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4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지난시간 23장은 다윗의 부하들을 소개했는데, 오늘 본문은 다윗이 백성들의 수를 확인하는 인구조사를 한 일을 말합니다. 다윗이 요압에게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수를 조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명령에 반대 의사를 내비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백성의 수를 지금보다 백배나 더 많게 하시고 또 왕이 그 날까지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왕은 어째서 이런 일을 하려고 하십니까?'” 요압이 이런 말을 한 것이 어색하지 않습니까? 요압은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 중심으로 판단을 하던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자기 입장에서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하며 다윗마저도 난처하게 했던 자입니다. 그래서 요압의 그런 말은 정말 하나님의 주권을 중요하게 생각해서라기보다 민심이 동요될 것에 대한 우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라가 백성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노동력, 군사력을 확보하거나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한 기초조사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압의 충고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여기서도 요압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움직여가는 방향과는 맞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요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인구조사를 실행했습니다. 요압과 사령관들이 약 10개월 동안 조사를 했는데,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자가 팔십만 명이고,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라고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받고 다윗은 뒤늦게 자책했습니다. 10절을 보면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런 뒤늦은 후회는 바로 앞 장에서 있었던 일과 유사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목마름 때문에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적진을 지나 베들레헴에서 물을 떠오게 했습니다. 부하들이 물을 떠다 바쳤을 때에 다윗은 잘못한 줄 알고 반성했습니다. 사무엘서는 마지막에 다윗을 뒤늦은 후회를 하는 자로 반복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구조사를 후회하고 있는 다윗에게 갓 선지자가 와서 세 가지 심판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칠 년 기근, 자신이 원수에 석 달 동안 쫒기는 것, 칠 일 동안의 전염병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잘못에 대한 징계를 하실 것이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면 되는데 왜 선택하게 하신 것입니까? 다윗은 세 가지 심판들을 생각하면서 모두 다 무섭고 고통스러운 것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런 징벌을 왜 하시려하는가에 대해 생각했을 것입니다. ‘인구조사가 그렇게 큰 잘못인가’하고 하나님의 징벌예고에 대해 불만을 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한 일이 죄라는 것을 그저 인정합니다. 다윗은 그 중 어떤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14절에서 ‘사람의 손이 아닌 여호와의 손에 빠지기를 원한다’고 하나님의 다루심에 맡기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비슷하게 17절에서도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라고 다윗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살 길, 편한 길을 모색해봤자 헛수고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손길이 시간 속에서는 비참한 고통으로 경험되지만 그것이 죄인을 다루시는 은혜라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처분을 맡겼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죄라 하시고, 그 죄를 깨닫게 하시는 고통스런 징계를 다윗은 받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이 죄를 다뤄주시는 것이 살 길임을 다윗은 알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징계를 받아야 할 “나와 내 집”이라는 다윗의 고백은 자신과 이스라엘을 의미하지만 예수님과 이스라엘이 징계를 받는 것을 예표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자기 백성의 죄 때문에 징계를 받으시고 이스라엘도 주후 70년 후 로마에 의해 폐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재앙인 전염병을 사흘 동안 이스라엘에 내리셨고, 칠만 명이나 되는 백성이 죽었습니다. 선택지 중 첫 번째인 기근은 21장에서 기브온 사람들이 사울에게 희생당한 일 때문에 이미 있었던 일이고, 두 번째 원수에게 쫓기는 일은 다윗의 인생에서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 번째 재앙인 큰 전염병은 다윗시대에는 처음이었던 일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일로 다윗과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재앙이 끝나고 갓 선지자는 다윗에게 제단을 쌓으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여부스 족속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려 하자 아라우나는 황송해 하면서 땅과 제사에 필요한 것들을 무상으로 제공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값을 치르지 아니한 것으로는 주 내 하나님께 태우는 헌물을 드리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하면서 아라우나의 제안을 거절하고 대가를 지불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을 때 재앙이 그쳤습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로 사무엘하가 끝났는데, 왜 하나님께서 다윗과 이스라엘이 재앙을 당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게 하셨을까요?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다윗을 격동시키사”라는 말이 나옵니다. 같은 내용이 역대하 21장 1절에는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본문의 재앙은 단순히 다윗 개인의 죄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려고 다윗의 죄성을 허용하셔서 인구조사를 하도록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사사기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간 왕을 요구하는 죄를 범했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그 일에 응답하신 것이 사무엘서의 시작이 아닙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를 범하며 왕을 요구했지만 하나님은 백성들이 깨닫게 하시려고, 진정한 왕이 누군지를 경험케 하시려고 사울에 이어 다윗이라는 은혜로운 왕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위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역사를 우리가 그동안 살핀 것입니다. 그렇게 백성들이 바라던 대로 강력한 왕권국가가 세워졌으니 그러면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게 되었을까요? 그 모든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경배하고 신뢰하는 자들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자기 왕 자기 나라를 신뢰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윗이 다른 나라들 왕처럼 이스라엘의 장래를 준비하려는 생각에 끌려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앞날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으로 확인된 백성들의 그 숫자가 재앙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경험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손과 나라에 대해 약속하신 내용이 가시적, 육신적으로는 다윗 시대를 통해 성취되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진정한 나라가 아닌 불완전한 것이었고, 진짜 왕과 나라를 예고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왕이 되시고, 진정한 백성을 만들어내시고, 진정한 나라를 이루신다는 것을 예고하는 일에 다윗왕국이 사용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과정에서 쓰임 받으면서 위대한 나라가 되는 복을 얻었지만 다윗 왕이나 백성들이나 여전한 죄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윗을 믿고 자신들의 세력을 믿으면서 약속된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무관심한 것을 내버려두시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본질적 문제인 죄에 대해 하나님은 여전히 진노하고 계시고, 이스라엘은 그 문제를 해결하실 하나님의 아들을, 진정한 왕의 오심과 희생을 고대해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재앙은 제사를 드린 일로 마무린 것입니다. 사무엘서는 희생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게 만들면서 끝나는 것입니다.
다윗의 나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으로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실 수 있고, 해주셔야 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땅에서 안전을 추구하는 것, 힘을 갖는 것, 좋은 복지를 줄 수 있는 부강한 경제력을 이루는 것, 나라를 융성케 하는 것보다 백성의 영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 죄를 다루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죄인인 백성들이 자신을 살려내신, 구해내신 왕을 알아보고 섬기는 나라가 되는 것을 소망하게 만듭니다. 왕 다윗도 비록 죄인으로서 불완전했지만 진정한 왕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어렴풋이 보여주었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욱 갈망하게 합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고난당하는 것은 백성을 위해 고난당하실 예수님을 예표한 것입니다. 자신의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할 진정한 왕을 가리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교훈하신 일을 지금도 교훈하십니다. 세상 나라들과 민족들이 자신들의 자원을 믿고, 국력을 믿고, 과학을 믿고, 의술을 믿고, 무기를 믿는 현실 속에서 그런 것들이 결코 견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만드십니다. 지금 겪는 코로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무너지기 쉬운 모래 위의 집들입니다. 뭔가 이룬 것 같을 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타락한 인간 현실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다루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 이외의 것을 의지하지 않고, 진짜 의지해야 할 하나님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인정하게 된다면 그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우리는 참된 왕을 기다려야 하고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십니다. 영리 목적으로 설교를 스크랩, 캡처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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