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구원하시는 여호와를 기뻐함 (사무엘하 22장)

따뜻한 진리 2021. 1. 17. 21:31

사무엘하 22:1-23:7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본문은 시편 18편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주제는 1절에서 밝히는 대로 다윗이 적들에 둘러싸인 위험한 상황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보호자 되어 주신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본문 일부를 단락별로 확인하면서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2절에서 4절은 여호와 하나님을 반석, 요새, 구원자, 방패, 구원의 뿔, 높은 망대, 피난처, 구원자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빗대어 표현한 이 사물들 중에 어떤 것들은 실제로 다윗이 사울의 위협에서 숨거나 피할 때에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들이 자신을 구원해 준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실제적인 구원자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위기 속에서 거기 계신 하나님, 피할 길을 주신 하나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꼈습니다.

 

    5절에서 7절은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그런 고백이 여유로운 가운데 나온 것이 아니라 정말 죽을 위기를 매순간 느끼는 가운데 고백된 것임을 말합니다. 6절에서 ‘스올’이라는 말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음부’라고 해석되기도 했는데, 죽음을 뜻합니다. 즉 사망의 물결, 사망의 줄, 사망의 올무라는 표현을 통해 다윗은 정말 불안하고, 위태로운 순간의 연속을 경험하는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8절에서 16절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개입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지진, 불, 연기, 하늘을 가르고 오심, 천둥 번개와 우박 등은 매우 강력한 능력과 위엄으로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만나셔서 십계명을 주실 때의 이미지를 반영합니다. 그런 주님의 모습은 자기 백성에게는 용기를 주지만 악인들에게는 두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17절에서 20절은 나를 붙드심, 나를 건져내셨음,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구원하셨도다라는 말로 하나님이 다윗 자신을 보호하신 행위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나’라는 단어가 많이 반복됩니다. 앞의 단락에서 묘사한 크고 강력하고 두려운 하나님의 임재가 적들을 두렵게 하고 혼란케 하지만 자신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베푸시는 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위가 자기에게 분명하게 임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21절에서 30절은 하나님께서 다윗 자신을 그렇게 구원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21절에서 ‘내 공의를 따라 내 손의 깨끗함’, 22절에서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23절에서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 하였음”, 24절에서 “그의 앞에 완전하여 죄악을 피하였음”, 25절에서 “내 의대로 내 깨끗한 대로”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다윗인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다윗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었지만 죄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죄를 지었을 때 마치 도미노가 넘어지듯 십계명을 모두 어겼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백은 다윗의 수준을 넘어선 것임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37절부터 50절에서 다윗은 자기가 이방족속들을 상대로 전쟁해서 승리를 얻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속에서 더 큰 영적 승리를 얻으실 것을 바라봅니다. 다윗은 예수님이 얻으신 승리로 구원의 은혜가 온 세상과 영원한 후대에 베풀어질 것을 전망합니다.

 

    다음 23장 1절에 따르면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고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은 유언이나 다윗의 마지막 고백이라기보다 다윗의 고백들 중 결정적이고 가장 궁극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서에서 다윗의 삶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다윗의 결론적인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다윗의 경험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것입니다. 3절과 4절을 보면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과 같으니라”라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한 감당할 수 없는 칭찬인 동시에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공의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이고, 빛처럼 강력한 생명을 전달하는 존재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가 마무리되는 지점에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첫 번째는 ‘여호와께서 하셨다’입니다. 목동에 불과했던 사람을 왕으로 세운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감히 상대할 수 없는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던 것,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 반역과 음모에서 다윗을 인도하시고 지키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살아계십니다.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신의 거룩한 성품과 약속을 근거로 우리에 대한 책임을 다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눈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일이 주관자이신 능력의 하나님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두 번째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진짜 왕노릇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처럼 자기 왕권을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는 분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를 왕으로 세우시고, 그 왕권을 유지시키시는 일에 그 누구도 방해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을 일깨우고 심판하기 위해 천지를 뒤 흔드실 수 있는 분입니다. 애굽왕 바로와 모세가 경험한 그 하나님을 다윗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16절에서 다윗은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기초가 나타났도다”라고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을 언급한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주권, 그분의 왕이신 것에 도전할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로 본문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왜 다윗 편이셨는지 입니다. 21절부터 28절까지에서 다윗이 자랑한 것 같은 내용들은 그가 무엇인가를 거창하게 이루고 하나님을 감동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죄를 멀리한 것입니다. 21절에서 28절에 나열된 그의 옳음과 깨끗함과 주의 법도를 지킨 것과 주의 앞에서 완전하려 했던 것과 자비를 베푼 것들은 다윗이 자기 살 길을 직접 마련하려고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부정하는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다는 뜻입니다. 사울처럼 자기 왕권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자의 생명을 자기 손으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맡겨진 직분에 능동적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것들에 개입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권에 맡기는 태도를 보여줬습니다.

 

    우리는 현재 허락된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죄를 멀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사울처럼 현재의 고통과 곤란함 속에서 내가 원하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신속하게 베풀어지지 않으면 실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이 나의 현실에 도움이 안 된다고 실망합니다. 우리는 구원이 무엇인지 잘 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릅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 다윗의 현실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완성된 상태로 경험할 수 없습니다. 고난 속에서 간헐적으로 경험합니다. 고난은 계속되는 데, 구원은 접점처럼 순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순간순간의 구원 경험을 통해 영원한 구원을 바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이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하고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으나 인생을 통해 진정한 구원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하는지, 왜 구원받아야 하는지, 누가 구원할 수 있는지를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은 그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 자체를 본질적으로 신뢰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동안 겪게 하시는 모든 것으로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이 해결되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만드는 것이 구원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 자신,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전부임을 아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것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 위해 죄를 멀리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은 다윗이 자신의 생애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기대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다윗은 율법, 선지자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예고하신다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께서 아담이 타락한 후 여자의 후손을 통해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 아브라함을 통해 시작하신 그 믿음의 줄기가 자신을 통해 지속되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게 다윗은 모세오경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23장 2절이 말하는대로 하나님의 영이 도우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왕으로 오실 것을 본 것입니다. 예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 삶의 일부가 예수 그리스도가 겪으실 일을 예고하는 예표적, 예행적 삶이라는 것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서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다윗의 영적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로 이뤄질 것을 분명하게 예고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다윗이 예언자,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외부의 적 때문에 자신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내부의 적인 자기 죄를 통해서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저 현실에 도움이 되시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사람의 존재 목적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와 구원주 되신 분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목적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돈, 건강 등 현실의 문제 몇 가지를 하나님이 해결해주셔야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나라가 완성되어야, 하나님의 왕권과 다스림이 완전히 회복되어야 피조물인 인간 자신에게도 복이 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일을 성취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구원입니다. 다윗이 그것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고 찬양한 것처럼 우리도 인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모하고 찬양하는 자들이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