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욥기강해 (11) 욥기 38장

따뜻한 진리 2021. 7. 11. 22:50

욥기 38:1-3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고난 속에 있던 욥이 뵙기를 원했던 하나님이 드디어 욥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이 가졌던 의문, 즉 자신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와 선한 자들의 불행과 악인들의 형통함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는 무엇인지, 또 욥이 고난을 겪게 된 배후인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욥을 꾸짖으셨고, 한 번 대답해보라고 질문들을 계속 던져주십니다.

 

    먼저 3절을 보면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친구들 앞에서 쏟아내었던 질문에 대답하시지 않고, 반대로 자신이 질문하셨습니다. 1절이 말하듯 하나님이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셨으니 욥은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대답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욥을 당당하게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상대로 여기신 것입니다. 온 천하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지극히 작은 피조물인 인간을 상대해주셨습니다. 물론 욥은 하나님의 질문에 제대로 된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38장에서 욥기 마지막 42장까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읽은 본문 38장 1절부터 38절에서 하나님은 창조된 우주와 지구라는 공간, 특별히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질문을 하십니다.

 

    4절에서 7절을 보면 하나님은 마치 건축가가 건물을 세우듯 자신의 창조를 비유하시면서 자신이 우주를 만드실 때 ‘욥 네가 거기 있었냐’고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떤 단위의 자를 가지고 우주를 설계하고, 별들의 위치와 거리와 질서들을 세우고 움직임들이 시작되게 했는지 너는 아느냐, 너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런 일들을 할 때 그 때 별들은 노래했고, 나와 함께 있던 천상의 존재들은 기뻐서 소리를 지를 만큼 그 일은 완벽하고 기쁜 일이었다.’라며 욥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창조의 일을 한 자가 바로 자신임을 말씀하셨습니다. 8절부터 11절에서는 바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7장에서 욥이 하나님이 자신을 괴롭게 하시는 거라고 원망하면서 ‘하나님 제가 바다입니까 바다괴물입니까?’라고 외쳤던 것처럼, 바다는 고대인들에게 악하고 두려운 장소였습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거대한 파도를 몰고 오는 바다인데 8절을 보면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라는 표현대로 하나님은 바다를 땅 속 모태에서 나오는 어린 아기로 묘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두려운 바다에게 구름으로 옷을 지어 입히고, 흑암을 포대기삼아 감싸고, 울타리를 만들어 선을 넘지 못하도록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현대인인 우리도 지구 온난화 때문에 바다가 넘쳐 땅을 덮을까 두려워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바다가 결코 경계를 넘지 않도록 자신이 다스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과 세상의 부당함이 너무 커서 세상의 모든 선함과 소망을 집어 삼킬 것처럼 생각했지만 하나님이 바다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시는 것처럼 악을 통제하시고, 다스리심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죽음과 공포를 주는 바다가 제 역할이 있고, 세상의 한 공간을 차지하듯 악도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허락받은 자리가 있지만 그것은 결코 하나님을 넘어서지 못하니 안심하라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12절에서 15절은 아침의 해가 떠올라 밝히 비추어 세상을 드러나게 하는 장면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욥아 네가 아침에게 명령해서 해가 떠오르게 한 적이 있느냐? 새벽에 떠오르는 해가 세상을 비추어 어두울 때 몰랐던 모든 사물의 윤곽을 드러내듯, 내가 악인들을 모두 드러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날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것은 우리가 염려하는 세상의 어둠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속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억울해하고, 슬퍼하지 않을 날이 반드시 올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두려운 바다와 어둠과 같은 악은 결코 제멋대로 날 뛸 수 없고,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 드러나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끝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욥이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16절에서 21절에서 하나님은 욥에게 깊은 물 밑, 바다 속, 땅 속에 가봤느냐고 물으십니다. 그 깊은 곳은 스올 즉 죽은 자들의 자리, 지옥과 같은 곳을 말하는데 하나님은 욥이 그곳에 가봤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 질문은 욥은 결코 그곳을 모르고 갈 수도 없지만 하나님은 그곳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곳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고 아름다운 곳도 만드시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영원한 심판의 공간도 만드십니다. 욥은 여러 고통 중에 마치 자기가 그런 멸망의 장소에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그런 어둠의 장소는 욥의 지식과 경험 밖에 있었습니다. 진짜 그 장소를 보기라도 한다면 욥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달리 생각했을 것입니다. 욥과 달리 예수님은 그런 장소에 가셨고, 이기고 오셨습니다. 그런 장소가 분명 존재하지만 예수님은 자기 백성에게 그 깊은 어둠의 공간이 위협이 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그런 장소가 있음을 생각하게 하시면서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것처럼 선과 악이 공존하도록 일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게 하셨습니다.

 

    22절에서 30절은 물이 적들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기도 하고, 생명을 공급하는 선물이 되기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늘에 있는 물은 얼어 눈과 우박이 됩니다. 우박은 출애굽 때 애굽에 내린 재앙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셨고, 눈은 추위를 가져오면서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하나님의 무기가 됩니다. 반면에 하늘의 물은 마른 땅에 비로 내려 생명이 살아나도록 합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냐고, 그런 우박이나 눈이나 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본 적이 있냐고 물으십니다. 물을 공격 무기로 사용하기도 하고, 생명을 공급하는 비가 되게도 하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31절부터는 고대인들이 하늘을 보며 자신들의 운명을 알기 위해 믿은 별자리들을 가지고 하나님이 욥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별자리들이 바뀌게 할 수 있느냐, 너희 인간들은 하늘의 질서인 별자리가 땅의 질서에 영향을 준다고 믿는데,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 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너는 알고 있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런 질문의 속뜻은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주권자가 바로 하늘의 주인이신 하나님 자신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억울한 일과 선한 자들이 불행하고 악인들이 순탄하게 사는 이 부조리함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과 도덕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불만을 제기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판단을 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훨씬 지혜롭고 선하고 거룩하신 분이심을 분명히 알게 하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들임을 우리가 신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그런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는 것에 진정한 위로와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욥은 자신의 고난에 대한 설명, 모든 권한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해명을 듣기 원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깨닫게 하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내가 다스리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를 믿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고통에 대해 위로하시거나 공감하는 내용을 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욥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 자기 말만 하시는 분임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욥에게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욥을 사랑하셨고, 사탄 앞에서 그를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의 고난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기보다, 하나님 자신이 세상을 잘 통제하고 계신다는 것을 욥이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 나의 곤란한 현실을 설명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해결해 주지 못해도 공감해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설교들이 성도들의 고생하는 것을 공감해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내용들에다 하나님이 주실 회복과 형통을 기대하는 것을 더하며 마무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고통 속에 있는 욥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키셨듯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자신에게 집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심해야 할 만큼 세상이 무질서한 것 같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통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사람은 자기가 판단의 주체가 되려고 합니다. 내가 풍족한가 빈곤한가, 저 사람 혹은 이 사건이 내게 유익한가 고통을 주는가와 같은 기준으로 자기가 선과 악을 판단하려 하고 그런 판단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기준에 따라 하나님을 판단하는데, 성도마저 자신의 그런 판단, 나의 복의 기준에 하나님을 끌어들이려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수준에 맞춰주시기도 하고, 실제적인 도움도 주시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신뢰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질문을 통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여전히 붙들고 계시고, 결국 심판할 자신을 신뢰하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오직 자신만이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무엇이 사랑이고 정의인지 판단하실 수 있는 존재임을 그날에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겐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인내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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