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언약으로 보는 성경(11)- 다윗 언약

따뜻한 진리 2021. 4. 4. 21:07

 

 

사무엘하 7:1-16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땅을 전쟁으로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며 여러 가나안 족속들을 살려두었고, 그들은 계속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습니다. 그것이 사사기의 내용입니다. 사사기에서 반복되는 중요구절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자손들이 많아졌고 기름진 땅도 얻었지만 다스릴 왕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을 있게 하시고, 항상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당연히 그들의 왕이 되셔야 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순종하기보다 세상 사람들의 생존 방식을 따랐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들의 최신 기술과 매력적으로 보이는 문화를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기보다 다른 나라들처럼 인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는데 그것이 사무엘서의 시작입니다. 첫 왕으로 세워진 사울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보다 자기 방법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얻으려 했고, 하나님은 그런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달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전쟁을 잘 수행했습니다. 1절이 말하는대로 이스라엘에 평안이 있게 된 것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적들을 모두 물리치고 찾아 온 평안이었습니다. 좋은 왕에 의해 나라가 평안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평화를 얻은 후 하나님께 성전, 즉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의 뜻을 막으시고, 그 아들이 집을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들이 나라를 견고하게 할 것이고 세상 가운데서 위대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아들은 우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이 예고하신대로 성전을 지었고, 이스라엘을 세상 나라들의 부러움을 사는 위대한 나라가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이 언약은 그의 아들 솔로몬을 넘어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고,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예고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언약대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모든 적들을 정복하십니다. 다윗처럼 싸움에서 이기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력, 힘이 아닌 자신의 죽음으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또 예수님이 세우시는 성전은 사람이 지은 성전과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해서 세상 모든 족속들이 속하게 되는 영원한 집이 됩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허락하셔서 지은 성전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파괴됩니다, 또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 온 후 스룹바벨에 의해 세워진 두 번째 성전은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파괴되었고, 유대 헤롯대왕에 의해 세워진 세 번째 성전은 로마 디도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함께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세우신 성전은 무너지지 않는 성전입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라고 말씀하신대로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한 몸으로 진정한 성전을 보여주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성막과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었듯,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증명하시는 임마누엘로서 성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교회를 세우셨는데,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예수님 자신과 연결시키셔서, 살아있는 성전이신 예수님처럼 성도들도 예수님을 닮아 살아있는 성전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성전이신 예수님 앞에 모든 민족이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하신 일들을 잘 이해하려면 다윗 언약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보여준 위대한 왕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잘 이해하고 믿을 수 있도록 예고하는 모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 그 아들이 성전을 세우고 위대한 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언약은 궁극적으로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통해서 이뤄질 일들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적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셨고 성경에 그 기록들을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다윗의 고백들은 다윗의 이해와 경험을 뛰어넘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 22편으로 보면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나와 있는데, 다윗은 예수님의 내면적 고뇌와 고난과 죽음을 예고했습니다. 시편 110편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라는 말로 성부께서 성자 예수님께 세상을 심판할 권한과 왕권을 위임하신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부활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이것을 인용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어떤 인물들과의 언약관계보다 다윗 언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풍성하게 예고하셨습니다. 아담에게는 뱀의 머리를 부술 여자의 후손으로, 아브라함에게는 죽음으로 순종하는 이삭으로, 모세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법 앞에서 행위가 완전한 자로 예수님이 예고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을 통해서는 온 세상을 다스릴 영원한 나라의 왕이자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할 집, 성전이 되실 분으로 예수님이 예고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통해서 처음에는 희미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뚜렷하고, 분명하게 나타내 주셨는데, 그중 다윗언약이 정점인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해하는 일,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묘사하고 설명하기 위해 참고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료는 다윗 언약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베드로는 다윗에 대해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오신 그분이심을 논증하기 위해 다윗언약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또 사도행전 13장을 보면 바울 역시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라는 말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또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라는 시편 16편을 인용하며 부활을 주장하기 위해 다윗의 예언적 고백에 의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편으로는 다윗의 장점을 사용하셔서 좋은 왕 한 사람에 의해 많은 백성과 나라가 평화롭게 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경험하게 하셨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의 죄로 인한 한계를 통해 더 나은 왕, 죄 없는 거룩한 왕을 갈망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언약은 왕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역사상 있었던 많은 왕들의 잘못 때문에 왕정, 왕의 다스림을 나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왕정 대신 백성들의 의견, 우리의 주장을 반영하는 정치, 즉 민주주의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왕이 다스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참으로 선하고 지혜롭고 능력 있고 백성과 나라를 진정 사랑하는 왕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 이상적인 통치방법입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아시고, 진정한 복을 얻게 하실 목자 같은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스려 주셔야 합니다. 예수께서 다스리는 그 나라는 망하지 않고 영원합니다. 우리에게는 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나라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것보다, 어떤 나라에 이민 가기를 원하는 것보다 주님의 나라를 갈망해야 합니다. 주님의 다스림을 애타게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용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