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8:8-10 (렘31:31-34)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아담 이후로 인간들과 세상은 죄로 타락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계속 실행하셨습니다. 사탄의 개입과 사람의 죄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아담에게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고, 노아를 통해 이 세상에 끝이 있지만 그 때까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을 통해서는 약속된 후손이 사람의 혈통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올 것임을 알려주셨고, 모세와 이스라엘을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와 왕을 하나님이 주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들은 다윗시대에 이스라엘이라는 위대한 나라 안에서 눈에 보이는 모형으로 완성되었다가 솔로몬의 시대에 끝이 났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고 왕들과 백성들은 모세 언약을 어기고 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은 약속된 아들, 메시아가 오셔서 새로운 언약으로 갱신하실 때를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백성이 그대로 망하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별과 모래와 같은 참 하나님의 후손과 나라를 실현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는 그 언약을 새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로 맺어지는 언약입니다.
첫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로 세워지는 언약을 새 언약이라는 말하는 이유는 모세 언약이 옛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옛 언약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 언약, 행위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다스린 이스라엘을 예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 사용하시려고 옛 언약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진짜 왕이 오셨기 때문에 이 옛 언약은 끝나고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새 언약이 시작된 것입니다.
두 번째, 새 언약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넘어 열방, 세상 모든 민족을 포함합니다. 옛 언약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이라는 제한된 범위에 주어진 언약이었지만 새 언약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새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과 연속성을 갖습니다. 아브라함은 행위나 공로가 아닌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여종 하갈과 나은 이스마엘은 육신적 혈통이나 사람의 능력을 의미했지 하나님이 주시려는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결코 자녀를 가질 수 없는 상태일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은 이삭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이었고, 그 이삭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어내실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육신적 혈통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 믿음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 백성이 될 것이고, 그들은 오래 전 동일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은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영적 조상이라고,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처럼 믿어 복을 얻는 것을 보여줍니다.(갈 3:29, 히 2:16, 롬 4:11).
세 번째로 새 언약은 완전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보장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의 언약들을 맺으실 때 그 상대는 불완전한 인간들이었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노아는 술 취했고,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 또 이스마엘을 낳았으며, 모세는 반석을 내리치며 백성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고, 다윗은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언약을 받은 후에도 결점을 드러내는 일, 신실하지 못한 모습,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어떤 흠도 없으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흠이 없으실 뿐 아니라 우월한 분이십니다. 이전에 하나님이 언약을 주신 상대가 인간 종들이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예수님은 단지 종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떤 언약의 상대자, 중보자들보다 완전한 분이십니다.
네 번째로 새 언약은 새로운 피조물을 창조합니다. 이전의 언약 중보자들은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이 이끄는 백성들을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할 수 없었습니다. 언약의 중보자였던 그 자신이나 그의 백성들이나 모두 죄로 넘어졌습니다. 특히 모세언약, 율법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6절의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고 영은 살리는 것’이라는 말대로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을 낳을 수 있는 생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은 본문 히브리서 8장이 말하는대로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라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법을 사람의 마음에 새기시고, 그 법에 순종할 수 있는 새 사람, 새 피조물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은 성령을 통해 실현됩니다. 성령께서 죄인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게 하시고, 죄를 깨닫고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다시 태어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죄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실 뿐 아니라 그 언약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태어나도록 성령을 보내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에스겔 3장에서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고 요엘 2장에서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은 성령에 의한 새창조를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성령을 받으라고(요20:22)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세상이 시작될 때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셨던 창조의 영이시자 하나님 나라 백성을 만드는 새 창조의 영이신 것입니다. 성령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실 뿐 아니라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역사하십니다. 창조의 본래 목적인 사람이 하나님 형상으로 살며 하나님의 영광을 발산하는 역할이 이뤄지도록 성령께서 일하십니다. 이렇게 새 언약은 새 창조를 이루시는 성령에 의해 실행되기 때문에 어떤 언약보다 탁월하고 완성을 가져옵니다.
다섯 번째로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세워졌습니다. 출애굽 때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생명과 죽음을 갈라놓은 것처럼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는 근거가 되고, 새 언약의 보증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과의 저녁식사에서 떡과 포도주가 자신의 살과 피를 가리킨다고 말씀하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쏟으셨고, 부활 후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가셔서 성령을 보내셨고, 믿음으로 새 언약 안에 있는 성도들은 마음의 변화를 받아 자신들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게 됩니다. 성도는 자신을 근거로,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근거로, 왕이신 예수님을 위해 살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존재의 만족, 자존감, 자부심,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도덕적 판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잘못 속에서 자신의 양심을 잠재우려고 자기가 저지른 일을 합리화하며 도덕적 핑계를 댑니다. 영화를 보면 흉악범이나 조폭 두목도 꽃을 소중히 가꾸고, 동물을 돌보면서 자기에게 사랑이 있다고 위안 삼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가 옳고,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는 근거를 자기 행위에서 찾고 자신에 대해 안심하려 합니다. 교회를 다녀도 기준들을 잘 지킨다고 생각이 들면 자만하고, 고통을 겪으면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자 회개를 하는데 그 회개 역시 자신의 공로로 여깁니다. 내가 회개했는데, 하나님은 왜 빨리 나의 삶을 개선해 주시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행위의 법 아래서의 삶입니다. 그래서 옛 언약, 모세 언약, 행위의 법은 인간이 자기 행위에 근거해서 만족하려는 성향을 부추기고 폭로하는 법이었고 결국 절망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가 자기 존재의 가치, 만족, 자격을 하나님을 제외한 채 우리 자신에게서 찾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로 인해 태어나고, 예수로 살 가치를 발견하고, 예수로 만족하고, 예수의 공로로 복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새 언약 아래 살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구원하시는 이유입니다. 영원히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찬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삶을 살게 만드는 새 언약인 그리스도의 법 아래 우리를 두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만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는 유일한 근거이기에 우리는 자신에 대한 시선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새 언약 아래 있는 성도는 나의 착함이나 신앙적으로 칭찬받을 만한 행위들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보상해주실 것이라고, 더 사랑하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충분해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어떤 잘못에도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공로를 근거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새 언약 아래 있는 우리도 행위의 법 아래 있는 자들처럼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우리는 나의 죄가 나의 자존심과 나의 도덕적 우위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나의 삶에 오점을 남기기 때문에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나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멀게 한다는 것 때문에 슬퍼해야 합니다. 죄가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풍성히 알지 못하게 하고, 찬양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괴로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있는 고통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도덕적 실수 자체를 징계하시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가 깨끗해져서 우리 자신에 대해 만족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칭찬받게 하려는 것도 아니라 새 언약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풍성히 하시려는 것입니다. 고통과 고난들은 예수님 자신을 최고의 만족과 위로로 삼도록 우리를 끌어당기시는 과정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법 아래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새 언약 안에서 안심하고, 나의 안과 밖에서 그리스도가 더 드러나시도록 순종하는 삶에 집중할 뿐입니다. 성령께서 그것을 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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