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언약으로 보는 성경(8)- 노아언약

따뜻한 진리 2021. 3. 14. 22:02

 

 

창세기 8:1-9:17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홍수심판이 이 세상에 일어날 진짜 종말을 예고했다면 방주는 구원받은 자들이 속하게 될 하나님 나라를 예고했습니다. 또 하나님께 순종한 노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예고하는 모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옛 세계를 홍수로 심판하신 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홍수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되는 장면에서 일어난 일들은 마치 세상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일어난 일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8장 1절에서 바람이 불어 물을 물러가게 한 것은 창조 때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신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또 2절에서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혔다는 것은 창조 둘째 날에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신 것을, 5절에서 물이 빠지면서 산봉우리들이 드러난 것은 창조 셋째 날 천하의 물이 모이면서 땅이 드러난 것을, 방주로부터 동물들과 노아의 가족들이 나온 것은 창조의 다섯, 여섯 째날 동물들과 사람이 창조된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뿐 아니라 9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고 아담에게 하셨던 말씀과 거의 동일한 명령을 노아의 가족에게도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신일 뿐 아니라 사람이 한 일도 유사한 패턴을 보여줍니다. 노아가 포도 농사를 지어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은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은 것과 유사하고,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아들 함이 보고 동생들에게 그 수치를 알린 것은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은 상태를 수치로 알게 한 뱀의 행동과 유사합니다. 셈과 야벳이 노아를 덮어준 옷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덮어주신 가죽옷을 생각나게 합니다. 홍수 이후의 세계는 새로운 시작이었지만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에덴으로 다시 돌아간 것도 아니고,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서 경험했던 하나님 나라가 방주 밖까지 확장되는 완성이 이뤄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홍수 이전처럼 또 다시 땅이 죄인들로 넘칠 수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시작된 세상은 또 심판 받을 수 있는 세상이었고, 진정한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기다려야 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9장 9-11절에 보면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온 세상의 생명들에게 일반은혜를 다시 주신 것입니다. 일반은혜는 하나님께서 진노를 누그러뜨리시고 참으시는 것인 동시에 인간들이 악함 때문에 자멸하지 않도록 죄를 통제하시는 것입니다. 8장 21절에서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라고 말씀하신대로 하나님께서 사람이 항상 악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사람들의 행위가 의로운가 악한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보장하시려고 일반은혜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의 증거로 주신 무지개는 일반은혜언약의 특성을 잘 드러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실 때 언약의 증거물, 증표를 주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 증거들은 언약의 상대인 사람이나 공동체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잘 기억하고, 세상과 구별되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할례는 사람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손으로 구원의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믿는 약속의 증표로써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례와 성찬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는 교회 공동체에 새언약의 증표로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할례나 세례와 성찬은 세상과 구별된 구속공동체에만 주신 증표인데, 그와 반대로 모두가 볼 수 있는 증표인 무지개는 세상 모든 생명들이 볼 수 있는 증표였기 때문에 모든 생명, 인류가 누리는 일반은혜언약의 성격을 잘 말해줍니다.

 

    또한 무지개는 더 이상 세상을 물로 완전히 심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을 영원히 심판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홍수와 같은 물로 세상을 끝내지는 않으실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후서 3:10절이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말하듯 노아 때의 심판이 물로 있었고 땅을 사라지게 했다면, 최후의 심판은 불로 있게 되고 하늘까지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타락 직후 즉시 영원한 심판에 처하게 하지 않으시고 일반저주와 일반은혜를 베푸셨습니다.(구원은혜도 베푸심)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 사역으로 구원의 근거를 마련하시고 다시 오셔서 하나님나라를 완성하기 까지 세상을 유지 보존하시기 위함입니다. 또 택하신 자들이 시간 속에서 모두 태어나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을 알고 예수를 믿어 구원 얻기 까지 시간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이 구원 역사의 무대가 되도록 오래 참으시고, 심판을 연기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반은혜언약을 홍수 이후에 다시 한 번 주신 것입니다.

 

    이 일반은혜는 세상의 죄와 악을 일정 수준으로 막고 세상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보존하지만 죄를 용서하거나 구원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반은혜에서 누군가가 특별한 기회와 풍요를 누린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의 구원의 확신을 주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성도는 일반은혜를 통해서도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자신이 하나님께 특별한 여김을 받고 있다고 착각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오직 구원의 특별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만족하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은혜언약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삶의 자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일반은혜언약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기한이 있는 심판의 보류, 연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종말을 당연히 여기고 기다려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크고 작은 위기 속에서 세상이 망할까봐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지만 우리는 이 일반은혜가 언젠가는 그칠 것과 그 이후의 심판이 당연히 일어날 것을 알기에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인생과 주어진 역사 속에 성실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불안해도 아직 주님이 오실 때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는 위기 속에서도 인류가 계속 살아갈 길을 내심으로서 자신이 세상을 붙들고 계심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여러 환경변화나 질병으로 세상이 망할 것처럼 사람들이 두려움에 호들갑을 떨어도 인간이 전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유지하실 것이고, 반대로 아무리 인간들이 자신들의 지혜와 협력으로 전 지구적 문제들을 극복했다고 자랑해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단번에 세상을 끝내실 것입니다. 인간들이 더 악하다고 해서 노아언약, 이 일반은혜언약이 일찍 종료되는 것도 아니고, 인간들이 선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발전을 이뤘다 해서 기간이 연장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에 있어서만 아니라 일반은혜에 있어서도 자신이 주관자이심을 세상에 분명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면 일반은혜언약이 시한부적인 것이고, 결국 세상이 다 사라지고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이라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됩니까? 아닙니다. 성도인 우리는 구원은혜언약을 믿음으로 누릴 뿐 아니라 일반은혜언약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반은혜언약으로 세상을 유지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끝내실 때 까지 땀 흘리고 수고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여러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끝내실 자연이지만 덜 오염시키고, 아름답게 관리해야 합니다. 또 결국 사라질 국가와 제도들이지만 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성실하게 살고, 도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선한 삶으로 우리가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일반은혜를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순종하는 것입니다. 일반은혜로 유지되는 이 세계가 구원의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은혜 아래서 최선을 다한 삶이 전혀 공로가 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남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이 일반은혜 속에서도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일반은혜 사역에 순종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일반은혜 아래의 허무한 세계에 우리가 순종함으로 하나님만이 진정하고 영원한 의미가 되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은혜언약에만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피조세계를 보존하시는 일반은혜언약에도 우리는 삶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의 공로를 남길 수 없는 허무한 삶에 최선을 다해 사는 것으로 내 존재 목적이 나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