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왕의 고난에 동참하는 이들 (사무엘하 16장)

따뜻한 진리 2020. 12. 27. 18:34

사무엘하 16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 피신했습니다. 그 길을 떠날 때 다윗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신하들이 함께 했습니다. 15장 19절을 보면 잇대라는 사령관이 자신의 부하들을 데리고 다윗에게 옵니다. 다윗은 그냥 새로운 왕압살롬에게 충성하라고 했지만 잇대는 여호와 하나님과 다윗 앞에 맹세 하며 부하들과 가족들을 데리고 다윗을 따릅니다.

 

    또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와서 다윗과 동행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들에게 궤가 있었던 성으로 가져다 놓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고,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옳다고 여기시는 대로 행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다윗의 친구인 후새라는 사람이 다윗을 맞으러 왔습니다. 그는 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덮어 쓰고 나와서 다윗이 당한 일에 대한 슬픔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윗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거절합니다. 자신을 따라오는 것이 부담되니 그냥 예루살렘에 남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후새가 압살롬에게 가서 스파이 역할을 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자문관이었다가 배신하고 압살롬에게로 전향한 아히도벨이라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의 모략을 방해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거기서 이동해 감람산 마루턱을 지났을 때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빵 200개, 건포도 100송이, 싱싱한 과일 100개,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들고 다윗을 맞이했습니다. 시바는 죽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모시는 종입니다. 다윗은 마침 필요했던 선물을 가져온 시바에게 주인 므비보셋의 안부를 묻습니다. 그러자 시바는 므비보셋이 이 혼란을 틈타 자기 할아버지 사울의 왕권이 재건되기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바는 마치 다윗을 위한 대단한 비밀 정보를 준 것처럼, ‘나만큼 당신을 위하는 자도 없을 것이요.’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19장 24절에 가보면 므비보셋은 다윗이 피신한 소식을 들을 때부터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슬퍼했고, 시바가 므비보셋을 속였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다윗 일행이 바후림에 도착했을 때 이번에는 시므이라는 사울의 친척이 나와서 다윗의 신하들에게 돌을 던지고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사령관 아비새가 시므이를 죽이겠다고 다윗에게 말하자 다윗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일이니 그가 저주하는 것 아니겠냐고 하면서 내버려둡니다.

 

    이렇게 압살롬으로부터 피신하는 다윗에게 이 사람 저 사람들이 여럿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다윗과 함께 고생할 것을 각오하면서 함께하고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교훈을 찾을 때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자는 것으로 마무리하기 쉽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우리도 그와 유사한 다짐과 결단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본문을 대하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로 성급하게 그냥 뛰어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말씀 안에서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찾아보라고 흔적, 단서들을 남겨 놓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다윗이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로서 감람산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15장 30절에 ‘감람산’이 나오고, 32절과 16장 1절에 ‘마루턱’이라는 장소명이 나오는데 이는 감람산 꼭대기를 말합니다. 감람산은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성경에서 감람산을 언급하는 곳은 오늘 본문과 스가랴서에서 한 번, 그리고 복음서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데려오라고 제자들을 보내신 곳(감람산 벳바게 마21:1), 백성들이 호산나라고 부르면서 예수님을 환영한 곳(감람산에서 내려가던 길 눅19:37), 습관에 따라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다가 잡히신 곳(눅22:39), 그곳이 바로 감람산입니다.

 

