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탁월한 왕에게 헌신하는 자들 (사무엘하 23장)

따뜻한 진리 2021. 1. 17. 21:33

사무엘하 23:8-17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본문 8절부터 마지막 39절까지는 다윗의 곁에 있었던 부하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36명의 용사가 소개되는데 용사 세 사람과 두 사람을 나눠서 먼저 소개하고 나머지 31명을 뒤에 소개합니다. 그래서 8절에는 첫 번째 세 사람에 속한 용사 요셉밧세벳이 처음 소개됩니다. 그는 단 번에 팔백 명의 적을 무찌를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9절에 나오는 엘르아살은 블레셋 군대와 싸울 때 칼이 손에 붙은 것처럼 마비 상태가 되기까지 싸웠던 사람입니다. 11절에 나오는 삼마는 블레셋을 대담하게 상대했던 사람입니다.

 

    13절에는 다윗과 세 용사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가 소개됩니다. 이 사건은 사울이 아직 살아있고, 블레셋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다윗의 군대는 아둘람 굴 쪽에 있었는데 다윗이 예루살렘의 우물물을 마시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세 용사가 목숨을 걸고 적진에 잠입해서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가져 온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괜한 요구에 부하들이 큰 위험을 무릅쓴 것을 알고 반성을 했는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여호와께 부어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지는 18절부터는 다시 두 번째 세 용사를 소개합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는 창을 들어 삼백 명을 쓰러뜨린 사람입니다. 이런 강력한 사람들이 다윗의 곁에 있었기에 이스라엘이 강국으로 세워질 수 있었는데, 12절에서는 그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신 큰 구원의 일이라고 분명하게 확인시켜 줍니다. 20절을 보면 브나야라는 용사가 사자와 싸워서 이겼고, 애굽인들과 싸워서 이겼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세 용사를 소개하는 단락을 잘 살펴보면 세 용사 중 나머지 한 명을 소개하지 않고 다음 31명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냥 넘어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 분명 37명이라고 말하는데 본문에는 36명만 소개됩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우리에게 그 한 사람이 고의적으로 생략된 것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는 사무엘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쉽게 떠오를 사람, 다윗의 주변에서 자주 등장하면서 나름 역할을 했지만 다윗이 힘들어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바로 요압입니다. 요압은 능력 있는 장수이고, 지휘관이었지만 다윗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요압은 용맹스럽기는 했지만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고 자기감정대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다윗을 도우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명단은 단지 능력 있는 장수들의 명단이 아니라 다윗에게 끝까지 충성했던 자들의 명단이고, 요압이 거기서 제외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여기서 이 많은 사람들을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여호와 하나님이 다윗을 인정하신 것이 사람들을 통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5절의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에서 설명이 됩니다. “구비하고”로 해석된 단어는 원래 줄지어 세우거나 쌓아 놓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성취하시기 위해 무엇인가를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8절부터 나오는 다윗의 용사들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시적으로 융성하게 되는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충성된 부하들을 부족함 없이 잔뜩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앞 22장에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보호자이시고, 인도자이신 것을 시로 고백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평안과 승리와 안전은 다윗의 마음에만 있는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전쟁의 승리를 통해 있게 되는 실제 평안이었습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주변에 유능하고 충성된 사람들을 붙여주셔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부하들의 명단이 기록된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에 속해 있는 것인데, 다윗의 부하들이 그만큼 다윗에게 충성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인정하고, 신뢰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편이 되셨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통해 드러나시는 하나님 때문에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렇게 다윗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랑받는 왕이었습니다. 그의 일생이 적들에 둘러싸인 삶이었지만 하나님이 인정하신 사람이었고, 그 증인이 될 만한 충성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다윗이 완벽한 사람이라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그토록 충성한 부하들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목마름 때문에 부하들이 위험에 빠지도록 했고,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충성된 부하를 죽였습니다. 그래서 본문 마지막절인 39절을 보면 그 일로 죽임당한 우리아가 언급됩니다. 우리아가 다윗의 생애에 마지막에 등장한 부하도 아닌데, 그의 가장 부끄러운 죄를 상징하는 그 이름을 마지막에 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부하들의 명단은 다윗을 일방적으로 치켜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저지른 실수, 죄를 생각하게도 만듭니다. 다윗은 죄인이었고 부족했지만 뛰어난 부하들을 붙여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그에게 충성하고 때로는 그의 죄 때문에 희생당한 부하들이 있었기에 이스라엘의 왕으로 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피조물에게 반역 당하시고, 또 인간으로 오셔서 적대감 속에 살다 죽으셨지만 그에게 충성한 자들도 있습니다. 그의 제자들과 그를 증거하다가 그를 위하여 죽은 사람들이 역사 속에 수없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국을 세우시는 일을 위해 그의 부하들을 통해 은혜를 주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구원과 통치를 드러내는 일에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종들로 삼으셔서 조력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용기와 충성심을 부으셔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하게 하십니다. 우리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감당하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이 아니었다면 그저 힘세고 용감한 장수와 군사들에 불과했을 것인데, 다윗이라는 위대한 왕 때문에 그들이 이스라엘 왕국의 공헌자들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의 헌신자요, 충성자요, 희생자, 순교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윗이라는 위대한 인물과 함께 하는 일에 목숨을 기꺼이 바쳤던 것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자들은 그보다 더 숭고하고 자발적인 헌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헌신이 가능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죄인이었지만 우리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적을 죽임으로써 승리를 얻어야 했지만 우리 주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승리를 얻으셨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자신들의 희생으로 다윗에게 승리를 주어야 했지만 우리 주님은 자신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한 욕망 때문에 자기 부하들을 고생시켰고, 죄를 숨기고자 하는 사악함 때문에 부하를 죽였지만 우리 주님은 자기 사람들을 헛된 일로 고생시키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을 지키고 보호해야 했고, 다윗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위해 수고해야 했지만 우리가 우리 주님께 헌신하는 것은 그저 따르는 붙어 있는 것이고, 따르는 것이고,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며, 우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시는 왕이십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얻은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고, 영원한 해방이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무엘서 마지막 부분에서 다윗의 충성된 부하들을 나열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삼위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시지만 그 다음으로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황금길이 있느냐, 대저택이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께 충성한 백성들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 성전도시가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들로 이뤄지는 것을 사도요한이 본 것과 연결됩니다. 다윗에게 임한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충성한 자들이 이스라엘에서 중요하게 여겨진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된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충성한 자들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나라를 이룰 것입니다. 다윗보다 나은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기에, 우리의 생명을 위해 먼저 충성하셨기에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충성하는 백성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