 므비보셋처럼 상대의 본질과 본심에 대해 전혀 모르고, 기대도 안하고, 찾지도 않고, 도움을 구하지도 않은, 그런 오해와 불만과 체념의 상태에서 예상하지 못한 배려와 돌봄이 내게 들이닥치는 것이 은혜입니다. 죽을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생명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감당 못할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알더라도 원망하는 대상으로만 여기고, 또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아도 죄를 이기지 못하고 피하지 못할 심판에 불만과 두려움을 가지고 ‘이제 죽겠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뜻밖의 은혜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숨은 그를 찾아서 부르시고, 심판을 기다리는 그의 앞에서 은혜를 선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그리하셨습니다. 찾아서 부르시고, 아브라함의 전부에 해당하는 아들을 죽이는 자리로 부르셨는데 하나님은 이삭의 죽음을 대신할 양을 준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예고하는 표상인 다윗을 통해 므비보셋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악하신 분이 아니시고, 무책임한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미리 선택하셨고 끝까지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진정한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조건도 없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고, 우리가 죄인인줄 철저하게 시인하기 때문에 예수 믿을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니라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한 후, 영원토록 깨달아가며 놀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므비보셋이 다윗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중에 은혜를 입은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리 모든 죄를 다 고백하기 이전에 은혜를 베푸셔서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는 놀랍고 과분한 것입니다. 미천한 피조물이 위대한 창조주를 알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은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은혜,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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