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은혜로 이루어진 일이 발목을 잡다 (사무엘하 8장)

따뜻한 진리 2020. 11. 22. 22:52

무엘하 8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오늘 본문에서 앞부분 14절까지는 다윗이 블레셋, 모압, 아람, 에돔에 대해 큰 승리를 얻은 것을 말합니다. 이어서 15절 이후는 견고한 국가 조직을 이룬 것을 말하는데, 다윗은 율법에 기초한 공의로운 법치를 통해 백성들을 다스렸고, 군사령관과 사관, 제사장들과, 관리들을 세웠습니다.

 

    다윗이 전 방위적인 승리를 얻은 이야기 속에서 반복 강조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6절에 아람 사람과 싸울 때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고 나옵니다. 또 14절에 에돔과 싸울 때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고 나옵니다.

 

    두 번째 강조되는 것은 다윗이 ‘많은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2절에서 모압 사람들을 줄로 재어 두 줄 길이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5절에서는 아람 사람 2만 2천명을 죽였다고 합니다. 13절에서는 에돔 사람 1만 8천 명을 죽였다고 나옵니다.

 

    세 번째 강조되는 것은 적들이 ‘다윗의 종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살려둔 모압 사람들이 다윗의 종들이 되어 조공을 바쳤다고 나옵니다. 6절을 보면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었다고 나옵니다. 14절을 보면 에돔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었다고 나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7장과 연관됩니다. 7장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 집과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8장은 그저 다윗이 전쟁을 잘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성취를 확인시켜 주는 차원에서 서술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8장은 7장의 증거로써 하나님의 약속이 이제 다윗 왕조의 확장을 통하여 성취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두 가지 일이 맞물려 일어난 것을 말해줍니다. 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성전을 짓지 못하도록 말씀하신 동시에 다윗의 견고한 왕국을 약속하셨습니다. 8장은 다윗의 승리와 이스라엘의 확장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여주는 일인 동시에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한 것입니다. 다윗의 승리한 일들이 왜 하나님께서 성전을 짓지 못하게 하신 이유가 됩니까? 그것은 역대상 22:8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으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싸움을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때부터 전쟁을 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의 능력을 사용하시고 은혜를 주셔서 많은 적들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나라의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이었습니다. 세상 역사에서 그런 전쟁을 통한 확장은 당연하게 여겨져 왔습니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평화를 만듭니다. 누군가가 힘으로 다른 나라들을 정복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포로된 자들을 힘으로 복종하게 해서 평화를 만들어 냅니다. 다윗이 나라를 세우고, 유지하는 방법도 인간의 무력과 강제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다윗이 적들을 이기고, 많은 사람들을 죽여 종으로 만든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다윗이 적들을 이긴 현장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지만 동시에 사람의 피흘림과 폭력이 작동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사랑, 순전함은 탁월했지만 한 나라의 왕으로서 성취하는 것에서는 세상 다른 왕들과 완전히 다르게 초월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이스라엘이 성장하는 데는 많은 희생과 죽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하나님 나라를 예고하는 모델로, 이스라엘을 하나님 나라를 예고하는 모델로 사용하셨지만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윗이 어떤 성경의 인물보다 뛰어났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분적으로 예표하는 한계를 가졌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그렇습니다. 다윗은 죄인이고, 이스라엘도 죄인들의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그 시대, 그 순간에 위대하게 쓰임 받은 것일 뿐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신앙인물이라도 그의 인생 전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인정하실 만한 순간들로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잠깐 잠깐 쓰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그의 결점을 덮는 은혜와 그의 연약함을 채우는 능력을 베푸셔서 압도하지만 그 쓰임 받음이 그 사람이 한 모든 일을 정당화하고 잘 한 일이라고 지지해 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 아무리 대단하게 쓰임 받은 자라도 절대적인 모범과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거룩하고 순종적인 삶을 살았을지라도 그리스도를 부분적으로 예표할 뿐 그리스도를 조금이라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전의 완성만큼은 다윗의 생애에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다윗에 의해 성전이 세워진다면 그 성전을 보는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나라를 세상 나라들과 다르지 않은 막강한 힘으로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인데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위대한 건축물은 인간의 욕망과 자랑, 염원이 담겨진 작품입니다. 모든 나라들이 자랑하는 것 중 공통적인 것이 건축물입니다. 그리고 종교들, 교회들마저 자랑하는 것이 신성시하는 바로 건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나라들이 자기들이 믿는 헛된 신들을 자랑하기 위해 신전 같은 것을 세우는 것과는 다른 뜻을 이스라엘을 통해 나타내시려 한 것입니다. 강한 힘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 무력으로 복종하게 하는 것, 상대를 종으로 만들어서 섬기게 하는 것과  는 다른 어떤 것을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통해 보이시려 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하지 않으시면서 까지 특별하게 성전을 통해 보이시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성전이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힘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을 죽이고 짓밟음으로 세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포로들을 종살이 시켜서 유지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힘이 아닌, 약함으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상대를 죽여서가 아니라 자신이 죽으심으로 반역자들을 살리셨습니다. 타인을 종 되게 하지 않고 자신이 종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하게 전달하시는 성전이십니다.

 

    성경의 여러 인물 중 하나님께서 자신을 풍성하고 깊게 드러내신 통로로 사용하신 인물로서 다윗 같은 자가 없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이 크게 쓰신 하나님의 종이었지만 세상 나라의 승리 방식, 세상의 전쟁 원리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도 사람은 그것을 죄로 오염시킵니다. 다윗이 그런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어떤 일을 한다 해도, 순종해도 우리는 죄와 무관한 성취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놀라운 일을 해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사용하시는 증거와 열매가 있어도 자만하고 들뜰 수 없습니다. 은혜로 무엇인가를 얻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도 없고, 성취로 자만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 생명을 얻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자녀가 되는 일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는 과정도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사라지고 그리스도만이 드러나시는 것을 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