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1-14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 본 언약은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같은 인물들을 통해 언약들을 주셨습니다. 언약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먼저는 에덴의 선악과나 모세를 통해 주신 십계명처럼 하나님이 사람의 순종을 조건으로 어떤 결과를 약속하신 행위언약이 있고, 다음으로 선택한 자들의 구원이든 일반 세상의 보존이든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만 의존하는 은혜언약이 있습니다. 이 언약들에서 당사자는 당연히 하나님과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만 말하지 않고, 삼위 하나님 사이의 언약도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구속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구속언약, 행위언약, 은혜언약이 가장 중요한 세 개의 언약입니다.
구속언약은 선택하신 자들을 구속하시려고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서 맺으신 언약입니다. 성부는 자신이 구원하기로 선택한 자들을 성자에게 주셨고, 성자의 순종에 대한 공로로 나라와 왕권을 약속하셨습니다. 성자는 선택된 자들을 대표하여 성부의 뜻에 순종하신다고 동의하셨고, 성령은 성자가 얻으신 모든 공로들을 택자들에게 적용하시고 그들이 성자와 영원히 하나가 되도록(붙어있고, 닮아가도록)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구속언약은 아담이 죄를 짓기 전,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구원에 대한 계획이 이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선택설, 즉 예정론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 구속언약에 대해서 당연히 반감을 가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이전에 구속언약이 있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성경 속 언약들을 소개하면서 구속언약을 맨 먼저 설명합니다. 구속언약이 순서상 가장 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시간에 함께 나눈 다윗언약에 이어 이 시간에 구속언약을 다룹니다. 이유는 우리가 성경 속 언약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에 이 영원 전에 일어난 구속언약을 접해야 좀 더 접근하기 쉽고, 또 성경도 이 구속언약의 존재를 창세기에서 다루지 않고, 주로 다윗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속언약에 대한 성경의 근거들을 살펴보면 먼저 스가랴 6장 13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세상 가운데 임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을 위해 성부와 성자 사이에 의논, 즉 언약이 있었음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시편 2편 7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시편 2편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대적하는 세상 나라들을 잠잠케 만들 아들을 보내시는 내용인데, 왕의 즉위식에서 왕으로 세워지는 자의 공로를 인정하고, 승인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내 아들”은 앞에서 다룬 다윗언약에서 나온 “그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과 연속선상에서 봐야 하는 내용입니다. 즉 시편 2편은 성부께서 성자를 세상의 왕으로 이미 지명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내용에 근거해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성부의 음성이 하늘에서 들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시편 2편 7절과 다윗언약이 나오는 사무엘하 7장의 내용을 묶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라는 말로 그 아들 예수님이 아버지께 유일하게 인정받는 세상의 주권자이심을 말합니다.
이 스가랴 6장과 시편 2편을 배경으로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구속언약이 언제 결정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말하면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을 자들을 선택하신 구속언약의 시점을 창세 이전에 놓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시간과 역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하나님이 메시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또 디모데후서 1장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선행이 구원의 근거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근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결정은 영원 전에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사역을 통해 시간 속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22장 29절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라는 말씀으로 구원받은 자들로 이뤄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 전의 구속언약 안에서 자신에게 맡겨졌다는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이 구속언약은 추상적인 다른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언약의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한 사람으로 눈에 보이게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셔서 그 구속언약을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속언약은 창조와 종말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 되시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임을 알게 합니다. 시간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의 기초가 구속언약입니다. 또한 이 구속언약은 행위언약이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거저 받는 구원은 은혜언약에서 나오지만 그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성자는 실제로 겪고, 당하시고, 죽는 행함을 성취하셨습니다. 행위언약 아래서 순종하셨습니다. 첫째 아담이 행위언약 아래 있었던 것처럼 두 번째 아담 예수님은 행위언약의 조건에 순종하셔서 그 공로를 근거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러한 구속언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첫째로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 직후 구원은혜언약을 통해 여자의 후손으로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셨는데, 그런 구원 방법은 아담의 타락 후 하나님이 황급하게 생각해내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구속언약이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자들을 구원하실지를 결정하신 때, 그 시점은 사람의 착함이나 선행이 전혀 끼어들 수 없는 때, 타락은 물론이고 창조도 있기 전에 삼위하나님의 구속언약의 순간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우리의 공로가 아닌 오직 삼위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구원의 확실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 가운데 회개하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순종할 뿐입니다.
두 번째로 구속언약 안에서 어떤 자들을 구원할 지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구속언약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구원할 자들을 선택하시는 하나님을 상정하는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사랑 없고 냉정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하나님이 구원할 자들과 버리실 자들을 이미 결정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조건적 선택이 참사랑이라는 것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조건적입니다. 그리고 그 조건은 계속 바뀝니다. 상대방의 매력 정도나 나의 상태에 따라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바뀝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의 사랑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가 태어나기 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하시기로 선택하신 사랑은, 변함이 없고, 영원합니다. 우리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베풀어지는 사랑입니다.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사랑스럽지 않은 대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선택받지 못한 불택자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지만 하나님은 어떤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셔 그 죄인들을 사랑하시기로, 그 사랑을 위해 희생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의 사랑과 달리 자신의 사랑이 거룩한 참 사랑임을 언약을 통해 보여주고 계십니다.
세 번째로 구속언약은 우리가 삼위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적으로 알고 닮게 합니다. 신앙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인간은 자기 취향과 자기 경험에 따라 사랑해야할 대상을 결정합니다. 차별과 무시를 당한 사람을 자주 접한 변호사는 인권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로 인해 또 다른 역차별의 피해가 일어나고, 난민들을 안타깝게 여겨 많이 받아들인 나라는 범죄와 불안이 높아집니다. 동물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은 육식을 하는 사람들을 혐오하기도 합니다. 사랑을 드러낸다고 하는데 한쪽에서는 분노와 폭력이 생겨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그런 모순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삼위 하나님의 구속언약은 참 사랑이 하나님께 있으며, 사랑을 하나님께 배워야 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피조물인 우리가 사랑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서로 간에 동등하셔서 높고 낮은 서열이 없으시지만 서로 순종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성자는 성부의 영광을 위해 택자들을 구하시려고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성령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드러나도록, 그의 백성들이 생겨나도록 섬기십니다. 성부는 그런 성자를 세상의 왕으로 높이십니다. 이렇게 삼위 하나님이 서로를 신뢰하시는 모습, 서로의 영광을 위해 섬기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진정 사랑이심을 확신하게 합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이신 하나님 안에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거룩한 사랑의 하나님을 닮아서 우리의 원본이신, 원형이신 하나님을 드러내고 찬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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