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1-2:10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가 식당이나 사업체에 갔을 때 벽에 성경 말씀이 걸려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거기 사용되는 성경 말씀 중 가장 흔한 것은 바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구절일 것입니다. 그것은 욥기 8장 7절의 말씀입니다. 아마도 그 구절을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은 이유는 성공하고, 부자가 될 것을 바라는 것이 가장 클 것입니다. 이는 한국교회가 얼마나 성경에 무지하고 사람의 욕망을 위해 제멋대로 성경을 이용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물론 우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고통보다는 안락함과 풍요가 필요합니다. 또 하나님은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모든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 성경이 말하는 핵심은 이 땅에서의 복을 확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지금 이 세상에서 얼마나 부러운 삶을 사는 가로 하나님이 선하신 분인지 악한 분인지를 판단하려는 태도, 나 중심의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모든 일을 행하신다는 것이 선한 것이며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기는 탁월한 성도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닥칠 수 있음을 말하고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욥기의 저자는 욥이 정말 경건한 사람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1장의 시작부터 욥과 가족에게 하나님이 진노하실 어떤 이유도 없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 있겠어 욥에게 숨어있는 죄가 분명 있었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생각은 앞으로 등장하는 욥의 친구들과 동일한 시각입니다. 욥은 물론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하고,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최소한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해 책임이 없었습니다. 1절이 말하는대로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었습니다. 5절을 보면 그는 자기 가족들의 인원수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는 일상적으로 자신과 가족들의 죄에 대해서 민감했고, 또 혹시라도 그냥 지나친 죄가 있을까봐 그것까지 번제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욥은 그렇게 죄인인 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주의할 수 있는 방법 안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욥은 회개와 믿음이 온전했던 자였습니다. 참된 신자의 표지는 회개와 믿음입니다. 죄를 싫어하시고 심판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돌아보고, 슬퍼하고, 하나님 앞에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성도가 가져야 하는 태도입니다. 5절 마지막에 있는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라는 말대로 욥의 그런 행동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평생의 습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본문은 욥이 거하던 땅에서 하나님이 계신 하늘로 장면이 바뀝니다. 하나님 앞에 사탄이 나타나서 욥에 대한 일종의 고소를 하는 내용입니다. 마치 사탄이 하나님의 신하 중 하나처럼 보이는 이 장면에 우리는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사탄과 대화를 하실 수 있는가 생각하겠지만, 사탄은 천사 중 하나였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결코 동등하지 않고, 결국 영원히 심판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탄에게 무조건 진노하시고, 보이기만 하면 잡아서 벌을 내리시는 대상으로 여기시지 않습니다. 에덴에서 사탄의 도구였던 뱀을 극단적으로 다루시지 않고, 세상 죄인들의 마지막 심판까지는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사탄을 그렇게 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군대처럼 많은 귀신의 무리가 돼지 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허락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사탄에게도 당분간 자유를 주십니다. 그런 사탄의 활동마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합니다. 모든 악인들 역시 하나님께 반감을 갖고 거부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에 기여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1장 9절에서 사탄이 하나님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사탄이 이 질문을 한 의도는 매우 불순한 것이었지만 그 내용만은 참된 신자라면 누구든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고, 믿음으로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그 자체로 만족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높이는 것인지, 하나님께 무엇인가 얻을 것, 이익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요구한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욥의 모든 소유, 재산, 복을 거두어 가시면 욥은 하나님을 저주하고 믿음을 버릴 것이라고, 인간은 결국 고통의 실재 앞에서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욥의 믿음을 조롱한 것이기도 하지만 욥의 믿음을 좋게 여기신 하나님도 조롱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탄의 고소가 사실이 아니라 인간이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음을 드러내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이 욥의 소유들을 치도록 허용하셨습니다.
욥의 종 한 사람이 급하게 와서 종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고, 그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종이 와서 욥의 가축들이 죽임 당한 이야기를 전했고, 또 그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종이 와서 욥의 자녀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힘든 일은 왜 한꺼번에 일어나는가’라는 그 상황이 욥에게 벌어진 것입니다. 욥은 옷을 찢고 머리를 밀며 극도의 고통스런 슬픔에 빠졌지만 모든 것을 주신 분도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높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자기 권한대로 하시는 것을 합당하게 여기고 신뢰하고 찬양했습니다. 사탄이 틀렸음이 드러났습니다.
이어서 장면이 다시 하늘로 바뀝니다. 2장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욥을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라는 말씀으로 욥이 당한 고통이 그의 잘못 때문이 아닌 무고한 고난이었다는 것과 욥이 믿음을 버리지 않았음을 확인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거기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사람에게 자기 목숨, 육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몸을 직접 치면 다른 반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목숨만은 건드리지 못하도록 한계를 정해두시고 사탄이 욥의 몸을 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욥의 온 몸에는 극심하게 가려운 악성 종기가 돋아나서 날카로운 깨진 그릇 조각으로 긁어야만 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욥은 하나님을 비방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은 다른 누구보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성도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우연과 불합리함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에 고난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재수와 운에 맡겨진 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지극히 작은 것도 자기 뜻대로 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성도에게 고난은 하나님께 ‘왜’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혼란을 줍니다. 궁극적으로 고난은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에게만 문제가 됩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일을 일으키셨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는 물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욥기는 우리의 무고한 고난들이 욥이 겪은 고난처럼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 욥기는 우리가 겪는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개인의 개별적인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해석할 수 있도록 돕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 더욱 자기중심적으로 변하지만, 성도에게는 고난이 더욱 하나님 중심의 시각을 형성시키는 과정이 될 수 있음을 욥기가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통해 사탄이 고소하려 했던 바를 반증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가 신앙을 갖는 이유가 우리의 이기심에 근거하지 않고, 진정 하나님을 하나님 자체로 인정하고 사랑하기 때문임을 고백하도록 만드십니다. 고난은 우리의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지만 신뢰하고 사랑하고 찬양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사용하셔서 성도의 진실한 고백을 만들어내시고 그것으로 하나님 자신이 영광을 얻으시고, 성도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신 방법이었고, 성도들에게도 허락하시는 방법입니다. 아무쪼록 욥기를 계속 살피면서 우리 인생에 일어날 고난들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진정한 위로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영리 목적으로 설교를 스크랩, 캡처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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