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43-4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이 시간은 언약으로 보는 성경 마지막 시간으로 하나님의 언약 속에서 구속을 입은 자들이 세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오래 전 선택하신 자기 백성들이 이전이나 지금이나 영원히 예수님 한 분에게만 소망을 두고 만족하도록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언약들에 따르면 아담의 불순종으로 타락한 이 세상은 일반은혜에 의해 지탱되지만 결국 끝이 납니다. 최후심판 후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주는대로 구속의 은혜 아래에서 구원받은 성도만 하나님 나라에 연속될 뿐 눈에 보이는 세상은 노아 때의 홍수심판보다 더 크고 두려운 심판에 의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교회에 모여서 예배만 드려야 합니까?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믿도록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며 동시에 이 세상 속에서도 열심히 수고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라질 세상이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택자들을 위한 구원은혜 뿐 아니라 모든 생명을 위한 일반은혜를 종말 때까지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과 상관없이 햇빛과 비와 양식과 즐거움을 모든 생명들에게 골고루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닮아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순종해야 하는 한편 마지막 때까지 이 세상이 잘 유지되도록 일반은혜의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더 나아지도록 연구와 발전에 참여하고, 사람들의 죄로 인한 고통과 파괴들을 막기 위해, 고통당하는 자들을 돕기 위해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수고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위해 우리에겐 율법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율법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고 율법이 헛된 것은 아닙니다. 새 언약이신 예수님은 옛 언약인 율법보다 우월하시지만 그러나 율법과 적대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려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새 언약인 그리스도의 법 아래에서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 구원받지만 그것을 받는 이 믿음은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거나, 어떤 선한 행위도 필요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의 삶에는 율법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켜야 할 십계명, 도덕법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가 공로를 얻고 칭찬 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충분히 나타나기에 우리는 어떤 다른 공로, 칭찬 스티커를 더하기 위해, 하나님께 더 잘 보이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잘 지키든 못 지키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신분에는 변화가 없고, 이 법들을 더 잘 지킨다고 더 나은 구원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뭔가 인정받을 수 있고, 내가 한 일의 가치가 계속 남고, 내 이름과 수고가 기억되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의 모든 수고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예수님께 순종한 것으로서만 의미가 남지 이 땅에서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는 남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노력한 우리의 거룩하고 선한 삶이 나의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라도, 또 누군가의 구원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그런 선행들에 힘써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일반적인 협력과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라질 세상이지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공로가 되지 않는 일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유한한 존재인 우리의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시간 속에서 유한합니다. 그 어떤 숭고한 사랑도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에 비하면 사라질 것들에 불과합니다. 물론 우리 존재가 무가치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토록 기억해주시고, 자신의 영원한 기쁨에 동참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의미를 얼마나 멋지게 만들어 나가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어떻게 여겨주시느냐가 우리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라질 세상을 위한 허무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시고, 그것으로 세상 가운데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면 우리는 유한한 것, 사라질 것들도 사랑하고 헌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유한한 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라질 이 세상을 위해 도덕법에 순종하는 선하고 성실한 삶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효과나 결과나 인정받는 것과 상관없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종이자, 자녀들로서 하나님을 닮아,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 거룩함과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의 도덕적이고 선한 실천으로 세상의 죄악이 심각해지는 것을 막고, 심판 때까지 시한부 생을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위로가 되도록 살아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실천이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가 우리의 동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삶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이 동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구원과 상관없는 모든 생명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시기 때문에, 참새 한 마리도 보살피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들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심판받아 사라질 세상이지만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공로를 위해, 인정받기 위해, 자기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었다는 나름의 보람을 느끼려고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갑니다. 옛 언약은 그런 수준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법을 어느 정도 지키면 스스로 만족하고, 자만하게 되고, 지키지 못해도 죄책감에 빠지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이신 그리스도의 법은 우리가 행위로 누군가에게 판단 받는 것에서 자유롭게 해서 오직 예수님 자신을 위해 순종하게 합니다. 성령께서는 부족한, 불완전한 우리의 모든 선행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 되도록, 또 우리가 죄로 넘어져도 예수님을 다시 보도록 하십니다. 새 언약이 마음에 새겨지는 법이라고 말씀하셨듯, 그리스도의 법은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순종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법 아래 있는 자는 율법을 받아들이는 근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공로를 위해, 인정과 의미를 남기기 위해 뛰어난 삶을 살려 하지만 거듭난 자는 오직 그리스도가 높아지시고 영광스러워지시기를 바라면서 성실하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치 선지자들의 외침이 백성들에게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결국 망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말씀을 전했던 것처럼 나에게는 무의미할 수도 있는, 열매가 없을 것 같은 일에도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는 이 세상과 함께 지나가고 사라질지라도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 구원의 무대에서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에서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라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대로 우리도 고백해야 하고, 빌립보서 1장에서 바울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말한대로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영리 목적으로 설교를 스크랩, 캡처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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