    본문의 의도를 따라 먼저 생각해 볼 것은 다윗의 도피에 함께 한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다윗의 길에 동참했겠느냐 입니다. 첫째, 그들은 다윗이 워낙 황당한 일을 당했으니 위로하고 싶고, 또 그 자신들이 그동안 다윗에게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함께 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순수하게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당한 일은 그 자신의 사악한 범죄 때문에 생긴 일이므로 사람들이 위로하고 협조할만한 명분이 부족했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아는 사람이 아주 잔악한 범죄를 저질러서 대가를 치르는 중인데, 가서 위로하고 동조할 수 있겠습니까? 가족이나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그러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윗의 피신에 동참한 이유로써 두 번째 가능성은, 다윗에게 여전히 유효한 권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역이 발생했지만 다윗이 그것을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후새는 그 왕권을 복구하는 일을 실행하려고 압살롬에게 위장 전향을 했습니다. 시바의 행동은 나중에 다윗이 왕권을 회복할 때를 생각해 다윗에게 점수를 따려 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윗에게 나온 사람들이 그 다윗 자체를 위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위해 다윗을 보호하려 했을 수도 있었고, 압살롬의 반란이 실패하고 다윗 왕국이 회복될 때를 예상하면서 자기 이익을 위해 다윗을 편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등장한 시므이의 저주는 그저 정신 나간 사람의 도발이 아니라 그런 다윗의 죄와 추종자들의 간사한 면을 비판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찔렸던 다윗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니 그를 내버려두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또 그에 앞서 다윗은 자신의 길에 동참하겠다는 사람들을 일부 돌려보냈던 것입니다. 다윗은 아직 양심이 살아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징계하시는 것에 사람들이 동행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분적으로 예표하기에 다윗의 삶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여호수아를 통해 실행하게 하신 약속된 땅 가나안 정복전쟁을 완수하는 것이 다윗의 사명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다윗의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과 악한 권세들을 무너뜨리시고, 하나님 나라의 터전을 회복하시는 것을 이 땅에서 가시적으로, 시청각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거기까지가 다윗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그 다음과정인 성전 건축은 맡겨지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예고한 인물들은 외적으로, 겉으로는 앞으로 오실 예수님과 예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를 지시하는 표지판 역할, 그것을 기대하고 전망하게 하는 시제품이나 샘플, 맛보기 역할을 하지만 자신들은 죄성을 드러냅니다. 그런 한계를 통해 정작 변해야 하는 자신, 하나님 나라에 속하기 위한 자신의 죄문제는 어떻게 해결되는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구약은 그 답으로 우리의 죄를 위해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다는 것과 성령의 오심으로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약속합니다. 다윗은 그런 계시의 과정에서 쓰임 받았지만 자신의 죄로 인해 비참한 피난 생활과 저주를 겪어야 했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자기 죄 때문에 겪는 피난 생활에도 지지자들이 따랐지만, 다윗이 예표하고 있는 예수님 자신은 어떤 죄도 없으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가장 숭고한 명분을 가지고 계신데도, 그분의 고난에 어떤 사람도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이 언급하는 그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고, 제자들과 함께 계셨지만 사실은 외로우셨습니다. 아무도 예수님과 예수님의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곁에 있어도 진정 함께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감람산을 지나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홀로 우셨고, 제자들과 함께 계셨지만 홀로 기도하셨고, 또 홀로 잡혀가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다 도망갔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지은 죄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고 도망치는데도 수많은 추종자가 있었던 것과 대조가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누구보다 외로움을 경험하시면서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비참한 순간에다 도망가고 예수님 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은 실패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혼자가 아니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처럼,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일에 성부와 성령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구원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다윗의 왕국은 윤리적인 토대가 무너졌고, 그로인한 재앙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든 왕과 그 나라를 세우려고 협조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왕국은 애초에 죄인들의 협조와 노력과 동참으로 회복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예수님의 외로움과 사람들에게 버림받음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홀로 싸우셔야 할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듭난 백성인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성도로서 인내하면서 삶을 살고, 복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 일에 우리를 참여시키시는 이유는 우리의 능력이 탁월해서, 또 예수님께 우리가 꼭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에 거듭난 자들을 은혜로 동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역에 참여하게 된 우리들은 무능한 죄인이고, 그저 은혜만 필요한 자임을 인정하는 자들인데 하나님의 일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게 되고,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어도 자신의 죄 때문에 함께하는 자들이 수모와 환난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모두에게 버림 받으셨으나 자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을 거두어주시고 영광을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왕권보다 탁월한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윗의 왕국은 한 사람의 죄로 흔들리는 나라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의로우심으로 모든 백성까지 흠 없게, 의롭게 되는 나라입니다. 다윗의 왕국은 사람들이 보호하고 복원해야 하는 위태로운 나라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나라입니다. 다윗의 왕국은 그 지지자들이 다윗 왕이 주는 땅의 권력과 영화를 기대하게 하는 나라였지만 하나님 나라는 백성에게 놀라운 생명과 은혜와 영광을 영원토록 주는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